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리보초삼매경 03.하권
10. 결의품(決疑品)
이 때 아사세왕이 모든 보살과 성문들이 공양을 마쳐 다 씻어 끝낸 모습을 보고, 다시 낮은 의자를 가져다가 박수(溥首)보살 앞에 앉으면서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부디 박수보살께서는 저의 의심을 풀어주옵소서.”
박수(溥首)보살이 답했다.
“강하(江河)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불세존(諸佛世尊)일지라도 대왕의 의심을 결단할 수 없습니다.”
그 때 왕은 스스로 구제되거나 보호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큰 나무가 부러져 땅에 넘어지듯, 의자에서 떨어져 땅에 쓰러졌다.
대가섭(大迦葉)이 말했다.
“대왕께서는 안심하여 두렵게 생각하고 당황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큰 공덕의 갑옷을 갖춰 입은 박수동진(溥首童眞)보살께서 교묘한 방편으로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천천히 침착하게 물어보십시오.”
그러자 왕은 곧 일어나서 박수보살에게 물었다.
“어째서 조금 전에 강하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불세존일지라도 나의 의심을 결단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박수보살이 되물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불세존께서는 인연의 차별에 따른 마음을 행하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마음을 일으켜 행하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마음을 없애어 행하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유위(有爲)를 행하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무위(無爲)를 행하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무위(無爲)를 행하라고 가르치십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법에는 행이 없습니다. 행이 없다면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여기에 과연 사람을 법으로 교화하여 결단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왕이 답했다.
“아닙니다.”
박수보살이 말했다.
“왕은 마땅히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까 ‘강하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불세존일지라도 왕의 의심을 결단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왕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티끌과 어두움과 재와 연기와 구름과 안개를 가지고 허공을 더럽혀 보리라’고 한다면, 과연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더럽힐 수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만일 대왕께서 만일 ‘나는 저 허공을 깨끗이 씻어내리라’고 한다면, 씻어낼 수 있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해낼 수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말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여래의 몸은 모든 법을 환하게 아시고 허공처럼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자연 그대로 청정하시므로, 더럽힐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슨 법으로 더럽혀서 달리 더럽힌 경계를 보겠으며, 또 어찌 결단하거나, 깨끗이 씻어낼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평등하게 이 법의 이치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까 ‘강하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불세존일지라도 결단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안 마음[內心]을 얻어 머무는 일이 없으시며, 바깥 마음을 얻어 머무는 일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은 자연 그대로 청정하여 처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 그대로 청정하여 처소가 없으면, 바라고 원하는 뜻에도 머무는 일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자재를 얻음이여, 모든 법이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자연도 없음이여, 모든 법을 일으켜 세움이 없기 때문이요, 차질(蹉跌)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존재하지 않음이여, 모든 법이 형상[形貌]을 벗어났기 때문이요, 형상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허무(虛無)하기 때문입니다.
가려 덮는 장애가 없음이여, 모든 법에 교화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교화의 모양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자연 그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존재를 벗어남이여, 모든 법이 돌아갈 곳을 놓아버렸기 때문이요, 돌아감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따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로 떠남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요, 의지함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자연 그대로 청정하기 때문이며, 심성(心性)이 청정함이여, 모든 법이 구별 없이 허공처럼 평등하기 때문이요, 동등한 짝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벗하는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벗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둘의 차별을 벗어났기 때문이요, 둘의 차별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순수하고 담박하기 때문이며, 한량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끊기지 않기 때문이요, 끝이 없음이여,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도리가 없음이여, 모든 법이 뒤바뀌어 진실이 아닌 법에 머물렀기 때문이요, 뒤바뀜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항상 청정하여 편안하기 때문이며, 영원함이여, 모든 법이 향하여 돌아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요, 청정함이여,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하여 밝게 통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연 그대로 진실함이여, 모든 법에 나의 존재가 없으면서 밝게 드러나기 때문이요, 안온함이여, 모든 법이 떠오르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며, 결정하지 못함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안으로 고요하기 때문이요, 속이고 허망함이 없음이여, 모든 법은 구경에 진실한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요함이여, 모든 법이 담박한 모양이기 때문이요, 우리와 나가 없음이여, 모든 법이 나를 제거하기 때문이며, 뚫려 샘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해탈한 모양이기 때문이요, 적멸(寂滅)의 경지로 나아감이여, 모든 법이 생각의 대상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없음이여, 온갖 것을 벗어나기 때문이요, 한결같이 평등한 경지로 나아감이여, 모든 법이 평등하게 해탈로 나가기 때문이며, 미묘하여 헤아릴 수 없음이여, 모든 법이 본 바탕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요, 생각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한가롭고 조용한 연(緣)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空)을 따름이여, 모든 법이 온갖 견해를 벗어났기 때문이요, 소원이 없음이여, 모든 법이 삼세(三世)를 떠났기 때문이며, 삼세를 끊음이여, 모든 법에 과거 현재 미래가 없기 때문이요. 함이 없이 평등[無爲等]함이여, 모든 법이 구경에 생겨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법은 생겨남이 없고 일어나는 일도 없으며, 존재하는 일도 없고 진실한 도리도 없는데, 저 법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더럽힐 수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말했다.
“그러면 저 법을 과연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결단할 수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말했다.
“일체의 온갖 법은 평등하여 열반[泥洹] 그대로입니다. 여래께서는 이 도리를 아시고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의심을 결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만들어 세운 바가 있으면, 뒤바뀐 마음을 따르지 않고 닦을 수 없으니, 반드시 진리관[眞諦觀]을 세우고 닦아서 뿌리도 없이 텅 빈 경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비록 관찰할 수 있더라도 모든 법에 받아들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 환하게 아는 일도 없어야 하며, 더불어 유행하거나 머물지도 않아야 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모든 법과 더불어 유행하거나 머물지 않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믿음이 됩니다. 그 믿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적막한 경지에 들고, 적막한 경지에 들어야만 비로소 자연 그대로 청정해지며, 자연 그대로 청정해져야만 비로소 만드는 일이 없어지고, 만드는 일이 없어져야만 일체의 온갖 법에 주인(主人)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저것은 바로 법인(法忍)을 지어 일체의 온갖 법에 만드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왕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만드는 일이 없는 자체가 바로 열반[滅度]입니다. 모든 법을 헤아려 보면 만들 일도 없고 무너뜨릴 일도 없으며, 만들지도 않고 만들지 않음도 없습니다. 이를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이를 따라 해탈한다면 평등하게 해탈합니다. 평등하게 해탈하면 그 법에 나아감도 없고 도달함도 없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에 이로운 이치가 없고 구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은 바탕이 없습니다. 그 바탕이 없는 경지[無本]는 생기기 않습니다. 생김이 없는 그 자체가 바탕이 없는 경지입니다. 그 바탕이 없는 경지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탕이 없는 경지라고 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바탕이 없는 경지를 알고 믿는다면, 모든 의심은 저절로 끊어집니다.
또 대왕이여, 눈은 더러움이 없으니 깨끗하게 할 일이 없습니다. 눈은 자연 그대로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탕이 없는 자연을 눈이라고 합니다. 귀 코 입 몸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대왕이여, 마음은 더러움이 없으니 깨끗하게 할 일도 없습니다. 마음은 자연 그대로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탕이 없는 자연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왕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색(色)은 더러움이 없으니 깨끗하게 할 일도 없습니다. 색은 자연 그대로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탕이 없는 자연을 색(色)이라고 합니다. 수(受: 痛) 상(想) 행(行) 식(識)도 이와 같습니다. 식(識)은 더러움이 없으니 깨끗하게 할 일도 없습니다. 식(識)은 자연 그대로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탕이 없는 자연을 식(識)이라고 합니다.
왕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일체의 온갖 법은 더러움이 없으니 깨끗하게 할 일도 없습니다. 모든 법은 자연 그대로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탕이 없는 자연을 모든 법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형색도 없고 볼 수도 없으니, 위해(危害)를 끼치는 일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말로서 가르치지도 못합니다. 비유하면 환영(幻影)처럼 밖에도 있지 않고 안에도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자연 그대로 밝은 것입니다. 만일 마음이 깨끗해진다면 더러움이 없으니 깨끗하게 할 일도 없습니다.
왕은 마땅히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 청정한 마음은 더럽힐 수 없습니다. 깨끗하지도 않고 허망하지도 않으며, 집착할 일도 없고, 위해(危害)를 끼칠 일도 없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생각[想]으로 만드는 일에는 진실한 사상(思想)이 없습니다. 만일 이러한 일에 머문다면, 범부(凡夫)는 어리석어서 욕망을 의지하여 번뇌[塵勞]합니다. 저기에 어째서 진실한 법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바로 진실한 법이 없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이 없는 자가 진실한 법과 함께하지 못하면, 일체의 온갖 법은 진실하지 못한 법에 머물러서, 저 진실한 법이 없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대왕이여, 비유로 허공을 들어 보겠습니다. 이 허공은 색깔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잡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언설로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이 허공은 비록 색(色)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잡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언설로 가르칠 수도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제 티끌과 연기와 구름과 안개로 이 허공을 더럽혀 보리라’고 한다면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더럽힐 수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말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마음도 본래 청정하여 자연 그대로 뚜렷하게 밝아 있으니, 티끌과 연기와 구름과 안개로 이 마음을 가로막아 더럽힐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티끌과 연기와 구름과 안개가 허공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끝내 허공을 물들여 더럽힐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우리와 나의 모양[吾我相]을 일으켜서 나의 소유라 하고, 허망하게 비친 연(緣)의 맺음을 근거로, 탐[] 진[怒] 치(癡)가 만들어졌을지라도, 자연 그대로 청정한 마음의 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대왕이여,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그 자연 그대로 청정한 마음[彼]에 의심을 품지 마십시오. 왕이 그 의심을 알기 위하여, 그 과거의 마음이 미래의 마음에 이를지라도 곧 모양이 없습니다. 그 미래의 마음이 과거의 마음에 이를지라도 역시 모양이 없습니다. 현재의 마음은 의지할 데가 없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 마음의 생각이 뒤 마음에 걸리지 않고, 뒤 마음의 생각이 앞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다. 현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그 이치를 밝게 알면서, 마음은 있지도 않고 있지 않음도 없으며, 과거의 마음은 사라졌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머물지 않는다고 관찰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법이 미래에 머물지 않음을 보면서 모든 견해를 없애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야 해탈하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생각은 모든 법이 번뇌[垢]를 벗어나서 세상과 두루 평등하고 밝음과 두루 평등합니다. 생기는 일이 없으면 언어의 가르침이 없습니다. 언어의 가르침이 없는 데 이르면, 처소가 없으면서 처소가 없지도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요한[寂然] 이치를 설하셨으니, 그 고요한 이치로 저 법을 헤아려 생각한다면, 처소가 없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처소를 찾을지라도, 언어의 가르침으로 모든 법을 추구할 뿐입니다.
만일 대왕께서 모든 법에 있으면서 생각을 떠난다면, 온갖 의심의 맺힘을 없애버리고도 모든 법에 의심을 결단하여 없앤 일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의심은 법과 함께 평등하게 나아가서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계(法界)는 평등을 이끈다고 합니다. 일체의 온갖 법이 법계와 함께 해야만 이 모든 법을 반드시 평등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이 법계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법계가 평등하면 바로 모든 법이 평등합니다. 그러므로 법계와 평등한 일체의 온갖 법이라고 이름합니다. 그 법계는 평등하게 모든 법을 이끄는 것입니다.
박수보살이 이 법을 설하자, 아사세왕(阿?世王)은 부드럽게 따르는 법인[柔順法忍]을 얻고 뛸 듯이 기쁘면서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왕은 곧 두 손을 모아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시원하게 이 법을 설하여 나의 의심을 없애 주셨습니다.”
박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더욱 어두운 의심의 맺힘입니다. 왕은 마치 모든 법을 끝까지 추구하여 깨달은 듯이 ‘훌륭하십니다. 시원하게 이 법을 설하여 나의 의심을 없애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또 답했다.
“박수보살의 말씀으로 나를 가려온 온갖 어두운 번뇌가 말끔히 없어졌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나의 몸과 목숨이 끝날지라도, 반드시 도(道)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박수보살이 답했다.
“이것이 바로 더욱 심한 의심의 장애로서, 이에 구경(究竟)의 일체 제법으로 멸도(滅度)에 이르고자 하는 격이니, 어찌 열반[泥洹]을 바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또 구경열반(究竟涅槃)의 일체 제법에서 또 다시 멸도를 바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구경열반은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하여 생긴 일이 없습니다.”
이 때 아사세왕은 백천의 값진 부드럽고 미묘한 옷을 손에 들고, 박수보살에게 받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니 그 옷을 입으소서.”
그러자 박수동진보살은 홀연히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몸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지금 대왕께서 박수의 몸을 못 보는 것처럼 그 의심도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고, 그 의심을 보는 것처럼 일체의 온갖 법도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며, 모든 법을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을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자체를 보아야 합니다.”
공중의 소리는 이어 또 말했다.
“몸이 보이는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박수의 다음 자리에 혜영당(慧英幢)이라는 보살이 앉아 있었다. 아사세왕은 그 보살에게 옷을 주었다.
그러나 이 보살은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나는 소유(所有)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또 성내거나 한탄하지도 않고, 멸도(滅度)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또한 범부의 법을 가까이하는 이에게서 이 옷을 받지 않고, 범부의 행을 뛰어넘은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배우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번뇌의 법을 뛰어넘은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배우지 않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연각(緣覺)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연각을 뛰어넘은 이에게서도 받지 않습니다. 나는 여래에게도 받지 않으며, 여래의 법을 뛰어넘은 이에게서도 받지 않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이 법을 행하지도 않고 이 법을 버리지도 않는다면, 나는 비로소 당신으로부터 이 옷을 받겠습니다. 받는 이와 베푸는 이가 모두 똑같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衆祐]께서는 이와 같은 보시를 청정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사세왕은 그 옷을 혜영당보살에게 입히려고 하였으나, 그 보살은 홀연히 자리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그 다음 자리의 신희적(信喜寂)이란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였다.
그 보살이 말했다.
“나 또한 자신의 몸을 보는 이로부터 받지 않고, 남을 보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번뇌를 보고 집착한 이로부터 받지 않고, 번뇌를 벗어난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고요한 데 의지한 이로부터 받지 않고, 고요한 데 의지하지 않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마음이 안정된 이로부터 받지 않고, 뜻이 어지러운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지혜로운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지혜롭지 못한 이에게서도 받지 않습니다.”
왕이 그 옷을 신희적보살에게 입히려고 하자, 그 보살 역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그 다음 자리의 불사소념(不捨所念)이란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보살 또한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나는 몸에 의지하는 이로부터 받지 않고, 몸에 의지하지 않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말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마음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지혜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이치[誼]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5음(陰)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종성(種姓)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6진(塵: 衰)과 6입(入)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고, 진리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으며, 부처님의 음성에 의지하는 이에게서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모든 법은 다 의지할 데가 없고, 집착할 곳도 없으면서 구경토록 영원히 편안하여 흔들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그 옷을 주려고 하자, 그 보살 역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난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또 그 다음 자리의 존지(尊志)라는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자, 그 보살 역시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왕께서는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낮게 해탈한 이로부터 받지 않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켜서 그 마음이 평등하면, 도의 마음이 평등해집니다. 진실로 도의 마음이 평등해져서 도가 이미 평등해지면, 그 마음도 평등해집니다. 이미 도의 마음이 평등하고 모든 법이 평등하여, 일체의 법과 평등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당신으로부터 그 옷을 받겠습니다. 일체의 법에는 받음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거둬들임도 없습니다. 모든 법에서 해탈할지라도 해탈했다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해탈했다는 마음이 없지도 않아야 합니다. 일체의 법을 볼지라도 우리와 나라는 견해가 없어야 하고, 우리와 나를 생각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해야만, 비로소 당신으로부터 그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이 그 옷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 보살은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또 그 다음으로 정화왕(定華王)이라는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 보살 역시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비록 대왕께서 삼매(三昧)를 행할지라도 선정의 뜻[定意]을 품지 않고,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하고 평등하여 해탈이 없음을 믿고 안다면, 나는 비로소 당신으로부터 이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이 그 옷을 그 보살의 몸에 입히려고 하자, 그 보살 또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또 그 다음 자리의 무체득(無逮得)이란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자, 그 보살 또한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만일 대왕께서 모든 번뇌의 쌓임에서 진실하게 해탈하여, 문자와 음성이 일체 평등하여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미 모든 법에 얻을 대상이 없는 경지를 본다면, 곧 중생을 인도하여 이롭게 할지라도 얻을 대상이 없는 이치에 따라 온갖 좋은 것을 다스리지도 않고, 장엄하여 꾸미도록 인도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행한다면 나는 비로소 당신에게서 그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이 그 옷을 던지자, 그 보살은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또 그 다음 자리의 정삼구(淨三垢)라는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자, 그 보살 역시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만일 대왕께서 자신의 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받는 이도 없고 주는 이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나는 비로소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은 옷을 던졌으나 역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또 그 다음 자리의 화제법왕(化諸法王)이라는 보살에게 그 옷을 주려고 하자, 그 보살 역시 받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성문(聲聞)을 시현(示現)하여 열반[泥洹]하면서도 열반[滅度]에 들지 않아야 하고, 연각(緣覺)을 시현하여 열반하면서도 열반에 들지 않아야 하며, 여래를 시현하여 열반하면서도 열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사법[終始法]도 없고, 멸도법(滅度法)도 없다면, 나는 비로소 그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이 옷을 던졌으나 역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은 이렇게 차례대로 옷을 주려고 하였으나, 모든 보살은 낱낱이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각각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의자와 책상도 텅 비어[空] 나타나지 않았다.
아사세왕은 현자(賢者) 대가섭(大迦葉)에게 말했다.
“지금 몸을 나타낸 분이 마땅히 이 옷을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연장자(年長者: 尊長)로서 부처님께서도 칭찬하시는 분이니, 마땅히 이 옷을 받아야 합니다.”
대가섭(大迦葉)이 말했다.
“나는 탐[] 진[怒] 치(癡)를 없애지 못했으니, 지금의 이 몸으로는 옷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명(無明)도 버리지 못하였고, 애욕(愛欲)도 없애지 못하였으며, 고뇌[苦]도 끊지 못하였고, 고뇌의 원인[習: 集]도 멸하지 못하였으며, 다 없애어 증득[滅]하지도 못하였고, 닦는 길[道]에 들어서지도 못하였습니다. 나는 부처님[佛]도 못보고, 법(法)을 듣지도 못하며, 성중(聖衆: 僧)을 모시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번뇌[塵勞]를 놓지 않았으나, 사상(思想)을 일으키지도 않고 사상을 떠나지도 않았으며, 지혜를 세우지도 않고 지혜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눈을 깨끗하게 하지도 않고 지혜를 짓지도 않으며 없애지도 않습니다. 그 옷을 나에게 베풀지라도 큰복을 얻지도 못하고 복이 없지도 않습니다. 나 또한 나고 죽는 법에 있지도 않고 멸도법도 없습니다. 그 옷을 나에게 베풀지라도 부처님의 덕을 끝까지 추구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이와 같이 행하여 평등하게 온갖 바른 이치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비로소 이 옷을 받겠습니다.”
아사세왕은 옷을 던졌으나,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나 있는 분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아사세왕이 차례로 이렇게 옷을 베풀었으나, 각각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일체 뛰어난 제자들은 모두 낱낱이 사라져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5백 인이 다 함께 소리만 내어 말했다.
“왕께서 몸을 볼 수 있는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혼자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보살과 성문이 모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구나. 나는 마땅히 되돌아가서 제일 왕후에게 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궁전 안으로 들어가서 두루 살펴보았으나, 채녀(采女)들도 일체 보이지 않았다.
아사세왕은 곧바로 보이지 않은 경지와 매우 가까운 삼매에 들었다. 그 눈에 보여야할 모든 색(色)은 보이지 않았다. 남녀(男女)도 보이지 않았고 동자(童子)도 보이지 않았으며 동녀(童女)도 보이지 않았다. 또 크고 작은 것도 보이지 않았고, 장벽도 보이지 않았으며, 수목(樹木)도 보이지 않았고, 집도 보이지 않았으며, 성곽(城郭)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보이는 것은 자기의 몸 모양뿐이다.
그 때 또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난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곧 스스로 그 옷을 입었다. 그러자 자기의 몸도 보이지 않으면서, 당장 일체의 색상(色相)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또 다시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대왕께서 모든 색(色)의 형상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의심을 관찰하십시오. 또 반드시 의심을 보는 것처럼, 일체의 법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만일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는 것으로서 온갖 보는 경계를 벗어난 것입니다. 만일 봄을 떠나서 보이는 것이 있다면, 보는 것이 없으면서 온갖 봄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아야만 평등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모든 법에 보이는 것이 없고 이미 보이는 것이 없어졌다면, 이것이 바로 평등하게 보는 것입니다.”
이 때 아사세왕은 일체 생각의 집착을 떠난 채,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곧 본래대로 돌아왔다. 다시 법회의 대중을 보니, 왕후들과 채녀(女)들과 성곽과 궁전과 집들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아사세왕은 박수보살에게 아뢰었다.
“좀 전에 법회대중은 어디에 모여 있었습니까? 내 앞에 있으면서도 못 본 것입니까?”
박수보살이 답했다.
“마치 대왕의 의심이 모인 곳과 같습니다. 법회대중은 좀 전에도 저기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대왕이여, 법회대중을 봅니까?”
왕이 답했다.
“예, 벌써 보았습니다.”
박수보살이 물었다.
“어떻게 보았습니까?”
왕이 답했다.
“의심을 보는 것처럼 법회대중도 이와 같이 보았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무엇으로 의심을 봅니까?”
왕이 답했다.
“법회대중과 눈앞의 모든 형색(形色)을 보는 것처럼, 의심도 역시 그렇게 안과 밖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5역죄를 범한 자는 가차없이[不得中止]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하셨으니, 왕은 자신이 앞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아십니까?”
왕이 곧 답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박수보살이여, 어찌 여래께서 진리 그대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셨을 때, 어떤 법은 지옥[囹圄]으로 돌아가고, 이 법은 3악도[塗]에 떨어지며, 이 법은 천상(天上)에 나고, 이 법은 열반[泥洹]에 이른다고 보셨겠습니까?”
박수보살이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왕이 말했다.
“박수보살께서는 잘 살펴보십시오. 나는 이제 일체의 온갖 법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은 법은 모든 경법(經法)에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지옥으로 가든지, 천상에 나든지, 열반에 들지라도, 일체의 온갖 법은 모두 다 본래 그대로[如]입니다. 만일 공(空)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분별하여 공(空)에서 본다면, 지옥으로 가는 일도 없고, 천상에 나는 일도 없으며, 열반에 드는 일도 없습니다. 일체의 온갖 법은 무너지는 일이 없으므로, 일체의 온갖 법은 다 법계(法界)로 돌아갑니다.
그 법계는 나쁜 세상[惡趣]으로 돌아가지 않고, 천상에 오르지 않으며, 열반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반역죄의 무간지옥(無間地獄)이 곧 법계요, 온갖 반역의 근원이 바로 법계입니다. 그 본래 청정이 곧 온갖 반역이요, 온갖 반역이 바로 본래 청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본래 청정이라고 합니다. 박수보살이여, 그러므로 일체의 온갖 법은 생기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나는 나쁜 세상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천상으로 올라가지도 않으며,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박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이여, 어째서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어지럽힙니까?”
왕이 답했다.
“나도 또한 부처님의 분부[敎命]를 어기지 않았고,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도 분별하시어 나의 존재가 없는 바탕을 연설하시고, 참다운 진리의 근원을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의 존재가 없다면, 거기에는 사람의 존재도 없으며, 사람의 존재가 없다면, 중생도 허무하여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만들 일이 없으니, 지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대왕이여, 의심을 결단하였습니까?”
왕이 답했다.
“이미 찾아내어 없앴습니다.”
박수보살이 물었다.
“대왕이여, 어떻습니까? 결정하지 못하는 일도 끊었습니까?”
왕이 답했다.
“영원히 끊었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지금 이 법회대중이 왕의 반역죄를 다 알고 있는데, 왕은 어째서 반역죄가 없다고 합니까?”
왕이 답했다.
“반역죄가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왕이 답했다.
“이전에 저지른 반역죄를 해탈하여 맺힘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 모든 반역자에서 이 회의 반역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반역은, 이 보살들의 부드럽게 따라 관찰하는 법인[柔順法忍]이니, 보살들은 온갖 반역자로 하여금 이 법인(法忍)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온갖 반역죄를 붙들어 가지지 않도록 합니다. 박수보살이여, 이른바 반역은 저 모든 반역자로부터 이 회의 반역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반역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저들을 모두 모든 반역죄에 포함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이 때 혜영당(慧英幢)보살이 큰 소리로 찬탄하였다.
“대왕의 길이 매우 깨끗하게 닦였기 때문에, 마침내 이러한 법인(法忍)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이 바로 답하였다.
“일체의 온갖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本末] 다 청정합니다. 또 일체 법은 영원히 고요하고 편안하여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들어 때가 낄 수 없습니다. 집착이 없는 도를 도라고 합니다. 또 저 도는 생사로 돌아가지도 않고, 열반에 이르지도 않습니다. 모든 성현(聖賢)의 도는 인도하는 길이 없고, 일으킬 길이 없습니다. 이를 도라고 하니, 도(道)는 길이 없습니다.”
아사세왕은 이렇게 말하면서 부드럽게 따르는 법인[柔順法忍]을 환하게 통달하였다. 이 때 중궁전(中宮殿)의 42여인은 모두 박수보살이 나타낸 위신력(威神力)의 변화를 보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으며, 5백 서민(庶民)은 번뇌[塵垢]를 멀리 벗어나서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었다.
이 때 백천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왕궁의 문 아래로 몰려와서, 법을 듣고 공양하면서 받들어 모시고자 하였다. 이들을 위해 박수동진(軟首童眞)보살은 발가락으로 그 땅을 눌렀다. 그러자 왕사성(王舍城)은 다 유리(琉璃)로 변했다. 성안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은, 마치 밝은 거울에 비친 제 모양을 보듯, 박수와 보살들과 성문(聲聞)들을 환하게 보았다.
박수동진보살은 몰려온 사람들에게 알맞은 법을 설했다. 8만 4천 사람은 모두 경법(經法)을 들으면서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었으며, 5백 사람은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다.
11. 심본정품(心本淨品)
이 때 박수보살은 아사세왕과 그의 권속들과 따로 모여든 무수한 사람들을 두루 교화하기 위하여 설법하였다. 설법을 끝내고 박수보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비구대중과 아사세왕과 여러 신하와 그 권속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궁전 문을 나와서 길을 가다가 한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는 자기 어머니를 해치고 다른 나무 밑에 기대어 선 채, 고뇌에 빠져 통곡하면서 “이 일을 어찌하랴”고 절규하였다. 그는 현재 해탈할 최종시기에 당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스스로 저지른 일을 책임지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스스로 어머니를 해친 대역죄를 범했으니,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율행(律行)을 닦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알아 본 박수보살은 비구들이 보는 앞에서 신통으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그 변화한 사람들은 어머니를 해친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다가 그 어머니를 해친 사람과 멀지 않은 중간 길에 멈췄다. 어머니를 해친 사람은 멀리서 어떤 부모가 아들과 함께 벗하여 오는 것을 보았다.
부모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게 바른 길이야.”
아들이 답했다.
“이것은 바른 길이 아닙니다.”
변화한 부모와 변화한 아들은 길을 놓고 서로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다가 변화한 아들은 분노를 일으켜 변화한 부모를 죽여버렸다. 그 어머니를 해쳐 반역죄를 범한 아들은, 멀리서 변화한 부모를 해친 변화한 아들이 지독한 괴로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고 흐느껴 울면서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았다.
그 변화한 아들은 곧 어머니를 해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와서 말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마땅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그는 울면서 “이 일을 어찌하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 어머니를 해친 사람은 홀로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에 온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죽였으나, 나는 단지 어머니만을 죽였을 뿐이다. 저 사람의 어리석고 무지한 죄는 너무나 크다. 내가 범한 대역죄는 저 사람보다 나으니, 저 사람이 받을 죄에 비하면 나는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는구나.”
그 변화한 아들은 혹독한 괴로움으로 슬피 울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마땅히 능인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리라.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는 자를 부처님께서는 구제해 주시며, 두려움으로 당황한 자를 위로하여 근심을 없애주신다. 나는 가서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대로 행하리라.”
이에 변화한 사람은 통곡하면서 먼저 길을 나섰다. 어머니를 해친 사람도 곧 그 뒤를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는 것처럼, 나도 마땅히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그러나 내 죄는 작고 가볍지만, 저 사람의 죄는 대단히 무겁다.”
변화한 사람은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자 머리를 땅에 대고 예를 올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부모님을 살해하여 대역죄를 범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변화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착하고 갸륵하구나. 그대는 진실 그대로 속이지 않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다. 또 여래 앞에까지 나와서 사실 그대로 털어놓았으니, 한 입으로 두 말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속이지도 않았다. 마땅히 스스로 마음의 법을 관찰하여 어떤 마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했는지 사유해 보라. 과거의 마음이 그랬는가, 미래의 마음이 그랬는가, 현재의 마음이 그랬는가. 만일 과거의 마음이라면, 이미 사라져 버렸다. 현재의 마음이라면, 따로 헤어져 떠나 버리니, 처소도 없고, 방향도 없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의 마음이라면, 아직 오지 않았으니, 모여 있는 곳도 없고, 되돌려옴도 보지 못하며, 갔다가 돌아옴도 없느니라,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음은 몸 안에도 굳게 서 있지 않으니, 몸 밖에도 있을 리 없고, 경계도 없고, 양 사이에 처하지도 않으며, 가운데에 멈출 수도 없느니라.
그 마음을 살펴보면, 푸른 색, 붉은 색, 누런 색, 흰 색, 검은 색 등 다섯 가지 색도 없느니라. 그대는 마땅히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마음에는 색(色)이 없으니, 볼 수도 없고 머물 곳도 없으며 물러남도 없고 언설의 가르침도 없고 붙들어 가질 수도 없느니라. 그것은 마치 환술(幻術)과 같기 때문이다.
그대가 마음을 관찰하려고 하나 분별할 수도 없고, 알아낼 수 없으며, 탐욕[]이라 이름할 수도 없고, 성냄을 찾을 수도 없으며, 어리석음을 알 수도 없으니, 탐[] 진[怒] 치[癡]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음에는 생사의 행이 없고, 지을 일도 없으며, 나타나는 일도 없고, 나타나 있지도 않느니라.
또 마음은 청정하여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느니라. 마음은 여기에도 있지 않고, 저기에도 있지 않으며, 다른 곳에도 있지 않느니라. 마치 허공이 동등한 무리가 없고, 색상(色像)도 없으며, 언설의 가르침도 없는 것과 같다고 하리라.
이렇게 밝게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어디에도 의지하지 말라. 나를 나의 소유라고 말하지도 말고, 처소를 만들지도 말며, 생각하지도 말고, 최고의 경지[畢竟]를 짓지도 말며, 무엇을 한다는 대상을 두지도 말고, 자기의 몸이라고 말하지도 말며, 우리와 나의 존재라고 말하지도 말고, 과거를 기억하지도 말라. 왜냐 하면 그대는 마땅히 일체의 온갖 법이 마치 허공처럼 머무는 데가 없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또 잘 들어라.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일지라도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법에 해탈이 있다든지, 혹은 번뇌에 물든 사람일지라도 나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만일 마음이 청정하여 번뇌의 더러움이 없으면 모든 세계도 없으리라.”
그러자 변화한 사람은 곧 찬탄하였다.
“일찍이 들어 본적이 없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분이시여, 여래께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이유는, 법계(法界)는 짓는 일도 없고, 받는 일도 없으며, 생겨남도 없고, 멸도(滅度)도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음을 분명하게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출가(出家)를 원하오니, 부처님[佛世尊]께서는 저를 사문(沙門)으로 받아주시고, 구족계(具足戒: 比丘戒)를 내려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여.”
그러자 변화한 사람은 부처님 앞에서 사문이 되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통(神通)을 얻어 멸도(滅度)하고자 하옵니다.”
이 말을 들으신 부처님께서 위신력(威神力)으로, 그 변화한 사람을 땅에서 네 길 아홉 자의 허공으로 띄워 멸도케 하시니, 그 변화한 사람은 몸 속에서 불을 일으켜 스스로 몸을 태웠다.
이 때 어머니를 해친 사람은 그 변화한 사람이 사문이 되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법(經法)을 받들어 듣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좀 전에 저 사람은 스스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해치고도, 세존 앞에서 사문이
되어 바로 멸도하였는데, 이제 나라고 한들 무엇 때문에 저 사람을 본받아서 사문이 되어 멸도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곧 부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한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역시 어머님의 생명을 해치고 대역죄를 저질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착하고 갸륵하구나. 그대는 진실 그대로 속이지 않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다. 또 여래 앞에까지 나와서 사실 그대로 털어놓았으니, 한 입으로 두 말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속이지도 않았다. 마땅히 스스로 마음의 법을 관찰하여, 어떤 마음이 어머니를 살해했는지 사유해 보라. 과거의 마음이 그랬는가, 미래의 마음이 그랬는가, 현재의 마음이 그랬는가. 만일 과거의 마음이라면 이미 사라져 버렸다. 현재의 마음이라면 따로 따로 떠나 버리니, 처소도 없고, 방향도 없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의 마음이라면 아직 오지 않았으니, 모여 있는 곳도 없고, 되돌아옴도 보지 못하며, 갔다가 돌아옴도 없느니라,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음은 몸 안에도 굳게 서 있지 않으니, 몸 밖에도 있을 리 없으며, 경계도 없고, 양 사이에 처하지도 않으며, 가운데에 멈출 수도 않느니라.
그 마음을 살펴보면, 역시 푸른 색, 붉은 색, 누런 색, 흰 색, 검은 색 등 다섯 가지 색이 없느니라.
그대는 마땅히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마음에는 색(色)이 없으니, 볼 수도 없고, 머물 곳도 없으며, 물러남도 없고, 언설의 가르침도 없으며, 붙들어 가질 수도 없느니라. 그것은 마치 환술(幻術)과 같기 때문이다.
그대가 마음을 관찰하려고 하나, 분별할 수도 없고, 알아낼 수 없으며, 탐욕[]이라 이름할 수도 없고, 성냄을 찾을 수도 없으며, 어리석음을 알 수도 없으니, 탐[] 진[怒] 치[癡]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음에는 생사의 행이 없고, 지을 일도 없으며, 나타나는 일도 없고, 나타나 있지도 않느니라.
또 마음은 청정하여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느니라. 마음은 여기에도 있지 않고, 저기에도 있지 않으며, 다른 곳에도 있지 않으니, 마치 허공이 동등한 무리가 없고, 색상(色像)도 없으며, 언설의 가르침도 없는 것과 같다고 하리라.
이렇게 밝게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어디에도 의지하지 말라. 나를 나의 소유라고 말하지 말고, 처소를 세우지도 말며, 생각하지도 말고, 최고의 경지[畢竟]를 짓지도 말며, 무엇을 한다는 대상을 두지도 말고, 자기의 몸이라고 말하지도 말며, 우리와 나의 존재라고 말하지도 말고, 과거를 기억하지도 말라. 왜냐 하면 그대는 마땅히 일체의 온갖 법이 마치 텅 빈 허공[虛無]처럼 머무는 데가 없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또 잘 들어라.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일지라도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법에
해탈이 있다든지, 혹은 번뇌에 물든 사람일지라도 나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만일 마음이 청정하여 번뇌의 더러움이 없으면 모든 세계도 없으리라.”
이 때 어머니를 해친 대역죄인의 털구멍에서 지옥(地獄) 불이 솟아올랐다. 그 사람은 매우 뜨거운 고통으로 지독하게 시달렸으나, 아무도 구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불에 타고 있습니다. 부처님[天衆天]께서는 보시고 제발 구제하여 주옵소서. 대성(大聖)께 목숨을 들어 돌아가옵니다.”
이 때 세존께서 황금색의 팔을 뻗쳐 그 사람의 이마에 대시니, 즉시 불이 꺼지면서 고통이 없어졌다. 그는 부처님의 여러 가지 상호(相好)를 보았다. 그러자 몸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면서 편안해졌다.
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사문이 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그는 곧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에 세존께서 그에게 4제(諦)를 설해주셨다. 그 사람은 법문을 듣고 번뇌를 멀리 벗어나서 청정한 법안을 얻었다. 이어 법의 가르침을 수행하여 왕환(往還)의 이치를 체득하고 나한(羅漢)의 경지에 들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열반[泥洹]에 들고 싶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하여라.”
그러자 그 비구는 땅에서 허공으로 네 길 아홉 자나 뛰어 오르더니, 몸 안에서 불을 일으켜 스스로 그 몸을 태웠다. 그러자 백천의 하늘들이 허공으로부터 내려와서 공양하였다.
이 때 사리불(舍利弗)은 그 사람이 이 율법(律法)의 가르침을 받들어 멸도(滅度)에 드는 것을 보더니, 놀람과 동시에 이상하게 여기면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하신 분이시여, 참으로 그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일입니다. 여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어 법률(法律)을 설하시고, 마침내 저 대역죄인으로 하여금 법의 가르침을 받들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유별난 행자를 감당하여 구제하실 분은 오직 여래뿐이십니다. 또 큰 공덕의 갑옷을 갖춰 입은 박수동진보살과 모든 보살은 일체중생의 근원(根源)을 보면서 그 근원을 따라 제도(濟度)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 역시 우리네 성문(聲聞)과 연각(緣覺)들이 따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이여, 네가 말한 대로 이것은 부처님과 법인(法忍)보살의 경계니라. 또 사리불이여, 너희들은 보고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할지라도, 부처님은 멸도(滅度)에 드는 법으로 보기도 하고, 너희들은 당연히 멸도에 드는 사람으로 볼지라도, 세존은 살펴서 지옥에 떨어질 사람으로 알기도 하느니라. 혹은 덕이 있고 만족을 아는 거사[士]가, 한가롭게 살면서 계행을 받들어 지니고 삼매(三昧)의 선정(禪定)에 든다면, 너희들은 멸도에 이르는 법이라고 말할지라도, 여래는 반대로 지옥에 떨어지는 경계로 보기도 하느니라. 왜냐 하면 너희들은 마음의 행과 멀리 떨어져서 중생심의 근원을 두루 살펴 알 수 없으니, 중생의 소행을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사리불이여, 너는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심오한 법을 듣고 남김 없는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지 않았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예, 보았습니다. 하늘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분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머니를 해친 사람은 과거에 5백 부처님을 섬기고 온갖 공덕의 종자를 심었느니라. 부처님들을 섬기는 동안 깊고 묘한 법을 들으면서 마음이 본래 더 없이 맑고 뚜렷이 밝은 이치를 환하게 알아왔느니라. 그러다가 또 지금 이 법의 가르침에 들어와서 일체 법을 받들어 해탈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이 법의 이치를 듣고 곧바로 믿고 좋아한다면, 마침내 남김 없는 경지에 이르러 해탈을 얻는다. 또 남에게 홀리어 마음이 어긋난 사람이 나쁜 벗을 따라 죄악을 범할지라도, 법인(法忍)을 잃지 않는다면 마침내 남김 없는 경지에 이르러 해탈을 얻는다. 나는 이들이 나쁜 세상에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믿고 좋아해도 이와 같은 일이 있고, 깊고 묘한 법을 얻어도 이와 같은 일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이 바른 길에 살면서 이 법을 듣고 좋아하면서 믿거나, 평등한 장구와 게송을 강설(講說)하여 널리 다른 사람들에게 분별하여 연설할지라도, 그 공덕이 다 이와 같으니, 더욱이 어찌 가르친 대로 받들어 닦고 행하는 일이겠느냐.”
박수보살과 뛰어난 온갖 보살들과 대가섭과 아사세왕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처소로 와서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린 뒤 한쪽으로 물러 나와 앉았다.
이 때 사리불이 박수보살과 법회대중이 다 앉은 것을 보고,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과연 의심을 끊었습니까?”
왕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이미 끊었습니다.”
사리불이 또 물었다.
“어떻게 끊었습니까?”
왕이 답했다.
“받아들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음을 끊음이라고 하며, 얻음이 없는 본(本)과 말(末)을 끝까지 알고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것을 끊음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사세왕이 받아야할 죄 값은 얼마이며, 남은 죄 값은 얼마나 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왕의 남은 죄[餘殃]는 겨자씨처럼 작고, 없어진 죄는 수미산처럼 많으니라. 심오한 법이 설해진 경전의 이치에 들어가서 생겨남이 없는 법에 이르렀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사세왕은 마땅히 지옥[惡趣]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지옥에 갈지라도 마치 도리천자(?利天子)가 칠보중각(七寶重閣)의 교로장(交露帳)을 타고 염부제(閻浮提)에 내려왔다가, 바로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사이니라.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아사세왕은 보타라( 寶?羅)[진(晉)나라 말로 집욕(集欲)이라고 한다]라는 지옥에 들어갈지라도 곧 나오게 되니, 그 몸이 당할 고통은 걱정하지 않느니라.”
사리불이 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아사세왕은 모든 감관[根]을 밝게 통달하여 여기에 이른 것입니까? 아니라면 어째서 지옥의 지독한 고통을 치러야 할 엄청난 재앙과 온갖 죄악을 이렇게 덜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은 과거에 이미 72억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여 온갖 공덕의 종자를 심으면서 경전을 다 받들어 왔을 뿐만 아니라, 그 듣고 안 법을 사람들에게 권장하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이다. 너는 저 박수보살을 보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예, 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박수동진보살은 아사세왕에게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키도록 권장하였다. 또 헤아리기 어려운 지난 겁에 이구장(離垢藏)여래와 무수한 부처님들도 다 박수보살을 통해서 발심하셨으며, 또 그 겁 동안에 3억(億)의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들도, 모두 다 박수보살의 권유로 법륜(法輪)을 굴리면서 오래도록 수명을 누리셨느니라. 이러한 행은 비록 백천의 세존일지라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니라.
이제 아사세왕은 설법을 듣고 의심을 결단하였느니라. 그것도 오직 박수보살만이 왕의 그물처럼 얽힌 의심을 풀어줄 수 있었느니라. 왜냐 하면 박수동진보살은 자주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이 심오한 법을 들어왔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그에 알맞은 제도(濟度)를 받으려면, 발심[發意]할 때부터 본 스승을 정해야 한다. 본 스승이 제자를 위해 법을 설해 주어야만, 비로소 그 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니라.
아사세왕은 집욕(集欲)지옥을 가볍게 벗어나서, 장엄(莊嚴)이라는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이 장엄(莊嚴)세계는 여기에서 위쪽으로 5백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서 있느니라. 그 곳 부처님의 이름은 보영(寶英)이라고 하며, 진리대로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으로서,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여기서 아사세왕은 다시 박수보살을 만나 심오한 경법(經法)을 듣고 무생법인(無生法忍: 不起法忍)을 얻느니라.
그 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인(忍)세계에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면, 그 때 아사세왕은 다시 인(忍)세계로 돌아와서, 부동보살대사(不動菩薩大士)라고 이름하게 되고, 미륵여래(彌勒如來)는 마땅히 법회대중에게 부동보살이 전생에 일으킨 일을 설하리라.
‘과거 능인(能仁)부처님의 세상에, 아사세(阿?世)라고 이름하는 대국왕(大國王)이 나쁜 벗의 말을 따라 스스로 그 아버지를 해쳤으나, 박수보살이 설한 경전(經典)을 듣고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었으며, 그로 인해 죄업을 남김 없이 없앴느니라.’
미륵여래가 부동보살을 인연으로 이 경법을 설하면, 8천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고, 8만 4천 보살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악의 덩어리를 덜어내게 되리라.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아사세왕은 이후부터 헤아릴 수 없는 8백 겁 동안 보살행(菩薩行)을 닦고 중생을 교화하면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장엄하리라.
또 사리불이여, 아사세왕이 교화할 중생은, 성문(聲聞)의 경계에 있든지, 연각의 경계에 있든지, 대승을 행하는 경지에 있든지, 이들 중생에게는 반드시 죄의 번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번뇌의 장애[塵垢弊]가 없게 되고 의심도 다 제거하게 되어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느니라.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8천 겁을 지내고 나면, 아사세왕은 마땅히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얻어서, 더없이 바른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 되리라. 그 때 겁의 이름은 희견겁(喜見劫)이라 하게 되고, 세계의 이름은 무조음(無造陰)이라고 하게 되며, 그 부처님의 이름은 정계(淨界)로서, 진리대로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이라 하게 되고, 14겁(劫)의 수명을 누리게 되리라. 이 부처님께서 거느린 성문은 70만의 대중[大會]으로서, 모두 다 일체의 지혜로 8해탈문(解脫門)을 지원(志願)하게 되고, 12억의 모든 보살은 다 지혜바라밀[慧度無極]과 교묘한 방편[善權方便]을 성취하게 되리라. 그 부처님이 멸도한 뒤에도 바른 법이 1억 년 동안 머물게 되므로, 무조음(無造陰)세계의 중생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의심이 없게 되고, 죽은 뒤에도 삼악도[三塗]에 떨어지지 않게 되리라. 왜냐 하면 그 중생들이 정계여래(淨界如來)께서 강설하신 경법(經法)을 듣고 번뇌가 없어져서 청정한 경지를 얻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의 모양을 보면서, 모양으로 모양을 판단하지 말라. 마땅히 모양을 가지고 모양을 판단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사람의 근본은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홀로 여래만이 모양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니, 부처님과 같이 행하는 이라야 모양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니라.”
현자(賢者) 사리불과 법회대중은 놀라고 또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오늘 이후부터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다른 사람을 모양으로 관찰하지 않겠습니다. 또 감히 ‘어떤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거나, 어떤 사람은 멸도에 든다’ 라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 하면 중생의 행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이를 설하시어 아사세왕의 수기(授記)에 비유하셨다. 그러자 3만 2천의 천자(天子)는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들은 각기 서원(誓願)하면서 말했다.
“정계세존(淨界世尊)께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셨을 때, 저희들은 마땅히 그 부처님의 국토인 부조욕(不造欲)세계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수기(授記)를 내리셨다.
“마땅히 저 국토에 태어나게 되리라.”
12. 월수수결품(月首受決品)
아사세왕(阿?世王)은 월수(月首)라고 이름하는 한 태자를 두었는데, 나이는 아직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
월수(月首) 태자는 구슬 목걸이를 풀어서, 부처님께 뿌리면서 말했다.
“저는 이 공덕으로 힘을 다하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돕겠습니다. 정계여래(淨界如來)께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셨을 때, 저는 이 훌륭한 종자[善本]로 저 국토에 태어나서,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이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래와 비구들을 공양하겠습니다. 또 정계여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도 사리(舍利)와 경전(經典)을 받들어 모시기를 바라오며, 그 뒤 또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성취하여 더없이 바르게 깨달은 부처가 되기를 원하옵니다.”
그러자 월수태자가 뿌린 구슬 목걸이는 곧바로 허공에 뜨더니, 일곱 가지 보배의 교로붕각(交露棚閣)으로 변했다. 그 교로붕각은 사방(四方)과 사유(四維)와 위와 아래가 모두 평등하여 엄정하고 아름답고 미묘하였다. 그 교로각(交露閣) 안에는 하늘 비단이 깔린 네 가지 보배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여래께서 그 의자에 앉으시니, 상호(相好)가 장엄하셨다.
이 때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부처님의 웃음에는 무수한 법이 들어 있었다. 그 웃음과 함께 부처님의 입에서 헤아릴 수 없는 백천 빛깔의 광명이 흘러나왔다. 이 광명은 말할 수 없이 끝없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비추면서, 범천(梵天)과 마(魔)의 궁전을 뛰어넘으니, 그 사이에 있는 해와 달의 광명은 저절로 가려져 버렸다. 광명 은 다시 돌아와서 부처님의 몸을 수없이 돌다가 부처님의 이마 속으로 들어갔다.
현자(賢者) 아난(阿難)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론쪽 어깨의 옷을 걷어올리고, 길게 끓어 앉아서 두 손 모아 게송(偈頌)으로 찬탄하였다.
일체지혜가 따를 수 없는 지혜로
온갖 장애를 뛰어넘으시고
마음 따라 행하는 중생의 근원을
낱낱 살펴 소상하게 아시면서
처음과 끝을 밝게 가려내시고
근기와 때에 알맞은 설법으로
세상의 많은 소원 두루 비추시니
그 웃으신 까닭을 알려 주소서.
헤아릴 수 없는 시방세계 중생들이
부처님 앞에 모여들어 법회 이루고
셀 수 없이 많은 중생들마다
깊은 뜻을 하나 하나 물을지라도
능인여래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물음마다 감당하여 결단하시니
훌륭한 분이여, 부디 가엾게 여기시고
그 웃으신 까닭을 설하옵소서.
지난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
더없이 훌륭하게 머물 자리 머무셨으며
미래 세상에 오실 부처님들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여섯 갈래 험한 길을 분별하시고
차별 떠난 큰 지혜로 저 언덕에 가시리니
웃음을 보이신 까닭이 무엇인지
번뇌에서 떠나도록 이 의심을 풀어주소서.
일월보다 더 찬란한 광명으로
마군과 제석과 범천의 궁전을 덮고
온갖 철산의 지옥까지 사무쳐서
산머리 지옥마다 두루 비추시며
시달리는 중생들을 편안케 하시고
온갖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시면서
훌륭한 설법으로 온갖 번뇌를 없애시니
무슨 이유로 기쁘게 웃으십니까.
이 때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월수태자(月首太子)의 행을 보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이 월수태자는 부처님 앞에 온갖 공덕의 종자를 심고,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돕겠다고 서원(誓願)하였으니, 점차 공덕을 쌓으면서 보살행(菩薩行)을 닦게 되리라. 그러다가 정계여래(淨界如來)가 바른 깨달음을 성취했을 때, 저 불국토(佛國土)에 태어나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으신 정계여래를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게 되리라. 이렇게 이 여래의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온갖 것을 다 베풀어 모실 뿐 아니라, 멸도한 뒤에도 사리(舍利)를 받들어 공양하면서, 바른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 그 뒤 법의 운(運)이 다하고 나면 생을 마치고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서, 그 겁 동안에 위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얻고, 더없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여 월영(月英)이란 이름과 함께 여래(如來) 지진(至眞) 등정각(等正覺)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도법어(道法御) 천인사(天人師) 위불중우(爲佛衆祐)라고 이름하리라.
그 국토의 온갖 것과 부처님 수명과 모든 비구의 숫자는 정계세존(淨界世尊)때와 동등하여 차이가 없느니라.”
이 때 다른 세계로부터 박수보살을 따라 인(忍)세계로 온 보살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박수동진(軟首童眞)보살이 유행설법(遊行說法)을 행하여 지나온 곳을 보옵소서. 그 국토의 처소마다 다 여래를 위하여 헛되이 보낸 일이 없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더 이상 수고롭거나 근심하실 일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박수보살이 온갖 중생을 거둬들였기 때문에 끝내 나쁜 세상이 없고 급하거나 한가롭지도 않으면서, 온갖 마군(魔軍)의 일과 죄에 덮인 번뇌의 더러움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주(州) 경계의 군(郡)과 나라의 현읍(縣邑)과 마을[丘聚]과 성곽(城郭)에도 바른 법이 유포되고 있사오니, 그곳을 보옵소서. 여래께서 유행하시거나 거처하신 곳에는 쉴 틈[虛空]이 없사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선남자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의 말대로 이 경전이 유포되어 선양하는 곳이, 바로 여래께서 유행하거나 머무는 자리이며, 여래께서 정성을 다하여 가르치시는 도량이니라.
또 선남들이여, 아득히 먼 옛날 정광(錠光)부처님 때, 나는 그 세상에서 수기(授記)를 받았느니라. 그 때 나는 진흙탕 길에 머리털을 깔아놓고 정광(錠光)부처님께서 밟고 지나가시도록 하고 나서, 연꽃을 뿌려 공양하여 법인(法忍)을 얻었느니라.
그 정광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授記)를 내려 말씀하셨다.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겁을 지낸 뒤, 성불(成佛)하여 능인여래(能仁如來)라고 이름하리라.’
선남자들이여, 이 때 정광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수기를 내리시고 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땅을 발로 밟고 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보살이 머리털을 깔아 법인(法忍)을 얻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천상(天上)과 인간이 신성한 절의 불탑을 세울 곳이니라. 누가 이 자리에 탑을 세우겠는가?’
그러자 80억의 천자들이 동시에 말했다.
‘저희들이 탑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 법회 대중 가운데 현천(賢天)이란 한 장자(長者)가 정광여래께 아뢰었다.
‘제가 이 땅에 탑사(塔寺)를 세우겠습니다.’
정광여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세우도록 하라. 선남자여.’
현천장자(賢天長者)는 곧 그 곳에 칠보탑(七寶塔)을 세워서 원만하게 장엄하였다.
장자는 돌아와서 정광여래께 여쭈었다.
‘제가 이 땅에 칠보 탑을 세웠사오니, 그 복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광여래께서 곧 답하셨다.
‘장자여, 알고 싶은가? 훌륭한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땅의 자리를 생각해 보면, 그 자리의 넓이는 수레바퀴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체중생은 그 자리의 땅이 끝날 때까지 아래로 파내려 가서, 그 흙과 먼지를 남김없이 다 취하여 사리처럼 소중히 모시면서 공양하느니라.
이를 위의 33천(天: 帝釋天)까지 가득 찬 7보로 부처님께 보시한 공덕과 비교해도, 탑사(塔寺)를 세운 복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탑사를 세운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장자가 여기에 공덕의 종자를 심었으니, 내가 마납(摩納: 梵語 摩納縛迦의 줄인 말, 善慧 등으로 번역.)에게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얻어 성불(成佛)하리라고 수기[記]한 것처럼, 역시 그대에게도 장차 큰 도를 성취하리라는 수기를 내리노라’고 하셨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의 현천장자(賢天長者)가 어찌 다른 사람이랴.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말라. 왜냐 하면 이 법회 대중 가운데 장자의 아들로서 저 수행(受行)이라고 이름하는 이가, 바로 그 때의 현천장자이기 때문이다.
나 이제 그에게 수기를 내리리라.
‘미래 세상에 마땅히 불도(佛道)를 깨달아서 선견(善見)이라는 이름과 함께 여래(如來) 지진(至眞) 등정각(等正覺)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도법어(道法御) 천인사(天人師) 위불중우(爲佛衆祐)라고 이름하리라.’
그러므로 선남자[族姓子]와 선여인[族姓女]과 비구와 비구니와 청신사(淸信士)와 청신녀(淸信女)는 그 누구든지 머물 때나 앉을 때나 스스로 이 경전(經典)을 쓰고 지니고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남을 위해 설한다면, 그 자리의 땅이 아래로 다할 때까지 일체의 흙은 물론 온갖 티끌마저도, 중생들은 사리(舍利)처럼 귀하게 모시리라. 왜냐 하면 법인(法忍)을 얻은 보살이 성취한 온갖 공덕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노라.
가령 선남자와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寶)를 가지고, 진리대로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은 여래께 보시하기를 밤과 낮이 다하도록[晝夜 各三] 게으르지 않을지라도, 또 그 7보로 때를 따라 보시하기를 1겁(劫)이나 그 이상의 겁에 이를지라도, 이 경전을 받드는 공덕만 못하리라.
아사세왕은 모든 의심을 없애어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가려 덮은 온갖 번뇌[諸陰蓋]도 말끔히 씻어내어 일체 온갖 법의 평등한 경지를 분별하였다. 그러니 이 경전을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며, 받들어 지니고 읊고 외우기도 하고, 이를 듣고 기쁘게 믿으며, 죽백(竹帛)에 쓰고 경책(經冊)을 만들어서 비단으로 싸서 좋게 장엄하고, 손에 잡고 보면서 이 바른 법을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한다면, 이 공덕의 복은 저 복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으리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비록 백 겁 동안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니고, 널리 그칠 때 그쳐 만족을 알고 한가롭게 살면서, 즐거운 뜻을 버리지 않을지라도, 이 경전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믿는다면, 그 공덕의 복은 저 금계(禁戒)를 지키는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비록 백 겁 동안 인욕(忍辱)을 행하면서, 일체중생의 퍼붓는 욕설뿐 아니라, 손발로 치고 박고 몽둥이로 때리는 온갖 고통을 다 참아왔을지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요의(要義)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믿는다면, 그 공덕의 복은 저 인욕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비록 백 겁 동안 정진을 행하여, 일체중생을 공양하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을지라도, 이 경전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믿는 공덕보다 못하리라.
비록 백 겁 동안 선정(禪定)의 사유(思惟)를 행하면서 흔들어 방해하는 이에게 마음이 홀리거나 어지럽지 않을지라도, 이 경전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믿는 공덕보다 못하리라.
비록 백 겁 동안 지혜를 행하면서 두루 보아 환하게 알고 통달하지 못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이 법을 듣고 본래 청정한 마음을 끝까지 찾아서 자연 그대로 진실한 경전의 품(品)을 밝혀내고, 기쁜 마음으로 믿으면서 받들어 지니고 읊고 외운다면, 그 공덕의 복은 저 지혜의 복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왜냐 하면 두루 통달한 지혜를 그 무엇보다 빠르게 도와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법을 듣고 모든 보살은 다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이미 이 경전을 받들었사오니, 이 뒤로 어떤 불국토(佛國土)를 유행할지라도, 머무는 곳마다 마땅히 이 경전을 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온갖 경전은 바로 불사(佛事)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 때 모든 보살은 곧 꽃을 뿌렸다. 그러자 꽃들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퍼졌다.
보살들은 큰 소리로 찬탄하면서 말했다.
“이 경전이 염부제(閻浮提)에 퍼져서 오래도록 머물러 온 것은, 능인(能仁)부처님께서 바른 법을 뚜렷하게 이루시고, 박수동진보살이 길이 보존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이 경전을 듣게 되었습니다. 비록 들었을지라도, 저희들은 부처님과 박수보살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사오니, 마땅히 무엇으로 큰 공양을 올려야 하겠습니까. 가령 어떤 선남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경전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은혜를 갚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를 뵙고 이 경전을 듣고자 한다면, 저희들은 이 사람을 세존과 다름없이 보겠습니다. 또 만일 어떤 선남자가 진리 그대로 평등하고 바르게 깨치신 여래께 공양하고자 한다면, 저희들은 마땅히 그 선남자를 공양하겠습니다. 또 비록 어떤 선남자 선여인을 볼지라도 부처님처럼 우러러보겠습니다.”
모든 보살은 이렇게 찬탄하고 나서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에, 홀연히 이 불국토(佛國土)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본 국토로 되돌아간 그들은 각기 그들의 여래 앞에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모셔온 경법(經法)을 설하였다. 이렇게 부처님이 계신 낱낱 국토마다 깨우치고 인도하고 교화하니,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은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다.
13. 촉루품(囑累品)
이 때 세존께서 미륵(彌勒)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이 바른 법의 밝은 경전을 받들어서, 한량없는 사람들에게 잘 분별하여 설해야 하리라. 그러면 안온한 경지에 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가엾게 여기는 공덕이 깊어지면서, 모든 하늘과 인간세상이 다 은혜를 입게 되리라.”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저는 분부하신 대로 이 경전을 받들겠습니다. 저는 과거의 평등하고 바르게 깨치신 부처님[過去等正覺]으로부터 이 경을 듣고 받들었으며, 지금 현재 또 직접 세존을 대면하여 이 법을 들었습니다. 대성(大聖)이시여, 여래께서 현재 계시는 동안에도 저는 이 경을 연설하여 널리 유통시키겠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제가 비록 도솔천(兜率天)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이 법을 설하여 중생들에게 온갖 공덕의 종자를 심도록 하겠습니다. 후세에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대승(大乘)에 뜻을 품었다는 말씀을 들으신다면, 마땅히 이 미륵이 세운 일임을 아셔야 합니다. 만일 이 경을 받들어 지닌 사람에게 마군(魔軍)이 그 틈을 엿보아 방해하고자 한다면, 저희들은 세존의 거룩한 뜻을 이어서 그 사람에게 어떠한 결점도 생기지 않도록 잘 보호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帝釋)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이 경의 아사세품(阿?世品)을 받들어서, 일체 번뇌를 끊도록 하라. 왜냐 하면 비록 원한을 품은 아수륜(阿須倫: 阿修羅)이 전투를 일으킬지라도, 이 경전을 염송(念誦)한 공덕으로 하늘들이 이기고 아수륜은 항복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구익(拘翼: ?尸迦, 帝釋의 姓)이여, 이제 너에게 부탁하노라. 만일 주(州) 경계의 군(郡)과 나라의 현읍(縣邑)과 성곽(城郭)과 마을[丘聚]에 이 경전이 있다면, 반드시 그 땅을 보호하여 원수의 적이 틈을 엿보지 못하게 하라. 비록 관청에 불려가거나, 적진(敵陣)에 잡혀가거나, 사나운 짐승을 만나거나, 귀신을 만나거나, 도적을 만나거나, 혹은 물과 불의 재난(災難)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곧바로 이 경전을 생각하여 가송(歌頌)을 설하여라. 그러면 비록 원수의 집이거나 국경을 침범하는 도적이나 반역의 무리일지라도 그 틈을 엿볼 수 없으리라.”
이 때 부처님께서 현자(賢者)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이 경전을 받들어 지니면서 읊고 외우고 읽도록 하라.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너에게 이 경전의 요의(要義)를 구했을 때, 그 선남자 선여인은 모든 의심을 끊어서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온갖 번뇌를 씻어내어 영원히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또 모든 마군(魔軍)이 죄의 장애[罪蓋]로 덮어 가릴 수 없고, 전생에 지은 재앙의 죄악과 삿된 해침의 장애도, 저절로 소멸하리라. 그 까닭은 만일 이 경을 듣는다면 의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부탁하면서 진심으로 경계하기를 명하노라. 만일 반역죄를 범한 사람이 이 경전의 요의(要義)에 들어가서 좋아하고 기뻐한다면, 반역죄가 없어지고, 위해(危害)를 가하지도 않으며, 죄악의 장애도 없어지리라.”
나이 많은 가섭(迦葉)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大聖)이시여, 저는 보았기 때문에 이 경전을 증명합니다. 좀 전에 아사세왕의 궁전에서 박수보살이 반역죄를 낱낱이 가려 설하자, 아사세왕은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그물처럼 얽힌 의심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그 때 홀로 ‘아사세왕은 본래 일체의 온갖 법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여 모든 반역의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본래 청정한 자연 그대로의 성품입니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생각하고 나란 존재를 두어 온갖 견해를 세웠기 때문에, 온갖 반역이 본래 청정한 경지를 단련하여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아사세왕이 스스로 익혀온 뒤바뀜과 거짓된 온갖 생각에 쌓여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본래 청정한 경지를 추구하여 밝혀내고, 온갖 어려움에서 벗어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모든 중생에게 죄도 없고 지옥의 법[惡趣法]도 없는 경지에 들어간다면, 바로 초월하여 생사[終始]가 없는 경지에 이른다고 설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가섭이여, 참으로 그대의 말대로 모든 부처님의 도는 바른 이치이므로 번뇌가 없느니라.”
현자(賢者) 아난이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세우셔서 이 다음 말세에 염부제(閻浮提)에서 유행케 하옵소서.”
이 때 세존께서 좌우의 옆구리로 큰 광명을 놓으시고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셨다.
그러자 온갖 나무와 장벽(牆壁)에서 저절로 음향(音響)이 흘러나왔다.
“여래께서는 이미 이 경전을 세우셨습니다. 비록 이 경전이 큰 바다 가운데서 겁의 큰 화재를 만날지라도, 반드시 이 경전을 듣게 되므로 중간에 끊겨 듣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나무와 장벽의 음향과 같다. 최후의 말세가 오더라도 온갖 공덕의 종자를 심은 보살들은 이 경을 받들어 지니면서 결코 중간에 잃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 9만 6천의 하늘들과 사람들이 번뇌를 멀리 벗어나서 청정한 법안을 얻었고, 6만 8천의 하늘들과 사람들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으며, 2만 2천 보살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8천 사람이 온갖 탐욕에서 벗어났다.
이 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 진동을 반복하는 가운데 모두에게 알리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은 다 와서 이 경전에 공양하십시오.”
또 온갖 하늘의 악기들은 타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면서 널리 알렸다.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은 다 와서 꽃을 뿌리고 잡향(雜香) 도향(搗香) 택향(澤香)을 태우면서, 모두들 직접 이 구르는 법륜(法輪)을 만나보십시오.
여래께서 설하신 이 경은 온갖 삿된 외도를 항복시키고 온갖 삿된 행을 물리쳐서 모든 마군(魔軍)을 누르는 여래의 법인이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여래의 법을 닦으십시오. 여러분들은 마땅히 분별하여 구경(究竟)의 바른 견해를 구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설하시자, 아사세왕과 박수동진(軟首童眞)보살과 미륵(彌勒)보살과 일체 보살과 또 대성문 사리불(舍利弗) 대가섭(大迦葉) 수보리(須菩提) 아리(阿離) 등과 그리고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과 아수륜(阿須倫)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기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