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이 침묵의 기적
법상스님
늦은 밤 잠못 이루며 이렇게 한 발 떨어져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별들, 우주, 하늘 아래 산과 바다와 언덕으로 둘러쌓인 작고 허름한 도량 하나.
그리고 그 도량 한 켠 작은 방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밤은 어두운데.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찻잔 하나도,
낮에 마시다 미처 치우지 못한 미숫가루 한 잔도,
책장 속에 불규칙하게 꽃혀 있는 먼지 묻은 책들도
눈길 가는 곳 어딘들 놓여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평범하다가도 ‘문득’ 바라보면 바.라.보.면.
멈춘다.
멈추며 문득 무겁게 침묵하며 소리 없는 소리로,
의식 없는 의식과 눈동자 없는 눈으로 따뜻하게 나를 바라본다.
이 우주에 내가 여기 이렇게 이렇게 ‘있다’ 세상은 흐른다.
삶도 흐르고, 그 우주적인 흐름 속에
그 비범한 흐름 속에 수 많은 평범한 것들이 휩쓸려 흘러간다.
삶이라는 신비 속에 또 다른 삶이라는 일상이 흐른다.
세상사, 정신 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일들 속에서
나 또한 그 흐름을 타고 흐른다.
똑같이 그 속에서 흐르며,
그러나 문득 마음의 거리를 떨구고
흐름에서 한 발 벗어나 그 세상의 흐름을 바라본다.
삶 속에서 문득 삶을 바라본다.
세상을 살고 있는, 이 평범한 세상을
나다운 방식대로 평범하게 잘도 살아가고 있는,
제법 그럴싸하게 연극을 해 내며
이 모든 삶의 극본을 완성해 가는 한 존재,
하나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듯이,
아주 생생한 주연도 하고 감독도 하는
그런 한 편의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동화 같은 삶이
허공의 스크린 위로 장대하게 흐른다.
연극을 바라보며 연극을 찍고 있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하나가 둘의 몫을 온전히 해 낸다.
그 신비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아닌 양 평범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 묻혀
나 또한 신비와 일상의 경계를 오고 간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삶의 대본을 내 것처럼 멋스럽게 읽어가며 장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극의 일원이 되어 버린,
때때로 연극을 삶이라 착각하곤 하는
그런 한 존재를 객석의 텅 빈 의자에 앉아 바라본다.
보는 자의 벗은 늦은 밤 하늘을 수놓는 별들이고,
새벽녘 자색 따스한 여운을 뿌리는 햇살이며,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의 호젓함이고,
언 땅을 뚫고 거짓말처럼 피어오른 초록의 숨결이다.
요즘 들어 또 다른 벗은 피아노 잔잔한 선율.
예전에는 때때로 느끼던 건반 위로 흐르는 침묵의 연주를 요즘은 늘 듣게 된다.
삶은 바쁘게 흐르는데, 점점 속도가 멈춘다.
바라보고 멈출 때 저 피아노 선율처럼 삶도 연주된다.
대자대비하신 사랑으로 연주된다.
아,
이 아름다운 삶을
이렇게 하나의 꽃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기적.
이 천연스런 텅 빈 순간의 신비와 깊은 침묵,
그리고 자취없는 행복을
인연 맺은 분들과 사랑으로 나누고 싶은 발원.
나무마하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