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법
-법상스님-
기도하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대부분이 무언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빌고 또 빕니다.
물론 빌고 비는 것이 기도의 사전적 의미이지요.
그러나 부처님께 잘 빌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고, 바라는 바를 이루어 지도록 하는 기도는 아주 초보적이며 기복적이고 매우 원시적인 수준의 기도에 불과합니다.
기도의 본래 의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을 때 찾아옵니다.
‘바라는 바’가 있다는 자체는 벌써 지금 이 순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고, 그랬을 때 지금 이 순간의 평화는 깨어지고 맙니다.
바라는 바가 있는 이상 지금 이 순간은 행복할 수 없어요.
바라는 바를 놓아버렸을 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만족할 수 있고 온연한 평화로움과 고요와 마주할 때 그 때 비로소 참된 기도를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바라는 바가 없고 부처님께 빌 것이 없어졌을 때 부처님께 나아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와 ‘찬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부처이고, 나를 포함한 온 우주 법계가 그대로 완전한 것을 안다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 ‘찬탄합니다.’ 하는 말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내 근본이 부처이고 지금 이 순간 온전한 평화를 느끼고 있으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웁겠습니까.
온 우주 법계를 찬탄하고, 하늘과 땅과 나무와 바람과 구름 꽃 한 송이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를 찬탄하며 그 근본 자성불인 부처님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음이 감사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집이 있음이 감사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이 감사하며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기도로써 읊조릴 수 있음이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이 있는 이유는 말하고, 싸우고, 논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찬탄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이렇게 감사하는 것, 그것이 참된 의미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를 드리는 것, 찬탄을 드리는 것 뿐입니다.
사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감사라는 것도 필요 없고, 찬탄도 필요가 없어요.
그냥 그렇게 여여할 뿐이고 앞뒤가 탁 트여 텅 빈 고요일 뿐입니다.
말도 필요없고, 절도 필요없고 감사며 찬탄도 딱 끊어진 자리가 되겠지만, 그런 자리와 한자리 나누지 못하는 우리 입장으로서는 감사의 기도가 아름다운 방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와 같이 기도의 본질인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온연한 만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 부처의 자리라는 믿음, 산하대지현진광(山河大地現眞光)이라 온 우주 법계 산하대지가 그대로 참빛임을 믿어야 합니다.
만족은 곧 감사로 이어지고, 감사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향기롭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가꾸어 줄 것입니다.
부처님 전에 나아가 기도를 드릴 때, 108배, 1080배를 할 때 한 배 한 배 하면서 남편 진급 바라고, 자식 대학 진학 바라고 온 가족 건강 바라고 그러면서 절을 할 것이 아니라 한 배 하면서 감사합니다, 한 배 하면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이 진정한 절 수행이고 기도일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