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진짜 같은 진짜 아닌 세상

진짜 같은 진짜 아닌 세상

-법상스님-

우리라는 존재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라는 곳이, 언뜻 생각하기에 진짜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실은 이게 다 꿈에 불과한 것이고 신기루이고, 환영이고, 그림자고, 물거품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가가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욕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서 알아 봤더니 그 사람이 나를 욕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욕했는데, 나는 나를 욕했다고 착각했던 거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 사람이 더 이상 미워질 일이 없겠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또한 우리의 어리석음과 오해라는 분별망상에 의해 진짜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며 이 몸이 본래는 공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인간계라는 물질세계에 살다 보면 이 환영이 실재인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 물질세계가 이 몸뚱이가 너무 진짜처럼 느껴지다 보니까, 배고플 때, 몸이 막 배고픔을 느끼지 않습니까? 추울 때 몸이 막 추워서 죽겠잖아요.

생생하게 몸이 갈증을 느끼고, 몸이 추위를 느낀단 말이죠.

그럴 때 어떻게 우리가 “이것이 꿈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건 다 꿈이야.

꿈이니까 배고파도 괜찮아.

추워도 괜찮아.

이건 어차피 꿈일 진데 어차피 뭐 상관있겠어? 하기가 힘들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아, 이건 진짜구나.

내가 배고픈 것은 실제구나.

내가 돈이 없어서 맛있는 것도 못 사먹고, 좋은 차도 못 차고, 좋은 집에도 못 사는 거, 아 이거 실제구나.” 이렇게 느끼면서 이 몸뚱이를 가지고 사는 인간계를 실체와 시키기 시작합니다.

물질세계를 실체라고 착각하다 보니까 집착이 생겨납니다.

실제라고 느끼니까 이건 더 잡아야만 되는 거예요.

사실 삶이란 하나의 꿈이고, 모험일 뿐인데, 그래서 놀이하듯이 할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진짜라고 여기니까 그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꿈이 꿈인 줄 아는 사람은 꿈 속에서 거지가 되든 부자가 되든 어차피 꿈인 줄 알기에 꿈 속의 역할을 즐길지언정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이렇게 이 세상을 꿈이며 환영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인간계의 목적이거든요.

그래야만 이 인간계가 더 진짜처럼, 더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그 생생하게 진짜처럼 느껴지는 그 어리석음에 사무쳐 봐야만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심도 하게 되고, 비로소 삶을 배워나가고 깨쳐나갈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그것의 단점은 뭐냐 하면 마치 진짜 같은 괴로움을 가져 온다는 것이죠.

너무나도 생생하게 진짜인 것 같은 괴로움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 또한 무승자박이라는 말처럼 누가 묶은 것도 아닌데, 자기 스스로 자신을 허망한 개념과 분별심으로 환영 속에서 묶어 놓은 것일 뿐입니다.

그 괴로움은 진짜 괴로움인 것이 아니라, 내가 환영을 진짜라고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집착한 것이 내 것이 되지 않는데서 오는 망상 속의 괴로움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없는 것을 상대로 온갖 상상과 개념과 분별을 만들어서 행과 불행, 가난과 부, 성공과 실패 등의 분별을 나누어 놓고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묶어 놓은 것이지요.

이 모든 삶은 환상입니다.

나도 세상도 모두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그 꿈 속에서 지금까지 ‘내 삶’이라고 여기며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무승자박의 현실을 이제, 조금씩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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