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관리서(管理署)가 폐지될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여러 곳에서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그 유지책으로 공공 소유의 재산을 모두 학교로 이속하였다. 사찰 재산도 공유라 하여 여러 곳에서 빼앗으려 하므로, 이를 막는 한편 승려 자신들의 교육도 진흥하기 위하여 서울 화계사 월초(月初)의 전력으로 명진학교를 원흥사(元興寺) 터에 세우고, 전국 각 사찰의 젊은 승려들을 모집하여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3년 동안 지속되다 그 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