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때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라

▒ 때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라 ▒

-법상스님-

자신에게 처한 괴로움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마음을 몰아가보는 것은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치달을 수 있는 가장 괴로운 상황,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을 하고 난 뒤 그 상황에서 하나하나 다시 시작하는 것 말입니다.

살다보면 감당키 힘든 괴로움이 몰려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짓눌린 상황에 이끌려 몸도 마음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어떤 괴로운 상황이라도 우린 능히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지내는 듯 합니다.

마음만 잘 다룰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상황은 우릴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 내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숙한 삶의 화가이기에 화가의 손에서 자유롭게 그림이 그려져야지 그림에 따라 화가의 손이 왔다갔다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최악을 가정하는 삶은 자칫 포기하기 쉬운 괴로운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일미(一味)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진급이나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했을 때 그 괴로운 상황에 안주하여 머물고 있으면, 그 상황은 나에게 더 큰 실망감과 자괴감 등을 몰고 옵니다.

그런 괴로운 마음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을뿐더러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했을 때 오는 희망마저 빼앗아 가기 쉽습니다.

빨리 마음을 비워야 빨리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방편으로 최악을 가정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더 괴로운 상황,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낙방 정도가 아니라 강제 퇴직을 당하여 직장을 잃고 퇴직하면서도 동료들의 야유를 받으며, 직장이 없다보니 그나마 있던 집도 팔아야 하고 자식 학비걱정에 먹고 살 일이 걱정이며, 업친데 덮친 격으로 몸까지 아파 일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시첫말로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 바탕위에 하나 하나 다시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곳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즐거운 일만 있게 됩니다.

그나마 퇴직 당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더 열심히 일해야겠고, 진급은 못 했어도 위로해 주는 동료가 있으니 야유하고 비난하지 않아 준 것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아내와 자식들 잘 크고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 몸 건강함에 새삼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니 이처럼 남은 것은 올라갈 일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할 일과 즐거운 일 뿐이며 이제 남은 것은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마음 다스리고 나면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한 부자 사업가가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았습니다.

1-2년 정도를 살고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괴로움의 끝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괴로워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가만히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겠지 하며 더욱 심한 최악의 상황을 설정해 보니 감사할 일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남들에게 미움 주지 않고 괴로움 주지 않고 고요히 눈 감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당장 내일 모레 죽지 않음에 감사하며, 남은 생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해 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날 동안 그간의 벌어 놓은 돈을 널리 회향하고자 또한 일에 시달여 평생 원하던 해외여행을 해 보고 죽으려 돈을 싸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죽음을 선고받을 때는 정말 괴롭던 마음도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해외를 떠돌며 많은 어려운 이를 만나고 도움을 주고 그렇게 몇 달 간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바로 죽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렇게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그렇게 해외여행을 마쳤을 땐 신기하게도 이미 몸이 완쾌되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 또한 마음으로 짓는 일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생사의 인연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상황 자체가 괴로움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그 상황에 놀아나기에 마음이 괴로운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그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집착된 괴로운 마음을 비워버리고 나면 뜻하지 못했던 상황이 우리를 반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더 떨어질 최악의 상황이 있으니 우리 앞에 펼쳐질 그 어떤 상황이면 어떻습니까.

그렇듯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두면 앞으로 닥치는 일들이 즐겁고 감사해지며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면 안 될 일들이 다시금 되어지는 도리가 나옵니다.

마음이 변하면 주위가 변하고 세계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괴로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에 안절부절하는 우리의 마음이 병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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