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문화에서 벗어나기
-법정스님-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 본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연 나 자신답게 살아왔는지를 묻는다.
잘 산 한 해였노라고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많은 이웃들로부터 입은 은혜 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 보답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적잖은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때 그때 만나는 이웃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로 집약 될 수 있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했는지 아니면 건성으로 스치고 지나왔는지 반성한다.
지난 한 해 의 삶을 몇 점으로 매길 것인지 헤아린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날들을 두고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새롭 게 다지는 것만못하다.
새해부터는 내 나쁜 버릇을 고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시대의 고질병인 과속 문화로부터 벗어 나려고 한다.
성급하게 달여가려는 잘못된 버릇부터 고친다.
남보다 앞질러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흐름을 함께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말만을 내세우려고 한다.
언어의 겸손을 상실한 것 이다.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과는 좋은 만남을 갖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또한 과속에서 온 나쁜 습관이다.
슈퍼마켓의 계산대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짜증을 내는 것도 조급하고 성급한 과속 문화에서 온 병폐 다.
자기 차례를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그 안에서 시간의 향기를 누릴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현재 자신의 삶을 맑은 눈으로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수행자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한결같은 모습 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면 이와 같이 대답한다.
“나는 서 있을 때는 서 있고, 걸을 때는 걷고,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고, 음식을 먹을 때는 그저 먹는답니다.” “그건 우리도 하는데요.”라고 질문자가 대꾸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지요, 당신들은 앉아 있을 때는 벌써 서 있고, 서 있을 때는 벌써 걸어갑니다.
걸어갈 때는 이미 목적지에 가 있고요.” 오늘의 성급하고 조급해하는 과속 문화의 병폐를 드러낸 이야기다.
둘째, 내가지니고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는 일 에 보다 적극성을 띠려고 한다.
내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내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몸도 내 것이 아닌 데 그 밖의 것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셋째,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을 거듭거듭 다짐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웃으로부터 받은 따뜻함과 친절 을 내 안에 묵혀 둔다면 그 또한 빚이 될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도 내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성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서운함과 상처를 보 상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 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