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信心)의 힘
신심이란 무엇인가? 부처님도 여러 조사스님네도 한결같이 신심을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수행은 신심으로부터 최상의 법을 증득하는 일도 신(信)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신심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은 도의 근원이 되고 공덕의 모체이며 모든 좋은 법을 길러낸다.
믿음은 능히 슬기로움의 공덕을 더 늘릴 수 있다.
신심으로는 반드시 여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리를 가려면 첫걸음이 시작입니다.
십지(十地)보살이 장애를 끊고 법을 증득하는 길도 처음 십신(十信)부터 공부에 들어간 뒤 법운지(法雲地)에 올라가야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처음 환희지(歡喜地)도 처음 신(信)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을 냅니다.
확실하고 늠름하게 세간과 출세간의 장부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신심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보통 세간에서도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무슨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까? 믿음이 있어야 그 마음도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그 사람은 왠지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고 그 사람과 대화 했을 때 나의 삶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보탬이 된다고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야기도 하게 되고 차 한 잔 이라도 나누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처럼 크고 작은 모든 생활의 시발점은 신심에서부터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심을 샘물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샘물같은 신심으로 여러분은 옹달샘을 추억하십니까? 끊임없이 맑은 물이 솟아나는 산 속의 작은 옹달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물은 모르는 이는 할 수 없지만 아는 이만이 퍼 마실 수 있는 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늘 새롭습니다.
샘물은 자꾸만 새롭게 솟아오르고 또 흐르고 하여 신선한 맛과 생명을 우리에게 공급해 줍니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며 나의 육신을 살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을 살게 하는 힘도 늘 새롭게 깨어나게 하고 지친 몸을 다시 추스르게 하는 힘은 역시 신심의 힘이 아닐까요. 이렇게 살면 된다고 하는 확신, 이 길을 가면 분명 열릴 것이라는 신뢰감을 갖게 되는 것은 늘 새롭게 솟아오르는 샘물같은 마음, 즉 새마음(薪心) 그리고 처음마음(初審)입니다.
처음마음은 비어있고 이미 능숙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습관들로부터 자유로우며 받아들이거나 의심할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입니다.
모든 가능성에 활짝 열려 있는 마음입니다.
샘물 같은 마음 즉 처음마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이며 점진적으로, 그리고 찰나적으로 모든 사물들이 본래 성품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마음입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많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숙달된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것이 거의 없습니다.
가끔 저에게 생활이 어려워서 견디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이 있습니다.
한번은 중학생 자녀를 둘 가진 어머니가 찾아 오셨습니다.
어림잡아 결혼 15-6년 쯤 되어 보이는 듯한 중년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관계로 몹시 괴로움을 겪은 듯 1개월만 거두어 달라고 사정을 하였고 저는 사정을 들은 후 어렵게 사중에도 이야기하여 후원에서 한 달을 말없이 잘 살았습니다.
과연 한 달 조금 지났을 무렵 건실한 중학생 남매와 아버지가 어머니를 맞으러 직접 오셨습니다.
저는 떠나보내는 그 쪽 가족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두 분이 처음 결혼하시던 날, 혹은 그 결혼을 준비하던 때의 마음이 혹 생각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누구든 처음 결혼할 때의 마음,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며 연애하던 때의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기억한다면 지금 몇 년 후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 그 마음으로만 시작할 수 있다면 현재의 어려움이나 웬만한 갈등은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마음은 늘 여럿의 가능성을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심의 힘입니다.
새롭게 시작할 때의 자신감, 처음마음 냈을 때의 순수함, 샘물처럼 늘 새로이 솟아나는 신심적인 보호가 필요했던 중학생 두 남매, 그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불이문을 나서던 때가 어제 일 같습니다.
처음 퍼 올리는 샘물같은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신심으로 사는 사람들 이 세사에서 정말 어려움 속에서도 그 여러움을 신심으로 극복하고 사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족들이 나를 믿고 사랑하며 기다릴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들은 우리는 어렵지 않게 들어왔습니다.
신심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하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게 하는 아름다운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불보살님의 지혜를 곧 나의 지혜로 변화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화엄경』「입법계품」에 선재동자라고 하는 한 구도자가 등장합니다.
여러 불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선재동자는 평생을 선지식을 찾아 수행하는 정진불퇴(精進不退)의 수행자입니다.
처음 문수보살처소에서 발심하여 점점 남쪽으로 떠나 먼 장거리를 지나 53선지식을 참예하여 각각 선지식 처에서 선지식마다 터득한 진리를 다 알아 차려 낱낱이 착실히 챙기고는 맨 마지막 미륵보살이 손가락으로 한 번 튕기는 사이에 평생을 지나면서 얻었던 법문을 한 번에 모두 다 잊어버리고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 바로 생각하시기를 “문수보살님께 다시 가서 법문을 청해 배우리라.” 는 마음을 냅니다.
이런 마음을 금방 알아차린 문수보살님은 먼저 출발점이었던 일백일십유순 밖에서 오른손을 펴 선재동자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착하고 장하구나. 선남자여, 만약 믿음이 약했더라면 근심과 걱정이 많았기에 공부하는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믿음이 없었다면 좋은 일 하나에 끄달려서 작은 공덕에 만족하기에 훌륭한 방편인 보현보살의 행과 원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선지식이 거두어 지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 문수보살이 선재에게 이와 같이 말하니 선재는 그 말에 무량한 모든 법문을 다 성취하고 크게 빛나는 슬기로움을 갖추어서 자비실천을 행하는 보현보살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하나의 생각에서 삼천대천세계 티클 수처럼 많은 모든 선지식을 뵙고 가까이 하여 공경히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아서 행하며 영원한 슬기로움으로 잘 꾸며진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화엄경』「입법계품」의 선재동자 구도의 기본은 역시 심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반드시 화엄경 속의 선재동자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불자님 중에도 오로지 신심 하나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가고 가족과 가정을 바른 생활로 영위해 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 불자님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병고에 시달리던 분이 거의 생을 포기하고 정리할 단계에서도 오로지 불보살님께 귀의하여 기도하기를 금생에 인연이 다 했다면서 건강하 몸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금생의 인연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속히 일어나서 제몫을 다하면서 이들을 위한 상담과 갖가지 봉사활동 등 불보살님의 행을 실천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묘응(妙應)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감응이 제천(諸天)선신(善神)으로 생각해도 상관없고 대자연의 법칙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아무리 밝은 달이 비친다 해도 맑은 물이 받아들이는 비췸이 없으면 아름답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아무리 신령스러운 묘응을 기대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 (신심)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심도 불보살의 실재를 믿는 영감(靈感)을 느끼는 감수(感受)의 힘과 이에 묘응(妙應)하는 힘이 혼융일체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느낌(感)과 응(應)함이 도(道)로써 섞이어(交) 합치되는 것으로 이것이 감응도교(感應道交)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라도 확실한 신심 하나로 지탱해 갈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이 신심의 중요함을 여러 번 강조해도 다함이 없습니다.
특히 용수보살의 『지도론(智度論)』에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을 들어 믿음만 있고 아는 바가 없으면 무명만 더하고 알기만 하고 믿음이 없으면 사견만 더하니 믿음과 아는 것이 겸하여야만 비로소 모든 올바른 행위의 근본이 된다.
라고 하였으니 이 내용은 첫째로 제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믿거든 바로 알아야 하고 알면 반드시 실천해야만 깨달음의 세계가 거기 있다는 것을 간단히 말해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믿음, 신심 그것은 어떤 마음들에서 근거가 되며 여러 가지 의미들을 마명보살의 『기신론(起身論)』에 입각해서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심을 내는 글(起身論)과 신심의 또 다른 이름들 마명보살은 중인도 마갈타국 사람으로 불멸 후 6백년 경에 출세한 대승의 논사(論師) 로서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마갈타국에 있을 때 「뇌타화라」라는 가곡을 지었고 왕사성에서는 몸소 악사들과 어울려 가곡을 연주하여 무상(無常)한 이치를 가르쳐 성 안의 5백 왕자를 출가하게 하였답니다.
스님은 불교 문학 중 최대 걸작중의 하나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입니다.
큰 믿음을 일으키는 내용의 이 논서는 잘 짜여진 구성과 정확하고도 간결한 문체와 그 독창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교 연구가들로 하여금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해온 걸작중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마명보살은 『기신론』에서 기신(起身)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信)을 일으키게끔 하는 것을 말하며 믿음(信)이란 결정적으로 ‘그렇다’하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참된 이치가 있다’ ‘닦으면 그렇게 된다’ ‘닦아서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무궁무진한 훌륭한 소질이 다 갖추어 진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신심을 성취시키고 결심을 발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신성취(信成就) 발심입니다.
이러한 발심을 한 사람은 적어도 인과의 도리를 믿고 십선(十善)을 실천하며 십계(十戒)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신(信)선취가 제대로 된 사람은 첫째, 직심(直心)의 소유자입니다.
바른 마음, 즉 구부러지지 않은 마음으로 진여를 알면 마음이 평등해져 별다른 분별심을 내지 않고 곧바로 진여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심심(深心), 즉 깊은 마음입니다.
깊은 마음이란 마음의 근원 즉 진여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 깊은 마음은 자기 스스로를 총명하고 지혜롭게 하는 행위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대비심(大悲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란 다름 아니라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고통속에서 구제하겠다는 뜻을 가진 마음입니다.
즉 남을 이롭게, 남을 총명하게 하는 행위의 근본이 되는 마음이지요. 신심(信心)이란 세상만사를 동체의식을 가지고 평등하게 보는 마음(直心)이라야 하며, 지극히 선한 마음(深心), 자비스러운 마음(悲心) 이라는 사실을 요약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신심의 바탕에서 이 세상 만물의 근본에 대한 확신(確信)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물의 근본이 진여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 진실된 마음을 다 그 ‘진실’로 돌아가며 모든 행위가 바로 그 곳으로부터 나오는 근원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차별이나 고통, 미혹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불(信佛), 즉 진여의 마음을 회복해 가진 이에게는 무한한 공덕이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그렇게 알고 진심으로 믿을 때 그를 가까이 하고 공경하고 착한 마음씨를 일으켜 그 사람처럼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마음의 신심입니다.
넷째, 신법(信法)으로써 그가 가르친 교훈을 실천하면 큰 이익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기신론』에서 마명보살은 이 부분을 항상 여섯가지 완전한 덕(德)의 실천(六法)을 염원하며 살아야 한다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다섯째, 신승(神僧)은 부처님 제자들의 공동체인 승가는 능히 올바른 실천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총명하게 하는 동시에 남을 또한 지혜롭게 하며 항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그 스스로 자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생활하려고 애써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극히 일부분이지만 신심을 일으키는 마명보살의 말씀을 통해서 신심의 여러이름들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결론적으로 신심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신심이 성숙하지 못합니다.
성숙되지 못한 신심은 외적(外的)인 계기를 만나면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므로 완전한 덕을 실천해야 비로소 신심이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심이 발휘되었을 때 완전한 덕인 베푸는 일, 나누는 일, 윤리적인 생활, 참고 용서하는 일, 부지런히 노력하는 생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자신을 살피는 생활까지 완전한 경지에 도달하는 시발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심의 힘인 것입니다.
여러 불자님, 새 봄 새 마음으로 신심을 더욱 확고히 하시는 봄찬 봄날이 되십시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