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병과 고통은 다 이유가 있다

병과 고통은 다 이유가 있다

-법륜스님-

전에 읽었던 책 [구르는 천둥]을 우연히 열었는데 마침 이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겪는 병과 고통에 대한 체로키 인디언 치료사 ‘구르는 천둥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병과 고통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들은 늘 지나간 어떤 것, 다가 올 어떤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병과 고통에 대해 아무런 치료행위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왜 그 일이 일어났는 가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문명인 의사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이 어떤 것의 결과이며, 또 다른 것의 원인임을 안다.

때로 어떤 병과 고통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사라지게 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자신은 그것을 모를지라도 그의 영혼은 알고 있다…

육체적인 고통은 좋든 나쁘든 어떤 이유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언제나 영적인 차원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감염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순수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문명인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 오면 질병만 관찰할 뿐 사람을 관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체 약을 주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든지 신체의 어떤 부위를 잘라 쓰레기통에 버린다.” 우리는 병과 고통이 올 때 그것은 ‘나쁜 것’이라고 그래서 빨리 치료해 없애야 할 것 쯤으로 성가시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선 몸이 안 아프기만을 바라고, 그로 인해 온갖 약을 써서 통증을 가라 앉히는데 혈안이 되지요.

몸이 많이 아플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또한 아픈 것이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오히려 그 아픔과 병고를 약을 써서 빨리 사라지게 하면 되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하는 인디언 영혼의 치료사 [구르는 천둥]의 말을 깊이 새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 오면서 짓는 것들이 때로는 좋은 일이고 또 때로는 나쁜 일들이다 보니 우리 안에는 맑고 청정한 기운이 순환함과 동시에 탁하고 어둔 기운으로 순환이 막히기도 하지않을까요.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현대인의 상당수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어 잔득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터지면 바로 병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때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치료하기도 힘들 만큼 큰 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탁한 기운들이, 혹은 악한 업식들이 병과 고통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 안에서 빠져 나가려고 하는 움직임일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모처럼 우리 안에 맑은 순환을 돌리기 위해 탁한 것들을 빼내려는 자정의 작용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한 몸의 배려말입니다.

어쩌면 그 병이 일어나지 않고, 그로 인해 고통받으며 아파하지 않는다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새를 못 참고 온갖 약으로 스스로의 정화작용을 꽉 틀어 막고 있는다는 말이지요.

몸이 아플 적에는 아플만 할 때가 되어 아프구나 하고 받아 들이고,충분히 아파 주는 것이 참 밝은 일인 듯 생각됩니다.

그래 그동안 건강했으니 이제 한번 충분히 아파줘 보자 하고는 아픈 것을 충분히 느끼고 바라보며 다독여 준다는 것이지요.

그랬을 때 아픔도 빨리 가라앉고 아픔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안의 탁한 기운도 정화가 되겠지요.

인디언 치료사 [구르는 천둥]도 남들의 아픔들을 수도 없이 치료해 주면서 자신 스스로의 아픔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 몸이란 스스로 자정할 수 있고, 또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하고 훌륭한 치료사며 약사라고 합니다.

자성부처님은 그 어떤 일도 아무런 이유없이, 혹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나투는 일이 없습니다.

병이 왔을 때 우리를 괴롭히려고 왔겠느냐는 말입니다.

온전히 그일은 우리를 돕기 위한 자성불의 배려이고, 법계의 배려인 것입니다.

몸의 병으로 나투는 것이 자성 불의 배려라면, 세상의 일로 아파하고 좌절하고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이 법신 부처님의 자비스러운 배려일 것입니다.

몸의 병으로 아파하든, 아니면 세상의 일 때문에 힘들어 하든 그 순간은 닦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며, 고마운 순간인 것입니다.

그 아픔을 통해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고, 내 안의 잠복해 있는 온갖 병들을 치유할 수 있으며, 내적인 악업들을 닦아낼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세상 모든 일은 크게 보았을 때, 진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 ‘긍정’ 아닌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부하지 말고 다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물 흐르듯 자성의 흐름에 일체를 내 맡기고 함께 흐르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머리 굴리지 말고, ‘ 좋은 기회구나’ 하고 충분히 그 고통과 벗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미워하지 말고, 나와 둘이 아닌 자비로운 마음으로 감싸주고, 다독여주며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낼 일이라는 거지요.

법계는 오직 나를 도와주는 일만 할 뿐,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오직 내가 하고 있을뿐입니다.

내가 행한 나쁜 일을 법계는 아무런 분별 없는 자비로써 그대로 받게 함으로써 나를 정화시켜 주는 것이지요.

만약에 법계의 자비스런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탁한 기운이며, 악업, 아픈 것들을 잔득 짊어지고 가야 할 것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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