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염불수행/
법상스님
“선남자야, 만약 무량백천만억 중생들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될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觀)하고 모두 괴로움에서 해탈케 하시느니라…
”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막상 괴로움에 처하게 되면 제일 먼저 ‘아이고, 관세음보살…’ 하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네 일상 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은 참 가까운 분이십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조상님들은 살아있는 생활수행을 실천해 오신 참으로 밝으신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괴로운 경계가 닥치는 그 순간…
‘관세음보살’ 염불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밝은 수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한 마디 염불 속에 참으로 소중한 생활 실천수행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린 수행한다고 하면 의례히 절에 가서 예불하고 1080배, 3000배 절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해야만 수행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절을 할 때는 참 맑은 마음입니다.
참선 할 때는 참 밝아 오는 듯 가슴이 훤합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네 마음은 금새 혼탁해 지기 쉽습니다.
절하고 참선할 때는 맑은 마음을 가지고 일상에 돌아와 똑같이 화내고 욕하고 분별심을 낸다면 어찌 이 사람을 수행자라 이름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수행자는 일상 속에서 언제나 깨어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이라는 순간 순간에 성성적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분별심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업장에 휘둘려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순간 순간 올라오는 그 마음 현실에 즉(卽)한 그 순간에 닦아 낼 수 있어야 진정한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훌륭한 방편으로 우린 ‘관세음보살’ 염불을 합니다.
욱! 하고 올라오는 그 순간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대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08번 만 해 보고 그 다음에 화를 내리라 생각해 보세요.
관세음보살 108번 염불하는 그 동안 올라오는 업장, 그 탁한 분별심은 가라앉고 밝은 마음, 부처님 참생명의 울림이 가슴을 감싸 안을 것입니다.
올라오는 그 순간 업장은 녹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업은 올라오는 순간 녹여야 합니다.
현실 현실에 그 순간 순간 닦아가야 합니다.
‘관세음보살’ 염불하는 마음 속에 방하착(放下着)이 있고, 관(觀)이 있고, 참선이 있습니다.
그 염불하는 마음이 바로 마음공양입니다.
그 한마디 염불속에 이 모든 수행체계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저 관하라, 놓아라, 마음을 비워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모른다고 합니다.
너무 추상적이라고 합니다.
잘 된 건지 아닌지, 잘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큰 물에 떠내려 가더라도 관세음보살 그 이름 염하면 곧 얕은 곳을 얻게 되며…
또 어떤 사람이 해를 입게 되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그들이 가진 칼과 무기가 조각조각 부서지고…
수갑과 고랑과 칼과 사슬이 그 몸을 속박하더라도 관세음보살 이름을 염하면 모두 부서지고 끊어지고…
만일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 문득 성내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느니라…” 는 구절이 나옵니다.
어떤 이는 참 허황된 이야기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진실된 법문입니다.
너무도 철저한 염불 수행의 공덕입니다.
실제로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염불을 하면 다 녹일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염불수행!! 그 지극한 한마음이 충분히 법계를 울리고 그 어떤 상황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마음 닦는 수행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큰 고난, 괴로움 그 분별심을 관세음보살 염불로 닦아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상대로 인해 내 마음에 분별심이 일어날 때, 상대에게 욕을 하고 싶고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을 때, 그 때 일념으로 ‘관세음보살’ 염불하면 내 마음 속에서 올라오려던 그 독심의 업장이 일순간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그 어떤 괴로움도 문제는 오직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 때문에 내 마음이 괴로워졌지만 문제는 그 또한 나의 업장이 올라오는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내 마음 닦아내면 상대가 변하고 세상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듯 내 주위를 바꾸는 그래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바꾸는 그 중심에 오직 ‘나’가 있을 뿐입니다.
바꾸어야 할 ‘너’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찌 바꾸어야 할 지…
어찌 수행해야 할 지…
어떻게 마음을 비워야 할 지…
어떻게 하면 수행이 되는 것인지…
어떻게 마음을 관찰해야 할 지…
우린 참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 때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08번 만이라도 염해 보세요…
그렇게 하루에 열 번 1080번만 이라도 관세음보살 명호를 염해 보세요…
그렇게 실천하다보면 수행이 무엇인지…
마음 관찰이 무엇인지…
생활 수행이 무엇인지…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