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영가천도

영가천도

광덕스님

이글은 고 광덕큰스님께서 불광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편집부에서 녹음 정리한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선망 부모님과 그밖에 유주무주 일체 애혼들과 유연영가들을 천도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혹은 함께 찾아오셔서 상담하는 가운데 의문이 제기됐던 것들과 개인적으로 치료를 해오신 것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이해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일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육신이라는 생명을 버렸을 때 우리는 그것으로 종말이 되느냐? 많은 분들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말이 되지 않는다 하면 그 다음생이 어떻게 지속되느냐.

거기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불법에 대해서 이해하시는 분들께서도 윤회를 믿지 않고 다음생이라고 하는 것을 믿지 않는 분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형제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 생명이 육체 생명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이 지속된다면 어떠한 상태로 지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신 분들은 또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생차별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 마음의 바탕은 천 가지 차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업을 받고 보를 느끼고 모든 곳으로 윤회를 하게 됩니다.

문제는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를 가지고 있느냐.

그 상태가 천차만별이라 제각기 한 형제들이 여기 모여서 같이 정진을 하고 바라밀 염송을 하더라도 아주 잡념없이 깊은 안정과 선정력 가운데서 염송하시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고 온갖 잡념이 부글부글 끓는 가운데서 염송하시는 분도 계시고, 여러 가지 차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의 움직이는 점으로 그 마음상태의 차별에 따라서 사람이 결정됩니다.

근본적으로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마음의 안정 정도, 선정력의 정도에 따라서 사람의 차별이 있듯이 중생차별도 벌어집니다.

인간차별의 정도 이상의 큰 차가 있을 때는 중생차별이 벌어지는데 그 가운데서도 마음이 안정되고 깊은 삼매의 힘을 기를 때 그런 분은 천상에 태어나도 색계천 이상에 태어나고, 그밖에 대립감정이 없이 순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들 그렇게 안정된 분들은 대개 욕계천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삼매의 안정된 힘과 항상 움직이는 어느 정도 불안한 마음상태가 인간이 되고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보다 거칠고 격한 감정을 서로 견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마음상태에서는 또 그에 따르는 거치른 중생세계를 과보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안정성 정도에 따라 타고나는 세계에 각각 차이가 있다고 본다면 우리의 일상수행이 우리의 다음생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영가천도법문

대개 천도의식을 할 때 영을 청합니다.

영을 청할 때 하는 법문이 있는데 제가 지금 말씀드린 대목도 그 가운데 법문의 하나입니다.

“법성(法性)이라고 하는 진리의 본체성은 부처님의 본체성이나 우리의 본체성이나 근원적인 진리 자체는 하나인데 진리체성은 무명무상(無名無相) 이름도 이를 수 없고 형상도 없다.

크게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가 본래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나 대적삼매가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자기의 본 생명이 부처님과 똑같이 안정된 대삼매 가운데 안정된 생명인 것을 믿지 못한 까닭에 마음이 천 가지 만 가지로 움직이고 흔들려서 과보를 받고 윤회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한마디 더 일러주고 영가를 청합니다.

청해서 “이 자리에 임해서 법문을 들어라.

공양을 받들라.

기쁨을 거두시라.” 그러한 법문과 법요식이 진행되는 것이 천도의식입니다만 하여튼 육체로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육체가 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육체는 하나의 의상입니다.

인간계에 태어나서 인간복을 입고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라고 하는 육체복을 입고 나옴으로써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옷을 바꾸게 되면 새옷을 입은 사람으로 바뀌어 집니다.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마음이 얼마나 안정되고 밝고 기쁘고, 안정되어 있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듭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몸을 버린 후에도 우리가 몸뚱이를 가지고 여기 내가 있는 곳을 의심하지 않고 분명히 여기 있는 것처럼 사후에도 역시 분명히 그와 똑같이 있습니다.

조상과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있는 생명줄기

각성(覺性), 깨달음의 본성이 불멸의 불성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혹할 때라 하더라도 미혹한 상태에서도 분명히 있다고 하는 것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이 일체를 갈무린 것처럼 그 일체 가운데 일체 중생이 들어 있습니다.

일체 국토가 들어 있습니다.

일체 국토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법성으로써 하나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동일법성이라고 제가 항상 말해오고 바라밀생명이라고 말을 합니다마는 전체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미혹하여 자기의식의 한도 내에서 자기를 인정하기 때문에 자기의식의 한도 내에 자기한정을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중생차별이 거기서도 역시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근본생명이 모두와 더불어 함께하고 있는 대생명, 대진리 생명,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 가까이 있는 형제들이나 한 형제, 한 가족, 한 혈족, 한 조상 밑에 한 자손 그 사이에는 역시 끊을 수 없는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기 어떤 정신적으로 좀 흔들리고 있는 영들, 영이 아닌 사람들, 그것이 바탕이 되어가지고 병적 증세를 가지고 있는 정신불안이라든가 정신허약증세라든가 노이로제 경향 등 그런 체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분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한 사람으로서의 육체적인 조건들은 다 원만하고 몸이 정말 융융해 가지고 몸이 당차게 생겼는데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서 안정을 못 얻고 병적 증세가 심해져서 학업을 중단하거나 직장에 휴직계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을 보면 생명이 조상과 더불어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독립한 개체로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기 조상님과 부모님과 먼 조상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내면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생명의 줄기에 의해서 이어진 연속체입니다.

결코 독립해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허약증세의 원인

육체가 부모를 떠나서 따로 있고 조상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선인 즉은 공동의 선을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의 선이 어느 부분이 억압되거나 흐르는 것이 중단되거나 막혔거나 그래서 공동의 생명선이 흐르지 않을 때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육체적 몸은 굉장히 단단한데 정신적으로 허약증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사람을 보면 지금 당장 진찰하는 것이 어딘가 하면 조상공경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조상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그런 사람은 대개가 조상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등한하고 제사를 안 모시고 그 조상이 생각하고 있던 종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것은 자기 자신이 그럴 뿐만 아니라 그 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사람의 선대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했을 때 그 잘 못 모시는 부모님 대에서 그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대에 그런 증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조상님을 잘 못 모시고 전에는 외면만 하고 살았었는데 그 손자대에 와서 그런 증세가 나타나거나 그럽니다.

저는 몇 번 그런 예를 보았기 때문에 조상님에 대해서 다시 공경과 존경을 회복하라.

조상님에 대해서 감사하고 존경하고 조상님이 미혹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밝은 부처님 광명 가운데서 새롭게 힘을 얻어서 성장하시도록 기운을 드리고 천도를 드려라 하고 권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 사람들이 회복이 됩니다.

저는 거기서 이론을 대기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내면에 있어서 실생명 내부에는 우리 부모와 조상님과 먼 조상님과 더불어 이어져 있는 물줄기가 있다는 이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이 그렇게 선다면 정신적인 허약증세를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조상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고 천도하고 조상님으로 하여금 밝은 국토에 태어나도록 그리고 항상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공양을 올리고 있을 때 저절로 그 병적 증세가 치유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올바른 독경법

우리 조상님은 우리와 떨어진 먼 과거가 아닙니다.

지금도 나와 나의 후손에 이를 때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진 생명의 줄기가 있습니다.

이 생명을 통해서 윤택하게 생명의 힘이 넘쳐 오기 때문에 우리 육체생명과 정신생명은 더욱 왕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상님에 대해서 어떻게 독경하고 공양을 올리고 천도할 것인가.

우리가 주로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독경하는 일입니다.

조상님을 위해서 독경하고 우란분재 같은 때에 헌공을 하고 축원하여 올린다든가, 제삿날 잊지 않고 또한 염불 독경해 드린다든가, 공양을 올린다든가 그런 것입니다마는 저는 독경에 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상님을 위해서 독경할 때 우리들이 다들 잘 아는 바와 같이 이 경을 읽습니다.

경을 읽는데 꼭 조상님이 독경하고 정성스럽게 올리는 독경공덕을 조상님에게 회향하는 그런 뜻도 있고, 또 한 가지는 독경할 때에 조상님이 함께 임하셔서 그 자리에서 함께 염불 독경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도 됩니다.

또는 그렇지 못하고 조상님이 전혀 불법을 모를 때에 조상님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그런 법문도 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럴 때는 아무리 불법을 잘 알더라도 어른 앞에서 아는 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절대로 오만한 자세를 가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조상님이 불법을 모르고 자기가 불법을 환히 안다 하더라도 꼭 겸허한 마음으로 오직 조상님에 대한 감사와 공경과 그리고 크신 은혜를 항상 생각하는 그런 넓은 마음에서 독경을 하고 염불을 하고 그 공덕이 조상에게 돌아가도록 축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을 읽되 자기가 아는 경을 읽어야 합니다.

뜻을 아는 경을, 그러니까 반야심경을 외우더라도 그 의미를 모르겠거든 반야심경을 배워서 의미를 알고, 번역한 경전을 읽게 되면 자기도 저절로 알게 되고, 조상님들도 더욱 이해하기 쉽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조상님이 직접 이해 못하신다 하더라도 독경한 공덕을 회향함으로써 조상님에게 밝은 공덕이 가게 되지요.

독경을 할 때 주의할 또 한 가지 점은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침시간으로 정한다든가 밤시간으로 정한다든가 아침 먹고 나서 시간을 정한다든가 어느 시간 한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에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독경을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 이외에 시간이 있어 독경을 하더라도 그밖에 한 것은 제쳐 놓고 정해 놓은 시간에 하는 것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독경할 때에 그 영을 청하고 그 영을 위해서 축원하지만 때로는 함께하기 때문에 함께 읽기 위한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 무질서하게 “아무 때나 오십시오.

독경공양 올립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영들이 한가롭게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딱 정해 놓은 다음 “이 시간에 독경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병에 관계되는 얘기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인 모를 병들, 전간이나 소아마비나 그런 병들이 왔을 경우(일본에서 통계된 집계를 보니까) 일반적으로 자신이 믿던 종교를 바꾸어 다른 종교를 믿었다고 한다든지, 종교를 믿다가 종교를 포기했다든가 종지를 바꾸었을 때 이런 병들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가장 정신적인 기초가 되고 있는 종교신앙에 대한 기초가 흔들리기 때문에 그 영향이 후손에게 미치지 않는가 생각하게 합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가 과연 조상님이 바라고 있는 신앙인가를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집에서 독경하고 천도하고, 때로는 위패라도 모셔놓고 독경을 할 경우나 공양을 할 때가 혹 있을 것입니다.

자기집안과 직접 인연이 없는 영들을 청하거나 위패를 만들어 일시적이나마 공양을 하거나 할 때 그 자비한 마음은 좋으나 옹호성중들이 다 제도가 된 절에서는 몰라도 속가에서 하실 경우에는 장난이 생깁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종교 가운데 어떤 종교의 책임자로 있는 사람이 자기네 집에 신도들 위패를 다 모셔놓고 있으면서 저에게 건강문제 때문에 상담을 하러 왔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그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와 인연 없는 많은 영들을 초대한 것은 좋았는데 그 많은 영을 질서 있고 참으로 깨달음의 길로 보조를 갖출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법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법력이 없기 때문에 소란스러운 것입니다.

자비심이 있어서 속가 집안에서 천도를 하고 공양을 올리더라도 인연이 없는 무연 영은 가정에 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싶거든 우란분재일을 택해 절에 가서 해야 합니다.

제사의 공덕

그 다음 또 한가지 조상이 돌아가신 지 오래됐는데 지금 제사를 지내도 공양을 받으시고 또 축원을 하더라도 영험이 있는가 하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마는 제가 겪어본 경험에는 육체를 버리고 금방 속히 새 생명을 받아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몇 십 년을 그냥 방황하는 그런 영들도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영은 부산에 있던 어떤 의사의 아버지 경우입니다.

아마 30년은 그냥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생전에 건달로 살던 분입니다.

한량으로 살았어요.

한평생 돈 한 푼 없이 오다가다 매일 술이나 마시고 태평세월을 살았다가 돌아가실 때도 “그저 나 죽거든 술 한 잔만 떠 다오.

아무 것도 안 바란다.”하는 유언을 남겨 놓고 돌아가신 분인데 돌아가신 후에도 방황하는 건달생활, 한량생활을 했던 모양입니다.

몇 십 년 후에도 자기가 괴로우니까 나중에 아들에게 빙의해서 왔는데 아들이 병이 났습니다.

자기가 의사지만 병의 원인을 모르겠고 약을 먹어도 효과가 안 나니까 그 다음 기도하러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게 되었고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영이 자기고백을 하고 같이 대답을 하게 되어 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 같은 경우는 관세음보살 이름은 알아도 염불도 잘 안하고 그저 알고 있는 정도로 구원받으려고 생각했는지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을 불러도 소용없더라.” 그런 소리를 하더군요.

“그럴 리가 있느냐 당신이 믿음이 약하고 정신력이 허약해서 그러니까 여기서 함께 기도하고 축원하자.” 그러니까 그것이 좋겠다고 합의가 되어서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여튼 영들이 돌아가셔서 시간이 비록 오래 됐다 하더라도 그래도 천도 못 받고 방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분에게 제사지내는 것도 허망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음식 차리는 것에 대해서 영들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개 깨달음의 힘이 큰 고급 영이 되실 경우에는 음식에 대해서 관심이 적습니다.

그러나 영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돌아가신 후 초기에 닥쳐오는 제일 고통은 불안한 것입니다.

생각이 불안 한 것, 그 다음에 시장한 것, 이 두 가지가 불행인데 제일인 것이 불안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육체를 자기로 삼고 육체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가 육체에서 다 떠나고 나니까 흔들리는 것입니다.

흔들리니까 무엇이든지 잡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집착력 때문에, 잡는 것 때문에 길에서 죽으면 지방령이 되고, 나무에 매달려 죽으면 나무에 매달린 귀신이 되고 그런 식이 된다는 것은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의 힘에 의해서 집착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차별이 있습니다마는 대개 돌아가신 후 얼마 안 되는 동안에는 육체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 불안과 함께 시장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양을 차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이루신 고급 영들에게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영의 경우를 경험을 해보았습니다마는 자기 정도가 되면 시장기에 대해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영도 있었습니다.

독경은 번역된 경전으로

그리고 집에서 독경하고 조상님을 위해서 제삿날 제사지내면서 염불하다가도 될 수 있는대로 반야심경 번역된 것이라든가 지장경이라도 번역된 지장경을 천도나 의식 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는 경우는 독경한 공덕을 회향하는 의미에 있어서 공덕은 되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위패를 모셨다거나 제사를 차렸다거나 할 때에 우리가 정성으로 자식된 도리에서 정성껏 하면 됐지 뭐 실지로 잡수시는지 오시는지 누가 알게 뭐냐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도 혹 있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조상님은 거기에 와 계십니다.

그러니까 비록 종이를 접어서 써 놓은 위패라 하더라도 그 위패가 영이 의지하고 있는 중심입니다.

혹 꽃 한 송이, 음식, 병풍 같은 것을 챙겨놨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 영이 살고 있는 장엄도량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소중히 해야지 그것을 함부로 하고 마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른이 임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제가 영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직접동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동래여고 3학년 되는 여학생이 죽어서 천도를 할 때였습니다.

제가 절에 간 자 얼마 안 됐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그때 상 차리고 병풍을 갖다 놓고 위패를 만들어 놓고 하는 책임을 제가하고 있었는데 병풍이 여러 개가 필요해서 그냥 그 여학생이 쓰던 병풍을 종종 쓰고 갖다놓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자기 어머니를 통해 “내게 있는 병풍을 그렇게 자꾸 가져가느냐.”하고 불평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안해서 꽃을 몇 번 꺾어다가 그 영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뜻으로 꽂아 놓으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헌데 그 꽃을 꽂았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

벌써 사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형제들에게 이 말씀 드리는 것은 결코 제사지내고 영가를 위해 독경하고 천도하는 것이 허망한 일이 아니라 진실이다 하는 것입니다.

위패 틀에다 위패 하나 꽂아 놓고 병풍 하나 놓는 것도 모두가 영이 앉아 있는 장엄도량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영가를 위한 독경은 반야경전으로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독경할 때 반야 계통의 경전을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번역된 경전을 읽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병으로 죽은 젊은 사람 같은 경우 육체가 없습니다.

육체가 없는 것에도 불구하고 병들었던 관념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가 본래 없었다.

지금도 없다.

그렇거늘 어디 병이 붙을 여지가 있겠는가.’ 이렇게 자기생각을 돌이켜서 깨우치게 하는 도리가 반야심경 같은 경우 참 절실합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는 반야심경 같은 법문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삿날에도 될 수 있으면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조상님 앞에서 한 편 읽어드리면 괜찮지 않겠는가 하고 권해드립니다.

천도를 하더라도 이미 우리 조상님은 다른 곳에 태어났을텐데 내가 염불하고 축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바른 영들은 이 몸을 받고 나서 이삼일이면 바로 자기 태어날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일정한 기간의 안적기간을 거쳐서 세간적인 모든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 반성을 거치는 경우가 49일 걸립니다.

그리고 대개 그동안 나타난 마음상태, 그 업에 따라서 세상을 받아갑니다.

그렇지만 비록 다른곳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우리가 보기에는 천상이 멀고 지옥이 멀고 인간세계가 서로 멀고 불국토가 멀 듯이 보여도 불국토나 천상이나 지옥이나 아수라나 인간세계나 온 구족계 모두가 원래 진리에서 보면 일념, 한 생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일심으로 일념으로 염할 때는 지옥에 가 있어도 통하고, 천상에 태어나도 인간으로 태어나도 그 사람에게 복이 갑니다.

온 우주의 실존인즉 일념이다.

일념즉하에 만유와 함께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고 공경과 천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이교도도 천도되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것은 이교도도 천도되는가?

불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생전의 그런 사람이 죽은 후에 천도될 수 있는가.

가까운 우리 주변에 불교 아닌 종교가 많습니다만 이교도라 해서 천도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교도라 하지 말고 똑같이 괴로움에 빠져 있고 생의 길목에서 헤매고 있는 영이라고 생각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독경하고 염불하고 축원해 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자기 친정 고모님 천도를 청해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정이 철저한 기독교 집안이라 고모님도 기독교를 철저히 믿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자기만이 불교 믿는 집에 출가해 불교를 믿고 있는데 불교를 믿는 자신의 꿈에 자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에 나타나면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 고모님이 기독교를 철저히 믿으신 분이신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면서 왔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믿었다고 차별하지 말아라.

그분도 지금 기독교 집안에서 생전을 닦았던 사람이고 또 지금도 어떻게 보은을 받을 알고 불교 믿는 조카한테 호소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는 것이다.

조카된 도리에서뿐 아니라 그렇게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불법 믿는 사람이 그냥두면 안 된다.

천도를 해주는 것이 좋다.” 고 말하고 제가 천도식을 했습니다.

한 번 천도식을 올린 것뿐이었는데 그 다음에 일체 꿈에 보이거나 불안한 것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교도라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법에는 이교도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믿고 자비심을 가지고 공경심으로 천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출처 월간 불광(www.bulkw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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