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 제 2장 5품
- 벨루바 마을에서
이렇게 암바팔리의 망고 동산에서 마음껏 머무신 다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부터 벨루바 마을로 가자.”
“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벨루바 마을로 향하셨다. 마을에 도착하신 세존께서는 마을에서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바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벗, 지인(知人), 지기(知己)를 의지하여 베살리로 가는 것이 좋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우기(雨期)를 지내도록 하여라. 나는 이 벨루바 마을에 남아 우기를 보내리라.”
“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리고 각각 벗, 지인, 지기를 의지하여 베살리의 각 지방에 흩어져 그곳에서 우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세존만은 혼자 이곳 벨루바 마을에 머무시면서 우기를 맞이하셨다.
한편 우기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께서는 중병(重病)에 걸리셨다. 심한 고통이 엄습하여 죽어 버릴 것만 같았지만, 세존께서는 바르게 사념하시고,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시고 마음이 번잡하지 않게 하여 고통을 참으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셨다.
‘내 가까이에서 시봉하는 이들에게는 여태껏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비구들에게는 한 번도 깨달음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열반에 들어 버린다는 것은 붓다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진(精進)으로 이 병을 극복하고, 유수행(留壽行:생명을 연장하는 행위)을 확립하여 머물도록 하자’라고.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정진으로 그 병을 극복하시고 유수행을 확립하시어 지내셨다. 그렇게 하는 동안 세존께서는 병에서 회복되셨다.
그토록 심하던 병도 차츰 치유되어 병석에서 일어나신 세존께서는, 정자의 뒤뜰에 자리를 마련하시어 앉으셨다. 아난다 존자가 그곳으로 찾아와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늘은 편안하게 보이옵니다. 세존께서는 이제 병도 치유되시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을 듯이 보이옵니다. 세존의 옥체는 아직 완쾌한 것 같지는 않지만 특별히 나쁜 곳도 있는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편찮으신 동안 저에게는 티끌 만한 불안도 없었사옵니다. 저는 ‘한 숨 돌리는 정도의 시간이다’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사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별도의 어떤 가르침을 내리시지 않는 동안에는 결코 열반에 드시는 일은 없다’라고.”
“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가르침을 설하였느니라.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는 중요한 것은 비밀로 한다는 따위는 없느니라.
또 아난다여! 만약 어떤 사람이 ‘비구의 모임을 내가 지도하고 있다’든가, 혹은 ‘비구의 모임은 나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구의 모임에 대해 어떤 지시를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난다여! 여래는 ‘비구의 모임을 내가 지도하고 있다’든가, 혹은 ‘비구의 모임은 나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 일은 결코 없느니라.따라서 아난다여! 여래가 비구의 모임에 대해 어떤 지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아난다여! 이제 나도 늙었다. 나이를 먹어 고령이 되었느니라.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렀다. 나도 이제 나이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를 가죽끈으로 묶어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끈으로 묶어 겨우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느니라.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모습(想)을 마음으로 생각하여 그리지 않고, 어떤 감수(感受)가 있다면 그것을 멸하여, 모습(相,刑) 없는 마음의 평정(無相心定)을 구족하여 지낼 때, 아난다여! 여래의 몸은 평안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너희들 비구도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할 것이며 타인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또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할 것이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아난다여! 비구가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하여 지내는 것, 그리고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하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어떤 것이겠는가?
여기서 아난다여! 비구가 몸에 대해 그것을 잘 관찰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대해서도 탐욕,근심을 초월하여 사는 것, 내지는 몸만이 아니라 감수와 마음, 모든 존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잘 관찰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대해 탐욕과 근심을 초월하여 사는 것,
아난다여! 이것이 비구가 자신을 의지처로 하여 자신에게 귀의하고 타인에게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며, 또한 진리를 의지처로 하여 진리에 귀의하고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니라.
아난다여! 어떤 비구가 만일 내가 죽은 다음일지라도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하며, 타인에게 귀의하지 않고 살며, 또 진리를 귀의처로 하여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산다면
아난다여! 그런 사람은 내가 부정하는 어두운 세계를 초월하여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