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92) 고려 스님. 호는 환암(幻庵), 자는 무작(無作). 속성은 조(趙)씨. 풍양현(豊壤縣) 사람. 대선사(大禪師) 계송(繼松)에게 출가하다. 내외의 경전을 배우고 선시(禪試)에서 상상과(上上科)에 오르다. 금강산에서 2년 동안 마음 밝히는 공부를 하다가,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경산(京山)에서 5~6년을 지내고,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대자법화경(大字法華經)』을 써서 어머니의 명복을 빌다. 선원사의 식창 감(息彰鑑)에게 『능엄경』을 배우고, 충주 청룡사의 서북쪽에 연회암(宴晦庵)을 짓고 지내다. 공민왕이 회암사에 있게 하였으나 가지 않고, 오대산 신성암에 있으면서 고운암의 나옹(懶翁)에게 도요(道要)를 묻다. 왕이 또 궐내로 불렀으나, 중도에서 도피하여 산 속에 자취를 감추다. 1370년 나라에서 공부선장(工夫選場)을 열고, 나옹으로 하여금 선교(禪敎)의 납자(衲子)들을 시취(試取)할 때에, 나옹의 한마디에 여러 납자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였고, 오직 이 스님만이 답하여 합격되었으나 또 도피하여 위봉산에 숨었다가, 뒤에 왕명으로 불호사에 있게 되다. 임금이 내불당(內佛堂)으로 청하여 자주 법요(法要)를 묻다. 우왕 때 송광사에 옮기고, 1383년 국사(國師)가 되고,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오불심종 흥자운비 복국이정 묘화무궁 도대선사 정변지웅존자(大曹溪宗師禪敎都總攝悟佛心宗興慈運悲福國利正妙化無窮都大禪師正遍知雄尊者)라 호하다. 공양왕 말년에 나이 73세, 법랍 60년으로 입적. 글과 글씨에 능하였다. 비와 탑이 충주 청룡사 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