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삶을 변화시키는 방법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 /

법상스님

우리 모두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전혀 다른 차원을 살아가고 있다.

한 가족 안에서, 같은 집에서,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세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집에서, 한 이불 속에서 살고 있는 부부라 하더라도, 한 부모 아래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가정 형편에서 산 형제라 하더라도,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다를 수 있다.

아니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세상, 같은 나라, 같은 가정 안에서 살면서 서로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구의 3가지로 지은 업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몸으로 지은 업과 입으로 지은 두 가지 없의 근본은 의업이다.

즉, 같은 세상을 살더라도 의업이 서로 다르므로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의업은 무엇인가.

생각으로 짓는 모든 행위가 의업이다.

즉 사고, 판단, 견해, 가치관, 신념, 고정관념, 생각, 이 모든 것이 의업이다.

마음이, 생각이, 견해가, 신념이, 사고가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

내가 짓는 의업이 곧 내가 사는 세상이다.

내 생각, 신념, 견해 하나 하나가 어떤 잠재적인 세력, 업력을 남기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업력은 절대로 그냥 없어지지 않은 채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영향을 미치며 내 삶의 일부분을 만들어 낸다.

내 생각 하나는 곧 내 세상의 일부다.

내가 만들어 낸, 어쩌면 하찮게 느껴질 지 모를 사소한 견해일지라도 그것은 어떤 세력을 가지고 내 앞에 펼쳐질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이처럼 함께 한 가족을 이루고 살지라도 이 의업, 생각, 사고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상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삶을 바꾸고 싶은가? 인생을 더욱 값지게 만들고 싶은가? 더 낳은 삶, 더 행복한 삶을 꿈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내 생각, 내 견해, 내 가치관을 바꾸면 저절로 내 세상, 내 인생이 바뀐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법칙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삶을 바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세상을 바꾸고, 좀 더 좋은 조건, 좀 더 좋은 환경, 조금 더 좋은 연봉과 직장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잘못된 기대일 뿐이다.

‘내’ 삶을 바꾸고자 하면서 어찌 ‘내 밖’에 있는 것들을 바꾸는데서 그 실마리를 구하려고 하는가.

내 문제는 내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만 바꾸는 것이 가능해진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면 마땅히 내 업을 바꾸고, 내 의업, 내 생각, 내 사고, 내 견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의업의 변화는 곧 신업과 구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그에따라 내 삶에는 변화가 찾아 올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라, 흐름을 따라 절로 절로 행복이 깃들 것이다.

사고, 생각, 가치관이 어둡고 부정적인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세상을 괴롭게 살 것이지만, 밝고 긍정적인 사람은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세상을 행복하게 살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괴로움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반면 조건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늘 행복하며 평화롭고 걸림 없는 삶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문제는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면 내 삶도 변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가? 조건이, 직장이, 연봉이 바뀌면 내 삶이 더욱 행복해 질 것 같은가? 아니다.

전혀 잘못 짚었다.

세상이 변해도 생각이, 견해가, 사고가 변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대 저택을 소유하게 되고, 수 억원의 연봉을 받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세상은 그대로다.

대 저택에 살며,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여전히 그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뀌지 않는 이상 세상의 변화, 조건과 환경의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집안 환경이 나쁘고, 아내가 혹은 남편이 문제가 있으며,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괴로운가? 아니다.

바로 당신이 당신의 세상을, 당신의 환경을, 당신의 가족을 만들어 낸 당사자일 뿐이다.

모든 문제는 바로 당신에게 있다.

당신 내면의 업이, 생각이, 사고가, 가치관이 당신의 세상을 창조해 내고, 당신의 주변환경을, 인연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직장이 좋지 않다면 다른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친구들이 좋지 않다면 다른 더 좋은 친구를 사귀면 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자신의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여인을 새로운 아내로 바꾸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만약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려 든다면 여전히 당신의 세상은 똑같은 그대로가 될 것이다.

겉모습만 조금 바뀌었을 뿐 괴로움은 그대로일 것이다.

당신이 그대로인 이상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달라진 세계 속에서 당신은 또 다시 똑같은, 아니면 겉모습만 조금 변화된 또 다른 동일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외부적인 조건, 세상은 당신 마음의 비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곳을 가더라도, 어떤 환경과 조건을 만나더라도, 늘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같은 종류의 만남이 이어진다.

어디로 가려고 애쓰지 말라.

어디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직업, 어떤 위치, 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직업, 위치, 계급에 있든 항상 같은 일, 동일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든 같은 인연을 만나고, 같은 상황, 같은 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상황은 어쨌든 내 업대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직업을 바꾸려고, 진급을 하려고 혈안이 될 이유는 없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진급이 되든 되지 않든 언제나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진급을 했더라도 복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그 곳에서 가난한 삶, 불행한 삶을 살고야 만다.

애를 쓰고 욕심을 일으켜 복력과 업력을 뛰어넘는 좋은 직장과 연봉과 지위를 만나게 되었더라도 너무 기뻐할 일은 아니다.

분명히 또 다른 문제를 만날 것이다.

이를테면 빨리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고, 복력을 미리 당겨써버렸으니 노후가 비참해 질 수도 있으며, 그것이 아니라면 혹독한 직장 상사를 만나 심한 마음고생을 할 수도 있고, 더 낳은 직장을 얻은 대신 건강을 잃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또한 자신의 또 다른 업의 틀 속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그 결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전히 ‘같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나는 세상은 어디를 가든 여전히 같은 세상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어 떠난 여행지에서조차 여전히 하던 일을 그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처럼.

심지어 이번 생의 인연이 다해 다음 세상으로 윤회를 떠나더라도 여전히 지금과 동일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껍데기는 변한다.

부모도 변하고, 나라도 변하고, 생활환경도 바뀌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업은 여전히 그대로다.

당신의 세상도 그대로다.

그렇기에 그 곳에서도 같은 상황들을 맞을 것이다.

사업을 하던 사람은 여전히 사업 쪽으로 끌릴 것이고, 수행을 하던 자는 여전히 수행의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지어놓은 업의 에너지는 계속해서 같은 인연을,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

유유상종으로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업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지 짓는 의업이다.

지금 여기에서 내 생각, 사고, 견해를 바꾼다면 당장 당신의 세상은 차원을 달리 할 것이다.

바깥의 상황을 바꾸지 않더라도 내 안의 상황만 바꾼다면 내 세상은 꿈처럼 달라질 것이다.

마음 하나 돌리는 것으로 지금 여기의 현실은 충분히 지옥에서 극락으로 바뀔 수 있다.

만족을 조금 더 늘리는 것으로 가난한 삶을 풍요로운 삶으로 바꿀 수 있으며, 비움을 조금 더 늘리는 것으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내달리던 삶에서 유유자적한 평화를 꽃피울 수 있고, 나눔을 조금 더 늘리는 것으로 내 것만 정신없이 채우던 삶을 이웃과 함께 기뻐하는 삶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돈을 벌거나, 진급을 하거나, 부자가 되거나, 욕망을 채우는 것 처럼 그리 어렵게 억지스런 노력이나 집착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한 생각 바꾸는 것으로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을 어렵다고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동안 살아 오면서 쌓아오고, 높여 온 자기 집착, 자기 욕망의 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생각 마음을 돌이켜 놓을 수만 있다면 이처럼 쉬운 것은 없다.

그간 행복을 위해 바깥 세상을 바꾸려고, 조건을 바꾸려고, 막무가내로 내달려 온 삶에 잠시 제동을 걸어보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경이로운 시공 속에서 과거나 미래를 놓아버리고 욕망과 집착과 기대를 놓아버리고 조건을 바꾸려는, 바깥을 바꾸려는 생각을 놓아버리고 내면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한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

바깥을 바꾸었을 때, 조건을 바꾸었을 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내 생각을, 내 사고를 바꾸었을 때 본래 충만하게 있던 본연의 행복을 누리게 될 수 있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바깥 세상과 조건만을 바꾸려고 애쓰는 이상 언제까지고 삶의 변화는 찾아오지 않고 항상 동일한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을 비춘다면 당장에 삶은 신명나는 한 판의 춤을 출 것이다.

행복이란 노력해서 찾거나 얻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우리에게 원만하게 구족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누리고 만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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