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開覺自性般若波羅蜜多經) 제2권

개각자성반야바라밀다경(開覺自性般若波羅蜜多經) 제2권

“다시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색에 대해서 분별의 분량과 의동(疑動)의 분량이 실답지 않아서 능히 실답고 평등하게 관찰할 수 없다면, 곧 색의 색으로 얻는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색의 색으로 얻는 바가 없을 때라면 곧 색 안에서 색견(色見)이 얻는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색에 대해서 색견이 얻는 바가 없다면 곧 색에서 중생이 얻는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색에 대해서 중생이 얻는 바가 없다면 곧 색에서 일체가 얻는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색에 대해서 일체가 얻는 바가 없을 때라면 곧 일체가 얻는 바가 있는 것이다. 만약 혹시 법에 얻는 바의 상이 있어서 성립할 수 있다면 곧 얻는 바의 모습도 있고 의지함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 대승법 속에서 능히 출리(出離)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성문승(聲聞乘)이나 연각승(緣覺乘)과 비견하겠는가?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분별의 분량과 의동의 분량이 실답지 않아서 능히 실답고 평등하게 관찰할 수 없다면, 곧 식에서 식으로 얻는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식에서 식으로 얻는 바가 없을 때라면 곧 식에서 식견(識見)이 얻는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식에서 식견이 얻는 바가 없다면 곧 식에서 중생이 얻는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식에서 중생이 얻는 바가 없다면 곧 식에서 일체가 얻는 바가없는 것이며, 만약 식에서 일체가 얻는 바가 없을 때라면 곧 일체가 얻는 바가 있는 것이다. 만약 혹시 법에 얻는 바의 상이 있어서 성립할 수 있다면 곧 얻는 바의 상도 있고 의지함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 대승법 속에서 능히 출리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성문승이나 연각승과 비견하겠는가?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모든 색에 대해서 그 언설에 따라 집착을 일으키고 쓰임새[用]를 지어서 행한다면, 이렇게 행하는 자는 유신견(有身見)을 행하는 것이고, 또한 다시 애착을 두어서 행하는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찾아 구하는 것[尋求]을 여의고서 행하는 바가 있다면, 이는 색의 상(相)을 요달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그 언설에 따라 집착을 일으키고 쓰임새를 지어서 행한다면, 이렇게 행하는 자는 유신견(有身見)을 행하는 것이고, 또한 다시 애착을 두어서 행하는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찾아 구하는 것을 여의고서 행하는 바가 있다면, 이는 식의 상을 요달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모든 색에 대해서 그 언설에 따라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쓰임새를 지어서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유신견을 행하지 않는 것이고, 또한 다시 애착을 두어서 행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찾아 구하는 것을 여의고서 행하는 바도 없다면, 이는 색의 상을 훌륭히 요달해 아는 것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그 언설에 따라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쓰임새를 지어서 행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유신견을 행하지 않는 것이고, 또한 다시 애착을 두어서 행하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찾아 구하는 것을 여의고서 행하는 바도 없다면, 이는 식의 상을 훌륭히 요달해 아는 것이다.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의 세 가지 마음 종자를 능히 갖추어서 반연으로 섭수(攝受)할 수 있다면, 이는 청정한 법이 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믿고 이해하는 마음[信解心]의 종자이고, 둘째는 싫어해서 여의는 마음[厭離心]의 종자이고, 셋째는 파괴되지 않는 마음[不壞心]의 종자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의 세 가지 마음 종자를 능히 갖추어서 반연으로 섭수할 수 있다면, 이는 청정한 법이 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믿고 이해하는 마음의 종자이고, 둘째는 싫어해서 여의는 마음의 종자이고, 셋째는 파괴되지 않는 마음의 종자이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에서 마땅히 세 가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집착이 없는 마음[無取着心]이고, 둘째는 화합이 없는 마음[無和合心]이고, 셋째는 청정한 마음[淸淨心]이다. 이 때문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저 색에 대해서 마음이 생함이 있든 마음이 생함이 없든, 크게 일어나든[大生], 평등하게 일어나든[平等生], 마땅히 실답고 평등하게 관찰해야 한다. 능히 이처럼 평등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식에서 마땅히 세 가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집착이 없는 마음이고, 둘째는 화합이 없는 마음이고, 셋째는 청정한 마음이다. 이 때문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저 식에서 마음이 생함이 있든 마음이 생함이 없든, 크게 일어나든 평등하게 일어나든, 마땅히 실답고 평등하게 관찰해야 한다. 능히 이처럼 평등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하는 것이다.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에서 유(有)를 보거나 무(無)를 본다면, 이 보살은 실답게 지해(知解)하지 못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서 유(有)를 보거나 무(無)를 본다면, 이 보살은 실답게 지해(知解)하지 못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가령 보살마하살이 평등계(平等界)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그 마음이 색에서 해탈하기를 구할 때는 곧 색에 대해서 그 마음이 움직여 굴러서 움직임이 생겨 계속 움직이게 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이 보살은 해탈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평등계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그 마음이 식에서 해탈하기를 구할 때는 곧 식에 대해서 그 마음이 움직여 굴러서 움직임이 생겨 계속 움직이게 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이 보살은 해탈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평등계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그 마음이 색에서 해탈하기를 구할 때는 색에 대해서 마음이 계착(繫着)도 없고 계착 없음도 없어야 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이 보살은 훌륭히 해탈하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평등계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그 마음이 식에서 해탈하기를 구할 때는 식에 대해서 마음이 계착도 없고 계착 없음도 없어야 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이 보살은 훌륭히 해탈하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의 무상법(無相法)을 이해하면 고통이 저절로 그치면서 온갖 상이 적정하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나 이생(異生)은 색을 능히 실답게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색에 대해서 집착이 일어나 현전(現轉)하고 가려 덮는다[覆蔽]. 저 색을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현전하고 가려 덮었기 때문에 성문승이나 연각승 속에서는 능히 출리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대승과 비견하겠는가?
또 이처럼 집착하고 가려 덮은 인(因) 때문에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人)ㆍ천(天)의 온갖 취(趣)에서 오랫동안 생사의 고통을 받으면서 한없이 윤회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나아가 안색(眼色)과 안식(眼識), 이성(耳聲)과 이식(耳識), 비향(鼻香)과 비식(鼻識), 설미(舌味)와 설식(舌識), 신촉(身觸)과 신식(身識), 의법(意法)과 의식(意識)도 또한 모두 무성(無性)이자 가성(假性)ㆍ실성(實性)이다.

수보리야, 이처럼 의식은 세 가지 성품으로 전변하는데, 어리석은 범부와 이생이 능히 식을 실답게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 등에 대해서 집착이 일어나 현전하고 가려 덮는다. 저 식을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현전하고 가려 덮어 버렸기 때문에 성문승이나 연각승 속에서는 능히 출리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대승과 비견하겠는가? 또 이처럼 집착하고 가려 덮는 인(因) 때문에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ㆍ천의 온갖 취(趣)에서 오랫동안 생사의 고통을 받으면서 한없이 윤회하는 것이다.

다시 수보리야, 이처럼 색은 세 가지 성품 속에서 전변한다.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실답게 요달한다면, 곧 색에 대해서 집착을 일으키지도 않고, 또한 현전하지도 않아서 그 마음이 지혜를 연다. 저 색에서 집착을 일으키지 않아서 마음이 지혜를 열었기 때문에 대승법 속에서 능히 출리할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성문승이나 연각승과 비견하겠는가? 또 이처럼 집착을 일으키지 않아서 마음이 지혜를 연 것이기 때문에 저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ㆍ천의 온갖 취(趣)에서 생사의 고통을 오래 받지 않는다. 색에 대해서 추구해도 색에서 얻는 바가 없을 때는 색이 곧 일체로서 전혀 비추어 발하는 것이 없다. 색에 비춤이 없을 때 곧 색법의 평등한 성품에 대해서 실답게 아는 것이니, 그래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서 식을 추구하여 식에서 얻는 바가 없을 때는 식이 곧 일체로서 전혀 비추어 발하는 것이 없다. 식에 비춤이 없을 때 곧 식법(識法)의 평등한 성품에 대해서 실답게 아는 것이니, 그래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신속히 증득하는 것이다.”

이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을 설하셨다.

무이법(無異法)을 추구해서
사물의 경계에 비추는 마음 없이
지혜로 법성(法性)을 요달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리를 얻는 것이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만약 색의 무성법(無性法)을 잘 이해했다면, 곧 색에 대한 색의 수작(修作)을 구족하고 색계(色界)에서도 움직이는 바가 없으니, 그래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만약 식의 무성법을 잘 이해했다면, 곧 식에 대해서 식의 수작(修作)을 구족하고 법계에서도 움직이는 바가 없으니, 그래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하는 것이다.”

이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을 설하셨다.

지혜가 무성(無性)을 잘 이해해서
수작(修作)을 다 구족하고
또 법계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바로 일체지(一切智)를 얻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색에는 뜻[義]도 없고 구의(句義)도 없고 대의(大義)도 없다. 보살마하살이 만약 실답게 올바로 요달할 수 있다면, 이런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식에는 뜻도 없고 구의(句義)도 없고 대의(大義)도 없다. 보살마하살이 만약 실답게 올바로 요달할 수 있다면, 이런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신속히 증득한다.”

이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을 설하셨다.

뜻[義]도 없고 구의(句義)도 없으며
대의(大義)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니라.


보살이 훌륭히 요달해서 안다면
신속히 보리의 과를 얻으리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탐욕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심구(尋求:찾아서 구함)의 탐욕이며, 둘째는 편심구(徧尋求:두루 찾아서 구함)의 탐욕이며, 셋째는 분별의 탐욕이며, 넷째는 탐욕이며, 다섯째는 큰 탐욕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식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탐욕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심구(尋求)의 탐욕이며, 둘째는 편심구(徧尋求)의 탐욕이며, 셋째는 분별의 탐욕이며, 넷째는 탐욕이며, 다섯째는 큰 탐욕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탐욕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색의 자성(自性)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다. 만약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으며, 만약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있으며, 만약 색의 색이 얻을 바가 있다면 곧 저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없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색에서 얻는 바가 있든 얻는 바가 없든모든 종류의 색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탐욕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식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다. 만약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으며, 만약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없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식에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식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에서 마땅히 다섯 가지 성냄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심사(尋伺)1)의 성냄이며, 둘째는 편심사(徧尋伺)의 성냄이며, 셋째는 분별사(分別伺)의 성냄이며, 넷째는 성냄이며, 다섯째는 크게 성냄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식에서 마땅히 다섯 가지 성냄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심사의 성냄이며, 둘째는 편심사의 성냄이며, 셋째는 분별사의 성냄이며, 넷째는 성냄이며, 다섯째는 크게 성냄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에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성냄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으며, 만약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으며, 만약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으로서 얻는 바가 있으며, 만약 색의 색이 얻는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색에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색을 다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성냄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식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으며, 만약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식에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식을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어리석음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동란(動亂: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의 어리석음이며, 둘째는 동란상(動亂相)의 어리석음이며, 셋째는 무동란상(無動亂相)의 어리석음이며, 넷째는 어리석음이며, 다섯째는 큰 어리석음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식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어리석음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동란의 어리석음이며, 둘째는 동란상의 어리석음이며, 셋째는 무동란상의 어리석음이며, 넷째는 어리석음이며, 다섯째는 큰 어리석음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어리석음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색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으로서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색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색을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어리석음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식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식에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식을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색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오만[慢]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다문(多聞)의 오만이며, 둘째는 고승(高勝:뛰어남)의 오만이며, 셋째는 증상(增上)의 오만이며, 넷째는 오만[慢]이며, 다섯째는 큰 오만[大慢]이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식에 대해서 마땅히 다섯 가지 오만의 법을 분명히 알아서 버리고 여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다문의 오만이며, 둘째는 고승의 오만이며, 셋째는 증상의 오만이며, 넷째는 오만이며, 다섯째는 큰 오만이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색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오만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색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색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으며, 만약 색의 색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색의 색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색의 색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색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색을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수보리야,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식에 대해서 만약 이 다섯 가지 오만을 버리고 여읠 수 있다면, 곧 모든 식의 자성에 대해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식의 자성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도 얻을 바가 없을 때는 곧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며, 만약 식의 식이 얻을 바가 있는 것이라면 곧 저 식의 식으로서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모든 식에 대해서 얻을 바가 있든 얻을 바가 없든 모든 종류의 식을 초월한다면, 곧 능히 출리할 수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를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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