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가시국왕의 흰 향상(香象)이 장님 부모를 봉양하고 두 나라를 화목하게 한 인연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결정코 보시하되 조금도 의심을 내지 말라. 부모와 부처님과 그 제자와 멀리서 오는 사람과 멀리 떠나는 사람과 병자와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이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참으로 놀랍고 훌륭하십니다. 항상 부모를 찬탄하고 공경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항상 존중하고 공경하였느니라.”
비구들은 여쭈었다.
“존중하고 찬탄한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두 국왕이 있었다. 하나는 가시국(迦尸國)의 왕이요, 또 하나는 비제혜국(比提醯國)의 왕이었다.
비제혜왕에게는 큰 향상(香象)이 있었는데, 그는 그 향상의 힘으로 가시왕의 군사를 무찔러 항복받았다. 그러자 가시왕은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어떻게 향상을 얻어 저 비제혜왕의 군사를 무찔러 항복받을 수 있을까?’
그 때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저 산에서 흰 향상을 보았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사람들을 구하였다.
‘누구나 저 향상을 잡아 오면 많은 상을 주리라.’
어떤 사람이 그 모집에 응하여 군사를 많이 데리고 가서 그 코끼리를 잡자, 코끼리는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멀리 도망가면 눈 멀고 늙은 부모는 어떻게 하는가? 차라리 순순히 왕에게로 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 때 사람들은 그 향상을 잡아 가지고 왕에게로 갔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좋은 집을 짓고 털담요를 깔아주고, 여러 기녀들과 함께 거문고와 비파를 타면서 모두 즐기었다. 그러나 코끼리는 음식을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 때 코끼리를 지키는 사람이 와서 왕에게 아뢰었다.
‘코끼리가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왕이 몸소 코끼리에게 갔다. 왕은 코끼리에게 물었다.
‘너는 왜 아무것도 먹지 않는가?’
코끼리가 대답하였다.
‘내게는 눈 멀고 늙은 부모가 계시는데, 그에게 물이나 풀을 주는 이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 나만 어떻게 먹겠습니까?’
코끼리는 이어 말하였다.
‘내가 만일 달아나려 하였다면 왕의 저 많은 군사들도 나를 막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부모가 눈 멀고 늙었기 때문에 순순히 따라 왕에게 왔습니다. 만일 왕이 내가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부모가 목숨을 마칠 때까지 공양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우리는 사람 중의 코끼리요, 이 코끼리는 코끼리 중의 사람이다.’
가시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부모를 미워하고 천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 코끼리로 말미암아 왕은 곧 나라에 영을 내렸다.
‘만일 이제부터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큰 죄를 주리라.’
그리고 나서 코끼리를 놓아 돌려 보내어 부모를 공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부모가 살 만큼 살다가 죽자 코끼리는 약속대로 왕에게 돌아왔다.
왕은 코끼리를 얻어 매우 기뻐하면서, 곧 코끼리를 장엄하게 하여 저 비제혜국을 치려 하였다.
코끼리는 왕에게 말하였다.
‘싸우지 마십시오. 대개 싸움에는 서로 피해가 많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저들은 나를 속이고 업신여긴다.’
‘저를 거기 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 원수들로 하여금 감히 왕을 속이거나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네가 가면 혹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겠는가?’
코끼리는 대답하였다.
‘아무도 저를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지 못할 것입니다.’
코끼리는 곧 그 나라로 갔다.
비제혜왕은 코끼리가 왔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몸소 나가 맞이하였다. 그는 코끼리를 보자 말하였다.
‘우리 나라에 살아라.’
코끼리는 말하였다.
‘여기 머물 수 없습니다. 나는 자라서부터 언약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저 나라 왕에게 돌아오겠다고 이미 약속하였습니다. 당신들 두 국왕이 서로 원한을 풀고 제각기 자기 나라에 만족하고 살면 유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기게 되면 원수를 더 만들고
지게 되면 근심과 괴로움 더하나니
이기고 지는 것 다투지 않으면
그 즐거움은 가장 제일이니라.
코끼리는 이 게송을 마치고 곧 가시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부터 두 나라는 서로 화목하게 지냈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가시국왕은 바로 지금의 저 바사닉왕(波斯匿王)이요, 비제혜왕은 저 아사세왕이며, 그 흰 코끼리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느니라.
그 때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였기 때문에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였고, 또 그 두 나라를 화목하게 하였는데, 지금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