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의 시작과 끝은 ‘나눔’ 나눠 갖는 즐거움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파세나디 왕이 부처님을 찾아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왕이시여, 어디를 다녀오는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로한 모습입니까?” “부처님, 이 나라의 유명한 부자였던 마하나마가 며칠 전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재산을 모두 조사해 국고에 넣었습니다.
며칠 동안 그 일을 하느라고 먼지를 뒤집어썼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 “그는 어느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까?” “그는 창고에 막대한 금을 쌓아둔 부자였습니다.
그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평생 싸라기밥과 썩은 시래기죽을 먹었고, 거칠고 남루한 옷만을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쓸 줄을 몰랐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 찾아오면 문을 닫고 식사를 했습니다.
부모와 처자권속에게까지 인색했으니 수행자를 위해 보시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구두쇠였습니다.
” 왕의 말을 듣고 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왕이여, 그는 결코 훌륭한 부자가 아니오. 그는 자기의 재물을 널리 써서 큰 이익을 얻을 줄 모르는 바보요.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넓은 들판에 물을 가득 가둬두었으나 쓰지 않으면 말라서 사라지는 것과 같소. 그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복을 짓지 못하고 말았소. 연말연시에 마음의 보배창고를 활짝 열어 이웃과 함께 나누자 그러나 왕이여, 재산을 모아 먼저 부모를 공양하고 처자권속을 돌보며 가난한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한 부자라 할 것이오. 이는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마을 부근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찾아와 쉬게 해주는 것과 같소. 그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날 것이오. 재물은 이렇게 쓰려고 아끼고 모으는 것이오.” <잡아함> ‘간경(經)’ 재물을 모으는 능력과 그것을 쓰는 도량은 직선과 곡선처럼 함께하기 어려운 길이다.
불교적인 시간관으로 보면 금생의 행위만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악한 사람이 선행을 하는 사람보다 잘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미묘한 업의 작용을 헤아리기 어려운 범부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선행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선행의 시작과 끝은 ‘나눔’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남의 기쁨으로 나의 즐거움을 삼는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불교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 실제로 사람들로부터 자기희생의 실천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고, 이것이 불교의 생활윤리에 대한 빈곤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전의 많은 부분에서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행을 설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가 나아가야할 종교정신은 명확해진다.
당대(唐代) 마조선사(709~788)의 스승인 남악회양(677~744)선사가 제자를 시험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상당(上堂)하기 전에 “어떻습니까?”하고 물어보라 했다.
그때 마조선사가 말했다.
“호란(胡亂)이 끝난 뒤 30년 동안 살림살이(鹽藏)에 부족함이 없다.
” ‘호란’은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고 분간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즉 마음에 번거로움을 쉰데다 소금과 간장까지 넉넉하니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연말연시에 마음의 보배창고를 활짝 열어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하자. 우린 넉넉한 살림살이가 있으니까! [불교신문 2777호/ 12월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