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0~1231) 고려 스님. 자는 영회(永廻). 속성은 신(申)씨. 상낙 산양(상주에 딸린 고을) 사람. 7세에 운문의 연실(淵實)에게 의지하였다가, 13세에 희양산 봉암사의 동순(洞純)에게 출가함. 이듬해에 금산사 계단(戒壇)에서 구족계를 받고, 이해 가을에 광명사 선불장(選佛場)에서 상상품(上上品)에 오르고, 조계산 보소 국사(普炤國師)에게 법요(法要)를 자결(咨決),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등상께 예배하여 명감(冥感)을 얻고, 청평산에서 진락공(眞樂公)의 유적을 탐방, 문수사기(文殊寺記)를 보고, 느낀 바 있어 『능엄경』을 열람. 1208년(고려 희종4) 유점사에 거주. 1210년(희종6) 서울에 나아가 선풍(禪風)을 크게 떨침. 1213년(강종2)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고, 1214년(고종1) 선사(禪師)로 승진, 이듬해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청하 보경사에 머묾. 1220년(고종7) 태상왕(太上王)의 청으로 넷째 왕자를 제자로 삼았으니, 뒷날 진구사 주지 경지(鏡智)임. 고종 18년 9월 공산 염불사에서 나이 51세, 법랍 24년으로 입적함. 국사(國師)를 추증(追贈), 시호는 원구(圓具), 이공로(李公老)가 지은 비가 염불사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