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관 청량국사 진영 > (?~839) 중국 당나라 스님. 화엄종 제4조. 자는 대휴(大休), 속성은 하후(夏侯). 월주 산음 사람. 청량산에 있었으므로 청량 대사라 함. 11세 패선씨(?禪氏)를 섬기고, 14세 승려가 됨. 계율을 성선사(醒禪師)와 담일(曇一)에게, 삼론종을 현벽(현벽)에게 『기신론』 · 화엄종을 법장(法藏)과 법선(法詵)에게, 천태종을 잠연(湛然)에게, 남종 선을 유충(惟忠)과 도흠(道欽)에게, 북종 선(北宗禪)을 혜운(慧雲)에게 배움. 불교의 교학과 내외의 학예(學藝)를 폭넓게 연구. 주로 화엄교에 관한 저술과 종의(宗義)를 밝혀 넓히기에 노력. 현수(賢首)가 죽은 뒤에 그의 제자인 혜원(慧苑)이 스승의 학설에 어기는 논을 펼치므로 이에 분개, 종지(宗旨)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을 바로 잡는 것으로 책임을 삼고, 특히 5교의 교판을 확실히 하며, 4종 법계의 성기설(性起說)을 대성(大成). 그때에 극히 성하던 선종과의 융화를 꾀하여, 교선 일치론(敎禪一致論)의 기초를 마련. 796년(당 정원 12) 반야 삼장이 40권 『화엄경』을 번역하는 데 참여하고, 뒤에 그 『소(疏)』 10권을 짓다. 경을 내전에서 강하매 그 묘법이 임금의 마음을 청량하게 하였다 하여 덕종이 청량 법사라 하고, 교수 화상(敎授和上)으로 삼음. 헌종이 화엄 법계의 뜻을 물어 활연히 깨닫고 대통청량국사(大統淸凉國師)라 호함. 키가 9척 4촌에 달하며, 손을 드리우면 무릎을 지남. 9조(朝) 7제(帝)의 문사(文師)가 됨. 839년(당 개성 4)에 나이 102세로 입적. 또는 원화 때(806~820)에는 나이 70여 세로 입적하였다고도 함. 저서로는 『화엄경주소(華嚴經註疏)』 ·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 · 『화엄경강요(華嚴經綱要)』 · 『화엄현담(華嚴玄談)』 · 『화엄약의(華嚴略義)』 · 『법계현경(法界玄鏡)』 · 『삼성원융관(三聖圓融觀)』 등 4백여 권. 법을 전한 제자 1백여 인(人). 종밀(宗密) · 승예(僧叡) · 보인(寶印) · 적광(寂光)을 4철(哲)이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