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물들여 지지 않는 나

물들여 지지 않는 나

-법상스님-

소환불화(素紈不畵) 의고재(意高哉) 당착단청(倘着丹靑) 타이래(墮二來) 본무일처(本無一處) 무진장(無盡藏) 유화유월(有花有月) 유루대(有樓臺) 흰 천은 그림 없이 높은 뜻 있었건만 단청으로 채색하면 두 갈래에 떨어지네 한 물건도 없는 곳엔 무진장이라 꽃도 피고 달도 뜨고 루대도 있네 (소동파(蘇東破) 시(詩)) 하얀 천 속에는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 볼 수도 있고, 깊은 뜻을 담아볼 수도 있지만 그 천에 물을 들여 그림을 그려놓고 보면 허물만 생기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는 무아라는 것은 본래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것을 내세우면 내것 이라는 것이 생기고 내것이 생기면 내 편이 생기게 되는데 편이 생기면 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시비비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떤 물듦에 치우치고 집착해 있느냐에 따라서 견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옳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만 그르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고통스러우며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옳다고 해서 정말 옳은 것인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정말 좋아하는 것인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물든 나에서 옳다고 하는 것이지 물들지 않은 나에서는 옳다 그르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거울이 담겨진 색상이 있다면 벌써 깨뜨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거울은 담아두는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보곤 한다.

거울을 보면서 매무새를 가다듬기도 하고 흐트러진 것을 바르게 할 수도 있다.

거울을 보는 그 사람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그 거울을 보면 또 그 사람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거울은 담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꽃을 비추면 꽃을 담고, 달을 비추면 달을 담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고 비추어 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거울과 같은 것이다.

나라는 물든 집착이 없을 때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비추어 줄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는다.

부처님께서 깨닫기 전에는 왜 세상 사람들이 고달파하고 괴로워하고 서로 싸우고 그렇게 시비하면서 사는가 했는데, 깨달음을 얻고 보니 모두가 다 본래는 밝고 맑은 백지와 같은 마음을 지녔건만 그 마음에다 가지각색의 색깔과 그림을 그려넣어서 그 것이 본래의 자기 마음인줄 알고 집착해서 그대로만 살려고 고집하고 있음을 알게 되신 것이다.

때를 묻힌 그것이 바로 물든 것이다.

눈으로 물들고, 귀로 물들고, 코로 물들고, 맛으로 물들고, 습관으로 물이 들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업이 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업에 의해서 생을 받아서 괴롭다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참회를 하고 뉘우쳐서 업을 지우면 반드시 고통도 없고 괴로움이 없는 밝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러 정토라 하고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경전 중 유마경은 유마거사가 주인공이다.

하루는 유마거사가 병이 들었는데, 부처님께서 십대제자 중 목련존자에게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일렀다.

목련존자가 병문안을 가보니 거사는 흰 옷을 입은 거사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었다.

본설법자(夫說法者)는 당여법설(當如法說)이니 법무중생(法無衆生)이라 이중생구고(離衆生垢故)며 ) 진리(法)라는 것은 본래 중생이 없는 것이다.

법무유아(法無有我)라 이아구고(離我垢故)며 ) 법이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

법에는 본래 나라는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무수명(法無壽命)이라 이생사고(離生死故)며 ) 법이라는 것에는 오래 살고 빨리 죽는 시간 관념이 없는 것이다.

법무유인(法無有人)이라 전후제단고(前後除斷故)며 ) 법이라는 것에는 다른 사람이란 없는 것이라 앞도 뒤도 모두 끊어진 것이지 연결된 것은 없다.

법상적연(法常寂然)이라 멸제상고(滅諸相故)며 ) 법은 항상 고요한 것이라 모든 상이 본래 없는 것이다.

법이어상(法離於相)이라 무소연고(無所緣故)며 ) 법은 본래 모양이 없는 것이며 연도 없는 것이다.

법무명자(法無名字)라 언어단고(言語斷故)며 ) 법은 이름도 없는 것이어서 걸림이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살 때에 마음에 좀 걸리는 것이 있더라도 마음에 있는 번뇌 망상을 갑자기 지울 수야 있겠는가.

참선이나 염불, 독경을 통해서 그 마음을 돌이키도록 하여야 한다.

참선을 통해서 참회를 하고, 염불을 통해서 참회를 하고, 독경을 통해서 참회를 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 지게 될 것이다.

참선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독경을 하거나 주력을 하거나 그때 그때 필요한 방편을 사용하면 된다.

우리가 평소 밥을 먹을 때에는 숟가락으로 먹기 편한 것이 있고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편한 것이 있다.

숟가락으로 먹을 때는 숟가락으로 먹고 젓가락으로 먹을 때는 젓가락으로 먹으면 되는 것이다.

숟가락만 고집하거나 젓가락만 고집하면 집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상이 있으면 걸리는 것이요 상이 없으면 걸림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원력을 세우되 그 원력은 만인이 공감하고 만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원력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때이지만 또 새로운 생각을 스쳐가야 할 것이다.

금년에는 이렇게 살았으니 내년에는 또 다르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항상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걱정과 근심을 지워버리고 서동파의 시처럼 또 유마거사의 법문처럼 우리의 상을 버리고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깨끗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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