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번갯불처럼 빠져 나간다.
법정 스님
절에 들어와 맨 처음으로 배우는 글이 《초발심자경문》이다.
여기에는 세 편의 글이 들어있는데 보조스님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그리고 야운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이다.
행자시절 《천수경》과 《예불문》은 일상에 필요한 의식문이므로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고 그 뜻도 모르면서 자신이 암송해야 한다.
그러나 《초발심자경문》은 은사스님으로부터 직접 배우거나
선배 스님한테서 배운다.
《초발심자경문》은 처음 출가한 사람들에게는 출가 정신을 심어주는
간절한 구도의 글이다.
익숙하지 않은 고된 일에 코피를 흘려가면서도
환희심을 가지고 행자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법문 덕이라고
여겨진다.
그 전날 배운 것을 외워야만 새 글로 나아가는 것이
전통적인 승가교육이었다.
이따금 들추어 보아도 그 간절한 가르침에 공감하지만 행자시절에는
글을 외우는 데 급급하느라고 법문의 고마움을 건성으로 지나치기 쉽다.
최근에 안질을 앓으면서 나는 새삼스레 시간이 얼마나 빨리
빠져나가는지를 온몸으로 절절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아픈 쪽 눈에 한 시간 간격으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데 그 한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얼마나 빨리 빠져나가는지 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이렇듯 신속하게 마치 번갯불처럼
빠져나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심」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지나 하루 낮과 하루 밤이 가고,
그 하루 하루가 쌓여 한 달이 후딱 지나가고,
그 한 달 한 달이 지나 어느덧 한 해가 저문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의 문전에 이른다.
그러니 어찌 헛되이 세월을 보낼 수 있겠는가’ 라 하였다.
이런 법문을 배우면서도 지극히 관념적으로 스치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몸을 통해서 시간의 덧없음을 절절하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옛글에 ‘온 몸으로 배우라’는 뜻이 여기에 있음도
함께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잔고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깨알같이 많은 날’ 어쩌고 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모독이고 망언이다.
자신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을 의식한다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빠져나가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시한 일이나 무가치한 일에 귀중한 생명의 순간을 흘려보낸다면
한 인생의 삶이 그만큼 소홀해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자신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들을 들이 쉬고 내쉬는
숨결처럼 놓치지 말고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엄숙한 순간에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사를
불러들이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과거가 끼어들면 현재가 소멸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몸뚱이만 등신처럼 있을 뿐 영혼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퇴적물에 묻히고 만다.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 근심을
미리 앞당겨 초대할 일이 무엇인가.
언젠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을 다시 뒤적일 것도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일을 미리 앞당길 필요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때 그 때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뿐,
그 밖의 일은 빠져나가는 세월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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