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자기를 비우는 작업
/ 법륜 스님
공부란 뭡니까?
절하면 된다.
참선하면 된다.
이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경전을 인용하여
또는 어떤 스님이 뭐라고 말했다 하는 것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수행이란
내 것이라 할 것과
내가 옳다고 할 근본적인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무아 (無我) 무소유( 無所有) 무아집(無我執)을 말하죠.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가슴속에 맺혔던 응어리들이 하나씩 풀려요.
우리가 가슴 속에 왜 응어리를 가진 채 사느냐?
변하지 않는 어떤 내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칼은 다른 칼에 부딪치면 상처가 생기지만
내가 허공이라면 외부의 어떤 칼이 꽂친다 해도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자기 비우는 작업”이라 하는 것입니다.
법의 실상을 잘 알아서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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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고,
모든 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니,
이름도 형상도 없고 일체가 끊겼으니,
깨달음의 지혜로만 알 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나,
자기 성품 지키지 않고 인연따라 이루더라.
살면서 언제나 이 구절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원효대사께서 해골 바가지의 물을 먹고
게송을 읊었는데 그 게송은 새로 지은 게 아닙니다.
화엄경 내용이었어요.
대사께서도 화엄경을 많이 읽고
그문장을 항상 새기고 있었지만
체험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것을 깨닫자마자
항상 담고 있던 그 구절들이 저절로 나온겁니다 .
그러니까 언제나 이런 구절을 새기고 있으면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탁 돌이켜 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