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두고 떠나지 말라
-법상스님-
부처님께서 꼬삼비에 계시던 어느날 부처님을 증오하던 왕비 마간디아는 불량배들을 매수하여 부처님이 탁발을 나오실 때마다 뒤를 따라 다니며 온갖 욕설과 비방, 침을 뱉는 등 거친 행동으로 못살게 굴도록 만들었다.
이에 아난다는 부처님께 이 도시를 떠나자고 간청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거절하며 말씀하신다.
“욕설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마다 그곳을 떠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곳을 떠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무릇 수행자는 문제와 소란이 있을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떠나지 말고 그 문제와 함께 머물면서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문제가 해결된 뒤에 길을 가는 것이 합당하다.
마치 싸움터에 나간 코끼리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듯 여래는 어리석은 자들의 비난과 욕설을 피해 달아나지 않고 묵묵히 참고 인욕하되 다만 자신을 잘 다스림으로써 으뜸가는 성자가 된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피해 달아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요 업장을 거부하는 것일 뿐이다.
삶의 진보와 깨달음은 주어진 삶의 문제를 통해 온다.
그 문제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받아들여 풀어야 할 절호의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그것은 사실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며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와도 같다.
문제가 생겼다면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방식을 따르라.
그 문제를 거부하지 말고 허용하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문제를 끌어안고 싸운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제가 일어난 것에 대해 인정하고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끌어당기거나 밀쳐내지 않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내버려 둔 채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참된 인욕이란 그 문제가 너무 싫고 벗어나고 싶지만 억지로 참고 견뎌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제가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음을 깨달아 그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채 싫거나 좋다는 에너지를 투여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문제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 실체적 인 힘을 부여했을 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문제로 삼지 않으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문제를 문제삼는 마음이 클수록 우리는 그 문제에 휘둘리게 된다.
받아들이고 허용한다는 말은 그 문제를 더이상 문제삼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채 무심하게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떻게 와서 어떻게 머물다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다만 볼 뿐이다.
와서 머물고 가는 동안 우리가 거기에 과도하게 대응함으로써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면 그것은 아주 빨리 소멸하고 만다.
그러나 그 문제와 맞붙어 싸우거나 도망치려고 애쓰게 되면 그 에너지를 먹고 그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된다.
바로 모든 문제는 그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문제를 문제삼기를 너무나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야 실체 없던 문제가 실체적인 에너지를 가진 채 생명력을 부여받아 우리를 흔들어놓거나 조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업장이라는 것도 이와 같이 움직인다.
깨달은 이는 업장이 올라오더라도 그것을 무분별로, 즉 중립적으로 지켜볼 뿐 거기에 대응하지 않는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은 채, 싸워 이기려거나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 모든 업장이 일어나도록 무심히 허용하고 내버려 둔 채 다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업장이 올라와 잠시 나를 괴롭힐지라도 더이상 양분을 받지 못하니 얼마 안 가 소리소문 없이 스르륵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