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스님. 선덕왕 때의 기승(奇僧). 천진공(天眞公) 집에 심부름하는 할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이름을 우조(憂助). 7세 때에 천진공이 창병이 나서 죽게 되자 우조가 고칠 수 있다 하므로 불렀더니, 병상 아래에 이르러 아무말도 하기 전에 벌써 창이 터져 병이 나았는데, 공은 우연한 일이거니 생각하였다. 자란 뒤에 매를 기르게 하더니, 공의 동생이 지방으로 벼슬살이를 가면서 공의 매를 빌려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공이 매 생각이 나서 내일은 우조를 보내어 찾아오려 생각하였더니, 이것을 미리 알고 밤새 매를 찾아다 이튿 날 아침에 바쳤다. 공이 크게 놀라면서 먼저 그의 창병을 낫게 하던 일도 우연한 일이 아닌 줄 깨닫고 “성인이 내 집에 태어난 것을 알지 못하고 버릇 없는 일이 많았으니 그 죄가 한량이 없다, 지금부터 나의 스승이 되어 지도하여 주시오” 하고 절을 하였다. 우조는 본색이 드러나자 출가하여 혜공이라 이름하다. 어느 작은 암자에 있으면서 삼태기를 지고 취해 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부궤 화상(負?和尙)이라 이름하고, 그의 암자를 부개사(夫蓋寺)라 불렀다. 또는 우물 속에 들어 가서 몇 달씩 나오지 않았고, 나올 때에는 으레히 벽의 동자(碧衣童子)가 먼저 나왔으며, 우물에서 나와도 옷이 조금도 젖지 않았다 한다. 만년에는 항사사에 있었으며, 원효(元曉)가 경소(經疏)를 지을 때에 의심나는 것은 이 스님에게 와서 묻고, 서로 농을 잘 하였다. 하루는 두 스님이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돌위에 똥을 눈뒤에 혜공이 장난삼아 “네 똥, 내 고기”라 하였으며 이로써 그 절 이름을 오어사(吾魚寺)라 하였다 한다. 또 하루는 새끼줄을 가지고 영묘사에 가서 금당(金堂)과 좌우의 경루(經樓)와 남문 행랑 등에 둘러치고, 이 줄을 3일 뒤에 풀라고 하였는데 3일만에 선덕왕이 절에 행차하였다 한다. 또 어느 때에는 신인종(神印宗)의 명랑(明朗)이 금강사를 새로 짓고 낙성식을 하려 할 때에 스님이 오지 않자 명랑이 향을 꽂고 비니, 금방 이 스님이 들어오는 데, 당시 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옷도 젖지 않고 발에도 흙이 묻지 않았다. 또 죽을 때에는 공중에 떠서 죽을 것을 미리 말하였다 한다. 흥륜사 금당에 신라 10성(聖)의 탑상(塔像)이 있는데, 혜공도 그 가운데 들었으며, 당시 사람들이 승조(僧肇)의 후신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