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삶은 이 순간입니다

삶은, 이 순간입니다

법정스님

재난은 共業,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 돌아가며 참고 견디는게 삶의 묘미 타인의 삶 나아져야 내 삶도 나아져

재난 수해를 당하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수해뿐이 아니라 많은 재난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천상이나 극락이 아니라 사바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가끔 겪게 됩니다.

사바세계는 겨우 참고 견딜만한 세상이라는 뜻이지요.

이 한세상 살아가려면 참고 견딜만한 일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왜 요즘 이런 천재지변이 많은가.

이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지구에서 사는 각 개인이 재난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어떻게 사느냐의 메아리인 것입니다.

이런 피해에 과연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이것은 올림픽 표어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것을 강조하는 게 옳은 주장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근대 과학의 좌우명은 ‘스피드’, 즉 속도였어요.

모든 면에서 일류를 지향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뜻을 일등에 두고, 일류로 갖는 것은 좋지만 실제 살면서 일등이란 외롭고 고독한 겁니다.

일류를 지향하다보니 도착만을 위해서 과정을 소홀히 합니다.

목적만을 위해서 수단을 소홀히 한다는 말입니다.

삶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예요.

그런데 흔히 생각은 과거에 있고 또 오지도 않은 미래 쪽으로 가버립니다.

늘 지금 이 자리를 소중히 생각하십시오.

여유 하나의 씨앗이 움트고, 꽃피고, 열매 맺기까지는 사계절의 순환이 받쳐줘야 돼요.

잘 살 줄 아는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게 우리 스님들이 살던 삶의 모습 이예요.

}그러고 보니까 지금 수해가 심한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명은 직선 이예요.

직선은 비장합니다.

자연은 곡선 이예요.

곡선의 묘미를 알아야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불구불 돌아가면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지니면서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곡선은 그런 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성급하게 움켜쥐려 하지 마세요.

환경 지금 지구 환경은 말할 수 없이 매우 불안합니다.

지금 지구 환경 위기가 9시 15분이래요.

12시가 종말이랍니다.

그러니까 지구 종말이 지구환경시계로 따지면 2시간 45분이 남은 겁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생활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갈수록 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소위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하고 있는 미국 같은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들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거예요.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는 아황산가스 배출량이 미국이 전 세계 28%를 차지하고 있어요.

유럽에서는 홍수라든가 가뭄이 미국 탓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 인구의 5%밖에 안 되는 나라가 거의 전 세계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해서 마음대로 쓰고 휘두르지 않습니까.

잘 산다고 할 때 미국식으로 사는 것을 아주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 이예요.

業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업이 됩니다.

개인의 업을 별업이라 하고, 여럿이 짓는 업을 사회적으로 짓는 업을 공업이라고 했습니다.

대기오염과 같은 것은 별업이 아니라 공업 이예요.

모두가 그런 식으로 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업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 밭에 뿌린 씨와 같아요.

이 씨앗이 어떤 상황을 만나면 일찍이 예상 못했던 결과를 낳습니다.

이것이 업의 파장이고 그 흐름 이예요.

한사람 한사람이 그런 자각을 하면서 산다면 세상은 달라져요.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현재로 봐서는 반 자연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친자연적인 또는 생명의 원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공존공생.

같이 사는 거예요.

福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1만 2천명의 어린이들이 버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미혼모, 이혼 가정에서 오는 현상인데요, 말 못할 사정이 어디 있어요.

이것은 순 구실 이예요.

자기 자신밖에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요.

가족끼리의 동반자살,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입니다.

말 못할 사정이라고 하지만 참고 기르면서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되고 사람이 되고 인간이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나눔 이제는 우리들이 나서서 이웃을 도울 때에요.

그게 사는 일이예요.

부모의 은혜, 친구의 은혜, 스승의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도와야 됩니다.

남을 도와서 그 사람의 삶이 그만큼 나아지는 거라면 내 삶의 질도 그만큼 높아지는 겁니다.

타인의 삶에 바르게 영향을 미친 행동은 우리 자신의 삶에 그만큼 의미를 가져다 줘요.

의미 있는 삶이 되어야 됩니다.

뜻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 아는 삶.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죠.

사람을 분열시키는 것은 신앙을 갖는 사람,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고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 있는 거예요.

눈앞의 이해타산을 생각하지 말고 전 인생의 과정에서 길게 보십시오.

반성 요즘 저도 이제 제 나이를 의식하게 되요.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가 봐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을까.

절에 들어와 살면서 많은 시주 은혜를 제가 졌어요.

여기 부산에 계신 신도님들께도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나는 그동안 남에게 얼마나 도움을 줬는가.

이걸 반성하게 되요.

제가 남에게 베푸는 도움보다는 제가 지금까지 입은 은혜가 막중합니다.

그것은 백분의 일, 천분의 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요즘 늦게 발심해서 될 수 있으면 내 몸이 고달프더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는 한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거들어줘야 되겠다.

해서 이 노구를 이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법보신문에서]

2004년 10월 2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법정 스님 초청 강연회장 역시 7000여 청중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운 채 스님의 법문에 몰입했다.

법정 스님이 ‘맑고 향기로운 삶’을 주제로 부산 대중들에게 설한 법문내용을 요약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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