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법정스님-
한낮인데도 개울건너 숲에서 두견새가 운다.
간밤에도 내 베갯머리까지 그 울음이 울려와 잠결에 몇 차례 뒤척거렸다.
철새가 철을 따라 이 땅을 찾아온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고맙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제비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삼월삼짇날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어김없이 돌아왔는데 이제 그 시효가 다 된 모양인가? 몸통은 제비 비슷하고 꼬리가 몸보다 몇 곱이나 긴 삼광조 본 지도 아주 오래다.
날짐승들이 제철이 되어도 정든 옛집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이 땅이 새들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더렵혀진 것이다.
얼마 전 중국여객기 추락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다들 충격을 받았다.
곧 착륙하여 정든 집으로 돌아갈 바로 그 직전 한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때 함께 탔던 생존자들은 마음이 얼마나 허망하고 허무했겠는가.
사는 일이 꿈만 같았을 것이다.
이런 사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 앞에 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라는 행성을 타고 해를 중심으로 우주공간을 비행하고 있다.
이 기체에는 65억이 넘는 승객들이 타고 있다.
이 승객들 대부분이 미국식 생활에 물들어 지나치게 소비하고 함부로 내다 버리고 마구잡이로 허물며 더럽히고 있기 때문에 이 비행기는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엘모 스톨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지금 이 세게는 가속도가 붙은 채 내리막길을 걷잡을 수 없이 달리고 있는 기차와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과연 그쪽으로 가야만 하는지 의심하면서도 안전하게 뛰어내릴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불안에 떨면서 어쩔 수 없이 앉아 있는 꼴이다.’ 아주 적절한 비유다.
요즘 이 땅의 권력 주변에는 온통 부정부패 일색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부정부패 공화국이라는 말이 더 실감 날 지경이다.
물론 이런 부정과 부패는 현 정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규모와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지 역대정권이 똑같이 밟아온 암흑의 길이다.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이 그 어느 때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 없이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비리가 낱낱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모든 권력은 반드시 부패를 동반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정치 권력마다 집권 초기에는 하나 같이 개혁을 부르짖는다.
그 깃발로 국민의 시선을 이끈다.
그러나 정작 개혁의 주체인 자기 자신들은 개혁할 줄을 모른다.
여기에 권력의 부패가 따른다.
자기 개혁 없이 어떻게 세상을 개혁할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이와 같은 부정부패가 돌림병처럼 번지는지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쥔 사람이나 그 주변 인물들이 공직자로서 기본적인 양식과 삶의 철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너나없이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차지하고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거나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래, 많이 차지하고 많이 가질수록 행복한가? 3,40년 전 우리가 모두 어렵게 살던 시절과 현재를 비교해 보라.
그때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가? 인간 가치는 날이 갈수록 하락 일로에 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결국은 불행해진다.
지나친 소유가 우리를 괴롭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에게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게 하고 우리 본래의 모습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재물이 사람의 할 일을 대신하게 되면 사람은 스스로 존재 의미를 잃는다.
우리를 부자로 만드는 것은 돈이나 물건이나 집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이다.
그가 돈이나 재산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에 따라 그는 부자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드물게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할 수 없다.
그 마음이 곧 부자이기 때문이다.
나눌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부자가 있기 때문에 도둑과 강도가 생긴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나름의 삶의 철학이 있다.
그들은 절제의 미덕을 알고 있다.
그들은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기보다는 안으로 맑고 조촐하게 누리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안을 원한다.
이와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배우려면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삶도 하나의 기술이다.
먼저 우리들의 삶에 무엇이 보다 값있고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영원히 빈껍데기로 처질 것이다.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꼭 필요한 것만을, 그것도 최소한도로 갖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고마워하는 삶의 태도는 결코 낡고 소극적인 생활방식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생활태도는 오늘 지구생태계의 위기 앞에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 지혜로운 삶의 철학이다.
당신도 부자가 되고 싶은가? 우선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당신은 비로소 당신다운 삶을 이루게 될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홀로사는 즐거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