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 제례의 의미와 역사
불교 제례는 크게 가정에서 지내는 불교식 제사와, 사찰에 의뢰하여 지내는 재(齋)의 형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는 천도재의 방식으로 지낸다. 그것은 삼보의 가피력으로 영가를 천도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스님이 의식을 진행하는 가운데 스님들의 법력으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극락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지내는 불교식 제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고인에 대한 추모와 효를 실천하는 중요한 가정의례이다. 따라서 삼보의 가피력으로 조상영가를 불러 모시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천도의 의미와 조상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가호를 비는 추선공양(追善供養)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스님들이 의식을 주관하지 않으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재’라고 하지 않으며 따라서 천도의 의미보다는 추선공양의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불교식 가정제사가 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자로서 관혼상제 등의 일생의례를 불교식으로 행하는 것은 당연하고, 교리에 맞는 법도로 제사의식을 진행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래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 제식주의(祭式主義)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조상의 영혼을 모시고 조령제(祖靈祭)를 지내온 고대 인도문화는 인간의 본래적 심성을 담은 것이어서 초기불교 당시부터 영가에 대한 제를 수용하게 되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중유의 상태를 쁘레따(preta, 가버린 사람)라 하였고, 쁘레따의 단계를 거쳐 조상신으로 자리하려면 조령제를 지내야 한다고 여겼다. 이 쁘레따가 ‘아귀’로 한역(漢譯)되면서 초기경전에는 영가를 위한 의식을 시아귀회(施餓鬼會)라고 기록하였다. 제사에 해당하는 시아귀회는, 팥을 뿌리거나 흐르는 물에 음식을 던지거나 음식을 담은 그릇을 들고 염불을 외우는 등의 방식이었다. 이후 중국불교에 와서, 조상은 후손의 공물(供物)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불교식 제사에 해당하는 재(齋)의례가 정착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49재를 비롯한 천도재가 활발히 행해졌고 천도재에는 제사에 해당하는 시식 절차가 있어서 영가를 위한 불교의식은 제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승되었다. 아울러 고인의 기일에 사찰이나 궁궐에서 기재(忌齋)를 지낸 기록이 있는데 이로써 기제사와 명절제사 역시 불교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스님들이 주관하는 불교식 제사를 금함으로써 점차 제사는 가정에서 후손들이 봉행하는 것으로 정착되었으나 49재를 비롯한 우란분재(盂蘭盆齋), 수륙재(水陸齋) 등의 천도재는 꾸준히 그 맥을 이어왔다.
실제 역사적으로 상제례를 중심으로 한 불자들의 사후의례는 유교와 불교를 통해 복합적이고 이중적으로 치러온 경향이 크다. 유교식 의례를 치르는 한편으로, 불교의 내세관과 구제사상에 의해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왔던 것이다. 따라서 영가의 내세와 산 자의 발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조상의례가 천도재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제사는 현대에도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지만, 봉사대상(奉祀對象)을 축소, 통합하거나 형제 간에 제사를 나누어 모시는 등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아들이나 후손 없는 불자들만이 주로 사찰에서 제사를 지내왔으나, 근래에는 제사 준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종교적 추모 방식의 경건함 등을 이유로 사찰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찰제사는 영가를 추모하고 효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과 더불어 영가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자 하는 기원을 담고 있어 불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포용하게 된 것이다.
2) 제사와 재(齋)
불교에서 말하는 재(齋)는 제사와 곧잘 혼동된다. 그것은 ‘재’가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발음상으로 재와 제가 쉽게 구분되지 않고, 가정에서 지내는 기제사를 사찰에 의뢰하여 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49재 등 천도재 의식 속에는 제사에 해당하는 시식(施食)이 있어서 제사의 제(祭)와 천도재의 재(齋)를 구분하지 않은 채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란 본래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불교에서는 천도재 의식 속에 민간의 제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영단 앞에 치르는 시식은 제사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재는 유교제사와는 다른 중요한 의미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불교의 재(혹은 제사)는 삼보에 귀의하는 불자의 신행 생활을 반영한다. 불보살님을 모신 법당에서 스님의 진행에 따라 경전의 염송과 염불로 의식을 치르며, 이러한 과정에서 삼보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삼보의 가피를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 수용된 제사는 사찰과 가정의 구분 없이 삼보의 가피력에 의지하고 삼보에 귀의하는 종교적 의미로 이루어진다.
둘째, 유교식 제사의 일반적인 의미가 고인을 추모하고 효를 실천하는데 있다면, 재는 이에 더하여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의미를 지닌다.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원함과 동시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스스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특징이라 하겠다.
셋째, 재는 해당 영가만이 아니라 천도가 되지 못한 채 떠도는 모든 유주 무주 고혼(孤魂)과 지옥중생을 함께 의례의 대상으로 삼는다. 개인의 천도재라 하더라도 영가를 모시는 영단에 유주무주 고혼을 함께 청하여 이들 모두를 천도의 대상으로 삼아 의식을 진행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지은 선행의 공덕을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으로써 불교의 회향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재는 육류, 생선과 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동물성 공양물을 올릴 수 없으므로 떡, 과실, 고임음식을 정성껏 차려 상차림의 격식을 갖추게 된다. 또한 술 대신 차를 올리는데 이때의 차는 맑은 물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찰에서는 불교의 재에 유교의 제사를 접목시킨 방식으로 의례를 치르고 있지만, 일반제사와는 다른 불교만의 특징적인 의례 체계와 의미를 갖추고 있다.
3) 천도재의 의미
불교 생사관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중유에 머물다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이 기간에 유족이 영가를 위해 49재를 올리고 공덕을 지으면 영가는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49재를 지낸 이후에도 같은 영가를 대상으로 천도재를 거듭 올리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천도재를 거듭할수록 영가의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윤회 속에서 거듭하는 수많은 삶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후의 영가에게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러주어 생전에 못 이룬 깨달음을 사후에라도 이룰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영가에 대한 지속적 정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일상의 삶 속에서 악업을 그치고 선업을 쌓도록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천도재를 함으로써 삼보에 공양을 올리고 대중에게 법식을 나누는 공덕을 실천하게 된다. 천도재의 재물은 삼보에 귀의하여 불보살님께 올리는 공양물인 동시에 교단 운영의 토대가 된다. 즉 음식물의 공양을 넘어 재를 통한 보시로 승화되어서 천도재를 행하는 일이 곧 삼보를 지키고 불교를 융성케 하는 신앙행위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고대인도에서는 출가 수행자에게 음식물을 공양하는 것을 큰 공덕이라 여겼으며, 현재도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는 이 의무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의례를 마친 뒤에 대중과 음식을 나누는 것은 그 공덕을 함께 나누다는 의미로 회향을 실천하는 일이다.
셋째, 모든 천도재는 해당영가만이 아니라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일체 고혼과 지옥중생을 함께 청하여 구제하는 공덕을 지닌다. 중유 단계에 있는 영가만이 아니라 육도윤회의 어느 지점에 놓인 모든 중생을 부처님의 자비로써 천도하는 것이다.
넷째, 천도재를 치름으로써 쌓게 되는 공덕은 결국 재를 주최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다. 영가와 더불어 살아 있는 유족도 재를 통해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재계를 지킴으로써 업장을 소멸하고 공덕을 짓게 되는데, 이것은 남을 위하여 행하는 일이 곧 자신을 위하는 공덕이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