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육식에 대한 논의
불교의 육식에 대한 논의 석림(박정수, 정신라 인도철학과) Ⅰ. 서론 불교윤리의 첫 번째 항목은 불살생으로 모든 생명을 해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며,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가시성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불교 내에서도 상좌불교와 대승불교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좌불교와 대승불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서로 다른 전통을 갖고 있는데, 교리적. 사상적 측면은 물론, 실천적 특성에 있어서도 거의 정반대의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계율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좌불교가 보다 보수적이고 대승불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진보적인 성향을 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출가자가 고기를 먹는 것, 즉 食肉에 한해서는 상좌불교 국가에서는 허용되고 있는데 반해서 오히려 대승불교 국가에서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현재 불교 승단에서 채식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대만. 홍콩. 한국. 일본 등 주로 대승불교권이다.
반면 스리랑카. 미안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남방 상좌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주로 걸식(탁발)과 청식(請食, 신도들의 식사 초대)에 의존하여 생활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육식이 허용되고 있다.
그 대신 오후불식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정반대의 현상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기불교 교단의 계율은 후대로 내려 오면서 완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러 더욱더 엄격하게 식육을 금지하는 사상과 계율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식육과 관련하여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선행 연구가 몇 가지 있지만 이러한 문제만 제기했을 뿐 그 정확한 이유와 근거는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식육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 『율장』 성립 전과 후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초기 불교의 입장 1) 데와닷따의 다섯 가지 제안 붓다는 불교도가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데와닷따가 불교교단 개혁에 대하여 붓다가 취한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율장』 소품에 의하면, 데와닷따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항을 세존께 제안했다.
즉 ① 비구들은 평생토록 산림에서 거주해야 하며 마을에 거주하면 죄가 된다.
② 비구들은 평생토록 걸식해야 하며 청식을 받으면 죄가 된다.
③ 비구들은 평생토록 분소의를 입어야 하며 거사의(居士衣: 재가 신자가 보시한 옷)를 입으면 죄가 된다.
④ 비구들은 평생토록 나무 아래에서 거주해야 하며 집 안에 거주하면 죄가 된다.
⑤ 비구들은 평생토록 물고기와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야 하며 먹으면 죄가 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조항(문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
)을 불교 교단에서 실천하자고 데와닷따가 붓다께 제안했을 때, 붓다는 다음과 같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① 비구는 원에 따라 산림에 머물러도 좋고 마을에 머물러도 좋다.
② 비구는 원에 따라 걸식을 해도 좋고 청식을 해도 좋다.
③ 비구는 원에 따라 분소의를 입어도 좋고 거사의를 입어도 좋다.
④ 8개월 동안은 나무 밑에서 좌와(坐臥)해야 함을 인정한다.
⑤ 스스로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거나 죽였다는 소리를 듣거나 그런 의심이 가지 않는 것은 먹어도 좋다.
이러한 붓다의 답변에 데와닷따는 승복하지 않고, 500명의 비구를 데리고 교단을 떠나 별도로 생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영, 석가 세계대사상전집(서울: 지문각, 1965), p263] 데와닷따의 교단은 그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현장스님이 벵골지방을 방문했을 때, ‘유락을 먹지 않고 데와닷따의 유훈을 받든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데와닷따의 교단이 그때까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와다나베 쇼오꼬 지음, 앞의 책, p308~311) 참조] 여하튼 데와닷따가 제안한 것은 당시 인도 전통의 출가자들의 생활방식이었던 사의법에 육식금지의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사의법이란 ①출가자는 걸식으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②출가자는 분소의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③출가자는 수하좌(樹下座)에 의해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④출가자는 진기약(陳棄藥)에 의해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사토우 미츠오 저. 김호성 역, 『초기불교 교단과 계율』(서울: 민족사. 1991, p.35)] 붓다 재세 시 인도에서는 수행을 목적으로 출가한 사람이면 교단과 교파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걸식. 분소의. 수하좌. 진기약 등 사의법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데와닷따의 제안은 불교교단의 비구들이 이 사의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여기에 다시 육식금지 조항을 추가하여 엄격한 계율주의를 견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붓다는 데와닷따가 제안한 마지막 다섯 번째의 不食肉에 대하여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고기, 즉 三種淨肉은 먹어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팔리 『율장』 「대품」의 약제편에 의하면, 자이나 교의 신자였던 시하 장군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불교의 재가신자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육식이 포함된 공양을 올렸다.
이에 대해 자이나교도들이 이기심으로 사문 고따마가 자신을 위해 가축을 죽여서 만든 음식인 줄 알면서도 그 고기를 먹었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붓다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자기 자신을 위해 죽인 고기라는 것을 알면서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그러한 고기를 먹으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 리를 듣지 않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
” 『또한 맛지마 니까야』 제55 『지바까 숫따』에 의하면, 의사 지바까는 외도들이 ‘사문 고따마는 자신을 위해 죽인 동물의 고기인 것을 알고도 먹는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비방인지에 대해 세존께 여쭈었다.
붓다는 지바까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다.
“지바까여, ‘사문 고따마를 위해서 생명을 죽이는 자들이 있는데, 사문 고따마는 그 고기를 자신을 위해 죽인 동물의 고기인 것을 알고도 먹는다’고 말하는 자들은 나에 관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닌 말로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지바까여, 나는 세 가지 경우, 고기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보여진 것이고, 들려진 것이고, 추측된 것인 경우이다.
지바까여, 나는 이러한 세 가지 경우, 고기를 수용한다고 말한다.
즉 보여지지 않은 것이고, 들려지지 않은 것이고, 추측되지 않는 경우이다.
지바까여, 나는 이러한 세 가지 경우, 고기를 수용한다고 말한다.
” 이와 같이 자기를 위해서 죽인 것이라는 見. 聞. 疑의 세 가지 사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생선이나 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팔리 『율장』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에게 열 가지 종류의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금지시켰다.
먼저 인간의 고기는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를 허용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코끼리나 말의 고기는 왕의 상징이기 때문에 쓰지 못한다.
개고기는 사람들이 메스껍게 여기는 까닭에 금지되어 왔다.
뱀. 사자. 호랑이. 표범. 곰. 하이에나와 같은, 숲속에 사는 짐승들을 잡거나 그것들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어떤 동물들은 자신들의 고기 냄새를 맡고 승려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고기들은 나쁜 행위를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의 자이나교에서는 불살생을 엄격히 적용하여 어육을 절대 먹지 않았다.
데와닷따의 주장은 이러한 자이나교의 엄격한 고행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출가자가 원칙적으로는 사의법에 의존하여 생활해야 하지만, 거기에 꼭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전통적인 사의법에 많은 예외 조항을 신설하여 보다 융통성 있게 생활하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붓다의 생활태도는 중도사상에서 나온 것임을 말할 나위 없다.
붓다는 모든 면에서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적 삶을 최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론적이긴 하지만 자이나교는 너무나 엄격한 고행주의를 고수함으로 말미암아 인도 밖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결국 자이나교는 인도인만을 위한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붓다는 긴 안목으로 출가 제자들에게 엄격한 고행주의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원해서 고행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굳이 막지 않았다.
만일 붓다께서 출가 제자들이 모두 사의법에 의존하여 생활하기를 고집했다면, 불교는 오늘날 세계종교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식육과 부정의 관계 붓다 당시 소행주의자들은 ‘비린내’ 나는 음식 때문에 그 사람이 부정해진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바라문은 붓다께서 ‘비린 것’, 즉 생선이나 고기를 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직접 붓다를 찾아가서 ‘비린 것’과 ‘부정’의 관계에 대해 붓다께 질문한다.
그러한 내용이 곧 초기경전인 『숫따니빠따』의 「아마간다숫따」에 실려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띳사 바라문이 과거불인 깟싸빠에게 닭고기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당신이 말한 비린 것이란 어떤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깟싸빠붓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산 것을 죽이는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하는 일, 사기와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는 일, 이것이 비린내 나는 일이지 육식이 비린내 나는 일이 아니다.
”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 “난폭하고 잔혹하며 험담을 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무자비하며, 몹시 오만하고 인색해서 아무 것도 남에게 주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단식. 나체. 삭발. 결발. 먼지. 거친 사슴 가죽을 입는 것도, 화신을 섬기는 것도, 또는 불사를 얻기 위한 고행도, 베다의 주문. 공양. 제사나 계절에 따른 고행도 모두 의혹을 넘어서지 않으면 그 사람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
” 위에서 인용한 「아마간다 숫따」를 설하게 된 배경이 『숫따니빠따』의 주석서에 설해져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마간다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 붓다가 출현하기 이전에 고행자가 되어 오백명의 제자들과 함께 히말라야 기슭에서 살았다.
그들은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매년 그들은 자신들의 거처에 서 소금과 식초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주변의 주민들은 그들을 매우 존경했으며, 매년 4개월 동안 환대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붓다께서 제자들과 함께 같은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붓다의 설법을 듣고, 붓다의 재가 신자가 되었다.
그 해에 아마간다와 그의 제자들은 평소와 같이 그 마을로 갔다.
그런데 家長들은 이제까지처럼 그들을 열광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해 하던 그 바라문은 붓다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하였다.
그리고 그는 붓다께서 ‘비린 것’, 즉 ‘아마간다(그는 아마간다를 생선과 고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를 먹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붓다께서 ’비린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크게 실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붓다로부터 직접 그것에 대해 듣고 싶어서 제따와나(기원정사)로 찾아갔다.
붓다는 그에게 ’아마간다‘ 즉 ’비린 것‘은 생선이나 고기가 아니라 악행에 속하는 것이고, 자신은 모든 종류의 악행을 삼가고 피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같은 질문을 띳사라는 고행자가 과거불인 깟싸빠 붓다께 제기했던 것이다.
띳사는 나중에 깟싸빠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깟싸빠 붓다와 띳사 사이의 대화가 곧 붓다께서 아마간다에게서 설한 「아마간다 숫따」인 것이다.
아마간다 바라문과 그의 제자들은 붓다의 설법을 듣고 승단에 입단했으며, 며칠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살펴본 「아마간다 숫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사람의 청정 혹은 부정은 음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스리랑카 출신의 담마난다 스님의 견해도 「아마간다 숫따」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그는 육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생선이나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부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협한 신앙, 기만, 질투, 오만, 시기와 다른 나쁜 의도들에 의해서 부정해진다.
사람은 오직 자신의 나쁜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 부정해지는 것이다.
” 그리고 그는 “채식주의 자체만으로는 자신의 고매한 인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청정하고 종교적인 사람은 채식주의를 실천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구든지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고서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 명의 채식주의자들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보다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음식과 부정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그리고 음식과 건강과도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청정해지고 부정해지는 것은 음식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행위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다.
비록 생선과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를 실천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나쁜 생각 혹은 나쁜 의도를 갖고 행동한다면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2. 대승불교시대의 식육에 대한 입장 1) 초기경전의 부분적 육식금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는 비록 조건적으로나마 식육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식을 금지하는 계율이 율장에 삽입되어 있을 까닭이 없다.
따라서 팔리 율장을 비롯한 사분율과 근본율장 그 어디에도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율은 발견되지 않는다.
율장에서는 오직 생명을 빼앗는 행위, 즉 살생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바라이법 제3조 단인명계는 그 대표적 계율이다.
그리고 파일제법 가운데 제10조 땅을 파지 말라, 제11조 초목을 베지 말라, 제20조 벌레 있는 물을 사용하지 말라 등과 같은 계율이 있는데, 이러한 계율들은 모두 생명존중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런데 육식과 관련된 계율은 파일제법 제39조 색미식계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기를 먹는 것을 완전히 금지한 불식육계가 아니다.
색미식계는 비구가 병이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식을 구해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식이란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가리킨다.
미식의 종류는 각 율장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팔리 율장에 의하면 숙소(熟酥), 생소(生酥), 油, 蜜, 石蜜, 어, 육, 乳, 酪등이 미식에 포함된다.
이 계율은 비구들이 몸에 병이 없으면서도 자기 몸을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구함으로써 재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율장』 외에 붓다의 戒律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 가운데 하나가 팔리어로 쓰인 『범망경』이다.
이 경전에서는 소계, 중계, 대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불살생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불식육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리고 마하가섭이 실천했다고 하는 두타행의 내용에도 불식육에 대한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
2) 대승경전의 육식금지 이후 대승불교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식육을 무조건 금지하는 경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열반경, 능가경, 범망경, 승만경 등은 극단적인 육식금지 사상을 담고 있는 경전들이다.
이러한 대승경전 가운데 특히 불식육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열반경이다.
열반경은 不食肉界를 佛性戒로 이해하고 있다.
이 경전은 ‘일체중생 실유불성’의 사상을 주장한 경전이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전에서는 “고기를 먹지 말라”라는 學處를 息世譏嫌戒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불식육의 문제를 더욱 강조한 경전은 능가경(인도에서 최소한 A.D. 300년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경전은 십지경과 해심밀경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유심’ 사상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경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불교의 유가행 유식학파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능가경은 현재 네팔에서 발견된 범본과 세 개의 한문본과 두 개의 티베트본이 존재한다.
) 이다.
이 경전에서는 단순히 불성 때문이 아니라 뭇 생명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체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매우 강경한 식육금지 사상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대승경전의 육식금지 사상을 바탕으로 대승계경에서는 하나의 완전한 계율로서의 불식육계가 제정된다.
특히 대승율부의 대표적인 경전인 범망계에서는 불식육이 계율로 제정되어 나타난다.
즉 48경계 중 세 번째 계율이 바로 그것이다.
만일 불자들이 고의로 고기를 먹겠느냐. 일체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니, 대저 고기를 먹는자는 대자비의 불성종자를 끊는 것이어서 일체 중생이 보면 곧 버리고 도망하느니라. 그러므로 일체의 보살은 모름지기 일체 중생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니 고기를 먹으면 한량없는 죄를 얻느니라. 만일 짐짓 먹는 자는 경구죄를 범하느니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 당시, 더 나아가 율장 성립 때까지도 고기를 먹는 것 자체는 허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의 식육을 금지하는 사상으로 발전하여 나중에는 계율로까지 제정되었다.
3) 육식에 대한 입장변화의 원인 그렇다면 왜 초기불교에서 허용되었던 고기를 먹는 문제가 대승불교에 이르러 금지되었을까? 대승불교의 육식금지 사상의 원인은 불교 밖에서 찾는 경우와 불교 안에서 찾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불교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는 대승경전 편찬 당시 인도의 일반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이다.
즉 당시 인도 바라문 집단의 참여나 주도에 의해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기할 당시 바라문들은 대부분 채식위주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가 수행자들의 육식에 대해 부정적인 흐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의 대승불교에서 육식금지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둘째, 불교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겨우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요약 정리할 수 있다.
①육식은 불교의 불살생계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②육식은 불성 혹은 여래장 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③육식은 자비의 종자를 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육식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배경에는 당시의 사회적인 요소와 교단 내부적 요소 두 가지가 모두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모든 면에서 볼 때 불교가 더 이상 육식을 허용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Ⅲ. 결론 대승불교권인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불교에서는 완전히 육식이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찰에서는 관습적으로 육식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한국 사찰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에도 젓갈류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님들이 생선이나 고기를 먹으면 크게 잘못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신심 돈독한 불자들은 채긱을 실천해야만 후륭한 불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불교 본래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자신의 취향에 따르면 그만이다.
음식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 사람의 개인적인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채식이 이로울 수도 있고, 육식이 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개인도 자신의 건강상태와 신체 리듬에 따라 입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음식물의 선택은 그 사람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할지라도 인체 내에서 받아들이는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어 내고,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신체적 상황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를 보충해 주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나치게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아사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나 육식을 주로 하는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현실을 무시한 배부른 사람들의 헛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에게 육식이 좋다다거나 채식이 좋다는 논쟁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음식은 오직 이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채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집착에 불과하다.
붓다는 중도에 의해 세 가지 종류의 육식을 허용하였다.
따라서 육식을 허용하느냐 허용하지 않느냐 보다는 그 주어진 음식을 어떻게 먹고 소호할 것이가. 그 음식을 통해 얻어진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 음식을 먹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끝 (불교평론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