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스님─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좋은 날

월호스님

-쌍계사 승가대 강사

생각이 바뀌면 지금 이대로 행복 바람 불고 추운 날씨가 거듭되어 봄이 다시

물러가는가 싶더니, 날씨가 풀리면서 비가 내린다.

봄비는 어쩐지 포근하다.

촉촉한 봄비를 맞으며 동백꽃이 살아난다.

한없이 움츠려 꼭꼭 수줍게 여미었던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져 새파란 꽃잎에 새빨간 꽃을 피어낸다.

저절로 시선이 끌린다.

바뀌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도시에서의 비는 어쩐지 추적추적하다.

시멘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왠지 삭막하다.

하지만 산사에서의 비는 정감이 있다.

나뭇잎과 흙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낙숫물 소리와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다양한 운곡을 만들어내어

한 편의 음악을 듣는 듯 황홀하다.

게다가 이번처럼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는

더욱 고맙다.

죽죽 쏟아져 봄 가뭄을 완전히

해갈시켜주기만 바랄 뿐이다.

화개동에 가장 경치가 좋은 때는 비가 개인 때이다.

운치 있는 비가 마음껏 쏟아져 초목을

골고루 적시고 물러가면 하얀 안개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산 아래에서 산허리를 타고 서서히 올라가며

은은한 자태를 연출해 낸다.

구름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맑은 날씨만 연속된다면 비온 후 갠 날씨의

쾌청함을 느낄 수 없다.

흐리고 비 내린 후에야

갠 날씨의 쾌청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매일 맑은 날만 있으면 사막이 될 것이다.

인생살이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들은 흔히 좋은 날만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면 인생이 무미건조하고

황량한 사막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으며,

때로는 비도 쏟아지고 해야 아름다운 자연을

연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날씨가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만,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는 본래 없다.

맑은 날과 흐린 날,

비오는 날과 바람 부는 날이 있을 뿐이다.

피크닉 가는 이에게는 맑은 날이 좋은 날이다.

하지만 말라 비틀어져 가는 작물을 지켜보는

농부에게는 비오는 날이 좋은 날이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이에게는

흐린 날이 좋은 날이 될 것이다.

두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한 아들은 나막신을 팔았고,

한 아들은 짚신을 팔았다.

날씨가 맑으면

나막신은 안 팔리고, 짚신이 잘 팔린다.

이와 반대로 비가 내리면 짚신은 안 팔리고

나막신이 잘 팔린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걱정이 쉴 날이 없었다.

맑은 날에는 나막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고, 비오는 날에는 짚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한 생각 바꾸니,

즐거운 세상이 열렸다.

맑은 날은 짚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기뻐했고, 비 오는 날은

나막신 파는 아들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던 것이다.

지금 이대로의 상황을 전혀 바꾸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부자가 되거나, 좀 더 건강해지거나,

좀 더 명예로워지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좀 더 부자가 되거나 건강해지거나

명예로워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진짜 바뀌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아닐까? 운문스님이 대중에게 일렀다.

“15일 이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의 일을 한마디 일러보라.” 그리고는 스스로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니라.(日日好日,일일호일)” 보름달만 좋은 것이 아니다.

초승달도 아름답다.

초승달은 초승달대로 보름달은 보름달대로

운치가 있다.

어느 달이 좋은가는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여질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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