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국스님─부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 까닭

부처님께서 지옥같은 인간 세상에 오신 까닭

-혜국스님-

이제 부처님께서 지옥 같은 이 세상에 오신 까닭 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우리 중생 모 두가 부처임을 일깨워 주고 그들에게 부처가 될 씨앗을 심어주려 오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곧 부처’임을 일깨워주고, ‘나 스스로 부처될 씨앗 을 심을 수 있도록’해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씨앗은 우리가 믿는 순간 땅에 심어지고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부처임을 확실히 믿는 순간 발 아하고 성장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꽃을 피우고 부처라는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곧 부처’임을 믿고 깨닫기가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믿고 깨닫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후다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믿고 깨닫는 씨앗을 심어야 비로소 깨닫는 일이 시작됩 니다.

우리가 느끼고 못 느끼고는 상관이 없습니 다.

‘내가 부처’임을 믿기 시작하면 부처의 경지로 나아가는 깨달음의 길에 이미 들어선 것입니다.

실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팔십 평생의 삶을 통 해 부처의 경지와 부처의 세계를 보여주시고 설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눈 있는 자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고, 귀있는 자로 하여금 들을 수 있게끔 하여, 부처가 되는 길을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거듭 강조하건데,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 은 중생의 눈을 뜨게 하여 ‘내가 부처’임을 깨우쳐 주기 위함입니다.

‘내가 부처’임을 확고히 믿고 알게 되면 자신이 매우 소중한 사람이요, 대단한 사람임을 알게 되 고,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이를 받아들일 그 릇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 님께서 일러주신 깨달음의 법을 알려고 하기 보다 는, 요행수를 바라고 업에 이끌리고 욕망의 노예 가 되어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릇이 없다고 좌 절하면 안 됩니다.

욕망에 빠졌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때일수록 스스로를 다잡아야 합니다.

‘내가 곧 부처라니? 그런 말이 있었구나.

그래, 오늘부터는 나도 부처다.

내 안의 그릇을 키워나가 자.

똑같은 불성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이 사실을 모르고 중생노릇을 하면 중생이 되고, 부처님의 행 을 하면 부처이다.’ 실로 불자들은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뜻을 깨닫 고, 이를 바탕으로 부처님의 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불교를 오래 접한 불자들 중에 스스로를 부처라고 생각하 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확신이 없습니다.

부처 라고 하니 부처라고 생각하고자 애 쓸 뿐입니다.

때로는 부처라고 생각하고자 애쓰는 것만 하여도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불자들이 ‘감히 내가 부처라니?’하며 두 손을 내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탓할 수 만은 없습니다.

부처님 당 시에도 그러했습니다.

[법화경]에 수록된 ‘궁자 (窮子)의 비유’를 음미해 보면 이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 한 남자가 어릴 때 집을 나와 다른 나라에서 수 십년을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였던 그는 먹고 입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러저리 떠돌 다가 태어난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한 도시에 정착하여 큰 부자로 살고 있었으며, 죽기 전에 아 들을 찾아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빈궁한 아들은 아버지가 사는 도시에 이르러 품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아버지가 사 는 집의 대문 밖에 이르렀습니다.

멀리서 집주인인 아버지를 보았는데, 큰 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있는 것이 예스럽 지 않았고, 위엄과 덕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가난 한 아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생각했습니다.

‘여기는 내가 품을 팔아 먹을 것을 구할 데가 못 된다.

차라리 가난한 마을로 가서 품을 팔아 먹고 살자.

여기 오래 있다가 잡히면 강제로 일을 시킬 지도 모른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을 한순간에 알아보고 사람들 로 하여금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아들은 자신을 잡아 해치려는 줄 알고 두려움에 떨다가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가는 간 신히 찾은 아들을 죽게 하겠다’고 생각한 아버지 는 방편으로 초라하게 꾸민 두 사람에게 “미행을 하다가 ‘품삯을 두 배로 주겠다’고 하면서 잘 달 래어 거름 치우는 사람으로 고용하라”고 지시했습 니다.

아들은 많은 품삯을 준다는 말에 기꺼이 거름 치 우는 일을 시작하였고, 더럽고 허름한 옷으로 갈 아입은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게으름 피우 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차츰 아들의 일하는 태도에 대해 인정을 해주었고, 마침내는 ‘지금부터 자네를 친아들처럼 대하겠다’ 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아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 도 여전히 스스로를 천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졌을 때, 아버 지는 아들에게 창고 관리를 맡겼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이 얼마인지, 금은보화는 어 느 창고에 얼마나 있는지, 주고 받을 돈의 거래는 어떻게 되는지를 소상히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매우 넓어져 스스로를 천 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고 남을 돕는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임종할 때가 되자, 친척 국왕 대신 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뒤 선언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50년 전에 잃어버린 나의 아들 입니다.

이 사람의 본래 이름은 아무개인데, 여기 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모든 재산은 다 그의 것입니다.

그리고 주고 받아야 할 각종 채권 채무도 내 아들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때 아들은 크게 기뻐하며 생각했습니다.

‘내 본래 바라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 많은 재산 이 진짜 아들임을 알게 됨과 동시에 저절로 굴러 들어 왔구나.

이제 이 재산으로 남을 돕는 큰 뜻 을 펼치리라.’

– 자신이 부잣집의 진짜 아들임을 아는 순간에 상속 된 엄청난 재산…

이 궁자(窮子), 가난한 아들처 럼 우리들 모두는 부처님의 진짜 아들입니다.

부처 님의 아들인 불자(佛子), 장차 부처가 될 불자입니 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리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셔도 믿지를 않습니다.

부처님 당신이 중생인 우 리와 남이 아닌 한 가족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셔도, 우리는 거름이나 치우는 것을 천직처럼 여기는 종 마냥 살아가기 때문에 궁자의 비유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가난한 아들이 ‘아, 저분이 내 진짜 아버지구나.

이 재산은 전부 내 것이구나’라고 깨닫듯.

우리 또한 ‘내가 바로 부처의 아들이요 앞으로 부처님 될 상속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 소 우리도 성불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월간 [법공양]5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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