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고 듣는가?
-혜국스님-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운전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뚱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에서 흔히 말하는 영혼, 곧 어떠한 에너지가 이 몸을 끌고 다니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빠져 나가게 되면, 이 몸은 썩기 시작하고 몇 시간만 지나면 냄새를 풍깁니다.
과연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무엇인가? 이 주인공을 찾는 것이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요.
마음 길들이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여기에서 이 몸과 주인공, 세상에서 말하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 이 몸뚱이는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어머니 태속에서 왔습니다.
그럼 어머니 태속에 있었던 몸은 무엇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까?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약 2억 마리의 정자 중에서 단 한 생명만이 난자의 인도를 받이 자궁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태속에 들어간 다음 어머니가 먹는 음식의 기운으로 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밥 .
국 .
반찬 .
과일 등 흙에서 나오는 음식물로 살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가 먹는 물로 눈물 .
콧물 등 몸 속에 수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흙기운과 물기운, 이 두가지를 가지고 형상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섭취한 칼로리로 따뜻한 체온을 만드는데, 이 칼로리가 바로 태양열에너지입니다.
그리고 태속에서 어머니호흡과 함께 하다가 탯줄을 딱 끊으면 코로 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그 기운들을 빌려온 곳으로 다시 돌려 줍니다.
몸뚱이는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눈물 .
콧물 등은 물로 돌아가고, 에너지는 불기운으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호흡의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갑니다.
결국은 죽는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육체는 온 곳으로 돌아가는데, 이 몸을 만드는 주인공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 몸을 만드는 주인공은 무엇이며, 그 주인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참선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며, 자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을 해결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자기가 만들어 놓은 몸뚱이는 자기인 줄 알고 살면서 만든 주인을 배신합니다.
참된 자기를 자기라고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서, 보는 놈이 누구이며 듣는 놈이 누구인줄 모르면서 감정이 하자는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13세에 일타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나는 절에서 학교를 나녔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글 쓰는 동아리에 갔다가 한아가씨를 만났습니다.
나는 첫눈에 반하였고, 그 아가씨를 보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당시 서울 정법사에 있으면서 학교에 다녔는데, 저녁에 돌아와 예불을 올리며 ‘지심귀명례’ 를 하여도 한 눈에는 아가씨가 싱숭생숭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손목도 잡아본 것이 아니요 데이트를 해 본 것도 아닌데, 계속 아가씨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보기만 하였는데 이렇게 떨쳐버리지 못하다니!’ 그 길로 해인사로 내려가 성철스님을 뵈었을 때, 자초지종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속에라도 들어와 보신듯 묻는 것이었습니다.
“너 가시나 생겼제?” “예, 스님.” “이 망할 놈! 맞아 죽어도 시원찮을 놈! 학교 다니지 말고 참선 하라니까 그 쓰잘 데 없는데 가가지고…
,” 그리고는 주창자를 드시더니 소리쳤습니다.
“이거 보이나?” 나는 끓어앉아 달달 떨면서 답했습니다.
“예, 보입니다.” “뭐로 보노?” “눈으로요.” 성철스님께서 불을 탁 끄고 물었습니다.
“보이나?” “아니요.” “안 보인다면 눈은 어디 갔나?” “눈은 있습니다.” “그런데 와 안 보이노?” “깜깜하니까 안 보이는 것 아닙니까?” “이 놈아, 고양이나 부엉이는 깜깜할수록 잘 보이는데, 너는 고양이 눈깔만도 못하나? 너는 누가 보는지를 모르고 있다.
무엇이 보노?” “……” “눈으로 보는 것이라면 금방 죽은 사람은 눈알이 없나? 귀로 듣는 것이라면 곧 죽은 사람은 귀가 없나? 보고 듣을 줄 아는 사람이 따로 있단 말이다.
그것도 모르는 놈이 엉뚱한 학교를 다녀? 하루 5천배씩 10만배를 해라.” 그때 나는 해인사 장경각에서 20일 만에 10만배를 하고 손가락을 태우며 맹세했습니다.
‘보는 놈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듣는 놈이 누구인지를 모르면서 엉뚱한 짓을 하다니! 내가 나를 모르면서 허수아비가 하자는 대로, 감정이 하자는 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인간인가? 다시는 엉뚱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지금 생도 다음 생도 또 그 다음생도, 오로지 스님의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부터 나는 흔들림 없이 살았고, 지금도 그 원에 털끝만큼의 흔들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