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부관계의 해결은___

부부관계의 해결은…

-법륜스님

btn TV법회 – 흔히들 말하기를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부 관계가 대부분 원만하지 못하고 그래서 괴로워합니다.그 괴로움이 어느 정도냐? 원수 같다고 합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그러겠어요? 그럼 왜 이렇게 부부 관계가 고통이 될까? 부부가 사랑으로, 신의로 맺어져야 하는데, 실제 부부 관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부부 관계는 굉장한 이기심으로 맺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귈 때는 그 사람 키가 얼마냐? 얼굴이 어떠냐? 집안이 어떠냐? 공부를 얼마나 잘하냐? 이런 거 뭐 그렇게 크게 안 따집니다.

애가 돼 먹었냐? 이것만 따져요.

즉 의리가 있냐? 이것만 따집니다.

한 가지만 봅니다.

사업을 하고 동업을 하고 거래를 할 때에는 키, 얼굴..

이런 거 보지 않습니다.

딱 한 가지만 봐요.

신용이 있느냐? 그런데 결혼하려고, 선을 볼 때는 어떻습니까? 열 가지, 스무 가지를 봅니다.

키도 커야 하고, 얼굴도 예뻐야 하고, 신체도 건강해야 하고, 학벌도 좋아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직업도 좋아야 하고, 게다가 성격도 좋아야 하고, 나만 사랑해야 하고..

좀 나쁘게 말하면, 하나 잘 잡아가지고 평생 팔자 고치려고 합니다.굉장히 이기적입니다.

그런데 왜 부부 관계를 ‘사랑’이라고들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 부부 관계에 대한 책을 하나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책 제목이 뭔지 아세요? 이미 다 정해졌는데..

‘사랑 좋아하시네~’ (대중들 폭소) 친구를 사귀다가 의리가 없으면 친구 그만둡니다.

사업을 같이 하다가 신용이 없으면 사업 그만둡니다.

그런데 이 부부도 종합적으로 보면 굉장히 이기심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에 살아보면서 ‘뭔가 내가 손해가 아닌가?’ 덕 보려고 결혼했는데 살아보니까 별로 득이 없어..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사는 게 더 나을 걸~’ 조금 더 지나면 덕 보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봐..

그래서 같이 살 필요 없겠다, 혼자 사는 게 났겠다..

그래서 헤어지기도 해요.

이렇게 우리가 갈등이 있는 것은 출발할 때 관점에 벌써 문제가 잉태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부 관계에서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부부 관계가 안 좋으면, 왜 안 좋으냐? 내가 속았다..

돈 많은 줄 알고 결혼했더니 돈도 없더라..

속았다..

성격이 좋은 줄 알고 결혼했더니 별로더라..

속았다..

그 말은 상대가 나쁘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갈등의 원인은 다 상대한테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 하더라도, 이건 선택이기 때문에 왜 내가 저런 남자, 저런 여자를 만났느냐?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말이 뭡니까? ‘궁합이 안 맞다..

전생에 우리는 원수였나봐..’ 신도님들이 저한테 와서 머뭇머뭇 하다가 물어요.

‘스님요~’ ‘네’ ‘우리 부부는 전생에 어떤 관계였을까요?’ 그럼 제가 바로 말해줍니다.

‘어떤 관계는 어떤 관계야? 원수지~’ 그러면 ‘그렇죠?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부부 관계가 좋은 사람이 와서 묻겠어요 나쁜 사람이 와서 묻겠어요? 그래서 제가 아는 게 아니라 자기가 답을 줘요, 미리..

ㅎㅎ 그래서 뭐라고들 합니까? 전생의 원수가 이생에 부부가 된다..

그러죠.

그만큼 부부가 갈등이 심하다..

이 말입니다.

부부 관계가 나쁜 것은 궁합 때문도 아니고, 사주팔자나 전생 때문도 아녜요.

바로 그..

덕 보려고 하는 이기심으로 만났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어디 부부 관계만 그렇겠습니까? 부모 자식 관계에도 괴로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식 보고도 ‘이 웬수야~’ 라고 하잖습니까? 그래서 전생의 원수를 자식으로 만난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우리들 인생 고민의 대부분은 이렇게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또는 부모나 자식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왜 가족관계를 맺고 사는가? 행복하려고..

더 자유롭고 행복하려고 가족 관계를 맺는데 이 가족관계가 행복은커녕 오히려 괴로움이 된다..

그럼 원래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괴로운 것은 인간관계를 잘못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괴롭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 아니고 우리가 인간관계를 잘못 맺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그럼 왜 잘못 맺고 있느냐?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왜 그런가? 인간관계의 올바른 원리, 법칙, 이치..

이걸 모르고 무지해서 관계를 잘못 맺고 있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그 작용하는 법칙.

원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게 괴로움으로 되고, 어떻게 하면 이게 즐거움이 되고, 슬픔이 되는데..

그 작용의 원리를 모르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전생의 죄도 아니고, 사주팔자도 아니고, 어떤 신의 벌도 아니고 무지(無知)..

불교용어로 하면 무명(無明)..

이것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을 때는 거기에 일정한 원리,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을 알면 내가 원하는 대로 관계를 맺어갈 수 있어요.

그 관계를 나쁘게 하려면 나쁘게 할 수도 있고, 좋게 하려면 좋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성질을 모르면, 좋게 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나빠진다..

그래서 억울하죠..

잘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안좋으니까..

하늘을 원망하고, 전생을 탓하고, 팔자 타령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있는 그대로의 법칙..

자연이면 자연의 이치, 생명이면 생명의 원리, 마음이면 마음 작용의 원리..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윤리도덕이 아닙니다.

봉사가 깜깜한 것은 자신이 눈을 감고 있어서 그렇지, 세상이 어두워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눈을 떠라! 스스로 눈을 떠라!’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무지를 깨우치는 겁니다.

눈을 뜨면 세상이 밝아 있음을 압니다.

악몽을 꾸는 사람이 꿈 속에서 계속 괴로워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노력을 하지만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면, 눈만 뜨면 그 괴로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처럼 우리도 무지에서 벗어나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 무명을 깨뜨리는 것..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존재에 의지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벗어남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윤리 도덕을 넘어서는 것이고..

불자든 기독교인이든, 한국사람이든 미국사람이든 관계없이..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관계없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자식 때문에 괴롭다면 인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원리하고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원리, 이 두 가지만 알면 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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