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스님─살리고 죽이는 말 한마디

◐살리고 죽이는 말 한마디◐ -제주도 약천사 회주

혜인스님

– 말조심 !!! 우리가 인간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은 수없이 많지만,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몸조심 입니다.

이 몸의 손 하나 들고 발 하나 놓는 것이 죄를 짓는 일 아니면 복을 짓는 일이기 때문에 몸조심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조심 입니다..

입으로 내뱉는 한마디의 말이 복을 짓는 말 아니면 죄를 짓는 말이기 때문에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생각조심 입니다.

마음에서 일으키는 한 생각이 복을 짓는 생각이 아니면 죄를 짓는 생각이요, 머금는 한 생각에 따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연들이 바뀌게 되기 때문에 생각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말과 생각.

곧 신.

구.

의 삼업을 조심하면 삶의 장애는 스스로 사라지고 복덕이 나날이 쌓이게 됩니다.

반대로 이 셋을 조심하지 않으면 많은 허물을 짓게 되고, 그 죄업 때문에 받는 고통도 한없이 커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갖가지 계율을 제정하시어 우리의 몸과 말과 생각을 잘 제어하도록 하신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이 셋 가운데 오늘날의 사람들이 심히 가볍게 여기는 ‘말조심’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불교의 근본 4계가운데 불망어계부터 봅시다.

불망어계의 ‘망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거짓말’이 됩니다.

거짓말이 무엇입니까? 거짓말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꾸며서 하는 말입니다.

곧 거짓말은 진실 되지 않는 마음.

헛되고 거짓으로 가득찬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속인 다음 다른 사람을 속이게 됩니다.

누구든지 남을 속일뿐 아니라 스스로의 진실까지 저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참된 삶을 이룰 수가 없고 진실한 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삶과 도는 진실을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거짓말은 수행의 큰 장애가 될 뿐 아니라, 거짓말을 자주 하다보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사소한 거짓말을 예사로 하다보면 큰 거짓말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게 되고, 큰 거짓말에 능해지면 지옥의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망어를 자주 내뱉게 되면 이롭지 않은 여러 가지 과보를 받게 되는데,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보를 밝혀 놓았습니다.

“선신이 멀리 떠나고 나쁜 신이 접근한다.

아무리 진실을 말하여도 남이 믿어주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항상 비방을 당하고 추악한 소리를 듣는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해도 따르는 이가 없다.

항상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목숨이 다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지옥에서 나와 사람이 되어도 항상 비방을 당한다.” 망어의 결과가 이러하거늘 ‘나’의 불행과 고립을 초래하는 망어를 함부로 내뱉어서야 되겠습니까?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주위에 유독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을 꺼낼 때면 하는 말의 반만 접고 들어주어야 할지.

십 분의 일만 믿어야 할지 크게 망설여집니다.

과연 이 불신이 한 두 번 의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일 까요? 아닙니다.

거짓말이 입에 붙어 횟수를 거듭하게 될 때 그 사람의 말을 불신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 사람 자체를 불신하게 됩니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의 인격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의 마음에서 그의 인격이 사라지는 순간 마침내 그는 믿지 못할 인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의 습관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농담이라 하여 거짓말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농담으로 한두 번 거짓말하는 재미를 즐기다보면 나중에는 진짜 거짓말을 예사로 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거짓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기이한 말이나, 욕설, 비방, 이간질하는 말도 한번 두 번 무심코 하는 것을 방치하다보면 완전히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뱉게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불경 속에 기록된 아득한 옛날이야기 한편 소개하겠습니다.

과거 칠불중 한 분인 가섭불 당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대중이 살고 있는 사찰에서 아라한과를 성취한 노비구 한 분이 불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워낙 높았던지라 음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노스님은 목청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경을 읽었습니다.

그때 버릇없이 말을 함부로 하던 사미승이 그 소리를 듣고 툭 내뱉었습니다.

“흥 경을 읽는 소리가 개짓는 소리 같구먼.

개소리를 낼 바에야 경을 읽지나 말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내뱉은 사미승의 말을 들었는지.

노스님은 독경을 마치고 사미를 불렀습니다.

“큰일났다.

사미야 .네가 조금 전에 지은 구업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얻게 되었다.

빨리 참회하여 지옥고를 면하도록 하여라.” “예?” “악담의 죄가 가볍지 않고 신성한 독경의식을 비방한 죄가 더욱 크다.

더욱이 너는 아라한이 경을 읽는 것을 비방하였으므로 죽으면 곧바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된다.

어서 참회하여라” 사미승의 앞일을 환히 내다볼 수 있는 노비구의 충고에 동자는 참회를 하여 겨우 지옥행을 면하였으나, 아라한을 비방한 과보로 다음 생에 흰 개로 태어나 대상인을 따라다녔습니다.

어느날 저녁.

다음날, 개가 고기를 훔쳐먹은 것을 알아차린 장사꾼들은 개를 죽도록 두들겨 패서 구렁텅이게 던져버렸습니다.

죽은목숨도 아니고 산목숨도 아닌 채 구렁텅이에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마침 사리불존자가 지나가다 보고는 걸식을 해서 얻은 밥을 주고 법문도 해주었습니다.

“네가 악한 말 한마디로 개의 몸을 받았으니, 내생에는 곧은 말만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럽고 착한 말만 쓰도록 하여라.’ 개는 그 법문을 듣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이 균제인데,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7세 때 사리불존자를 찾아가 상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공부하여 아라한과를 증득 하였으나, 사리불 존자의 은혜를 갚기 위해 평생 비구계를 받지 않고 사미로 남아 존자를 따라 다니며 시봉 하였습니다.

말이란 한번 내뱉고 나면 다시 주워담을 수가 없고, 그 말이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이면 ‘나’는 수십배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사미승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참회를 한들 그 업을 완전히 면할 수가 없습니다.

망어의 결과가 이러하거늘, ‘나’의 불행과 고립을 초래하는 망어를 함부로 내뱉어서야 되겠습니까? 모름지기 ‘말조심.

망어조심’ 을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망어에는 크게 네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망언입니다.

실제로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

바른 법을 그릇된 법이라 하고 그릇된 법을 바른 법이라 고 설법 하는등.

마음의 진실을 어겨서 하는 말은 다 망언이 됩니다.

흔히 이 망언을 거짓말 또는 망어라고도 합니다.

둘째는 기어입니다.

비단결처럼 매끄럽게 발라 붙이는 말이라 하여 ‘비단 기’를 쓴 것입니다.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는 말뿐만이 아니라 뜻도 없고 이익도 없는 말.

지키지 않는 정치적 공약이나 논란 등은 모두 기어에 속합니다.

셋째는 양설 입니다.

혀가 하나뿐인 인간이 마치 두 혀를 가진 듯.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함으로써 둘 사이를 이간시키고 서로를 다투게 만드는 말입니다.

넷째는 악구입니다.

추악한 말로써 남을 욕하고 분노케 하며, 저주하거나 희롱하는 말로써 상대로 하여금 견디기 어렵게 하는 등의 악담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상과 같이 망언.

기어.

양설.

악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모두가 삼독심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거나, 꾸민 말을 하지 않고 진실 되게 말하거나, 이간질을 하지 않고 화목하게 말하거나, 악담을 하지 않고 고운 말을 쓰게 되면, 능히 삼독을 잠재우고 깨달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망어 죄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에 따라 소망어.

대망어.

여망어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소망어는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알게 된 것을 사실과 반대되게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집안에서는 이러한 소망어를 범하게 되면 바일제죄를 적용시켜 처벌을 합니다.

바일제죄는 참회를 함으로써 그 죄가 소멸되는 가벼운 죄입니다.

그러나 소망어를 범하고서도 참회를 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설하셨습니다.

대망어는 큰 거짓말입니다.

많은 사람의 공경과 공양을 받기 위해 ‘나는 도를 깨달았다’.

‘나는 불 보살의 후신이다’.

‘나는 신통력을 얻었다’는 등 성인을 자처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대 망어를 범하면 불교 집안에서는 바라이죄를 적용하여 영원히 추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삿된 법을 말하거나, 남의 가르침을 자신의 독창적인 가르침인양 말하거나 하는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도둑의 두목과 같은자’ 라고 하셨습니다.

적어도 불자라면 진리와 도에 관한 한 절대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이제 여망어에 대해 살펴봅시다.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할 대망어는 제외하더라도, 한평생 살면서 거짓말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주 가벼운 거짓말.

불가피한 거짓말.

이를테면 상대방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속이지 않겠다면 공포심이 유난히 많은 불치병 환자에게 그 증상을 소상히 일러준다면, 그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나 가족들은 약간의 거짓말로 환자를 안심시키고 자신감속에서 투병에 임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경우의 거짓말을 어찌 죄가 된다고 하겠습니까? 또 갑이라는 사람이 을에 대한 험담을 하였을 경우, 만일 을을 찾아가 갑이 한 험담을 그대로 전달한다면 갑과 을의 사이에는 불화가 생기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사실과 다를지라도 부득이 두 사람을 화합시키는 쪽으로 거짓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바른 말을 함으로써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이나 수많은 생명이 살상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 처한다며 오히려 반드시 거짓말을 하여 저들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의 거짓말이 여망어.

곧 여유 있는 망어입니다.

방편으로 거짓말을 살짝 하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정녕 우리 불자들은 불망어계를 통하여 살리고 깨우치는 불법의 참뜻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정어(正語)속에 살면서 인연 있는 이들에게 정어를 베풀어 불법을 닦을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불망어계는 ‘거짓없이 진실 되게 살면서 중생들에게 정법을 심어 주라’ 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디 불자의 언어는 정법에 입각한 정어.

곧 진실한 언어임을 잊지 말기를 당부 드리면서 정법에 입각한 정어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 안내는 그 마음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이 게송은 오대산 문수동자가 당나라의 무착 선사를 깨우쳐주기 위해 설한 게송으로, 나의 은사이신 일타 큰스님께서 뜻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 게송을 접하면 어떠한 느낌을 받습니까?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과연 ‘나’는 가장가까이에 있는 가족.

친척.

동료들에게 어떠한 공양을 올리고 있는지를? 항상은 아니더라도 찌푸리지 않는 해맑은 공양을 올리고 있습니까? 짜증 섞이지 않은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밝게 해줍니까? 성 안내는 얼굴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 어떻게 보면 아주 쉽게 지킬 수 있을 듯이 느껴지지만 실상은 실천하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미소짓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차츰 마음의 티끌이 제거되어 마침내는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정녕 우리불자들은 팔정도나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육바라밀을 잘 실천하지 못할 지라도, 서로를 살리고 살아나게 하는 말만은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살리는 말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존중해 주는말.

상대의 좋은 점을 자꾸자꾸 일깨워 주고 기를 살려주는 말.

화합을 시키고 진실을 나누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해주는 것이 보시요 지계요 인욕이요 정진이요 선정이요 반야라는 사실을.

서로를 살리는 말을 하는 것.

이것은 그냥 보람되고 착한 정도의 일이 아니라, 입을 통한 육 바라밀의 성취입니다.

정녕 잘 살고자 한다면,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상대를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상대의 실수를 감싸주고 장점을 북돋우어 주는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강원도 영월의 한 집안에서 있었던 미담을 예로 들고자 합니다.

새 며느리가 시댁에 들어와 첫 밥을 짓다가 밥을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친정어머니로부터 ‘첫 밥이 중요하다.

첫 밥을 조심해야 된다’는 당부의 말씀을 듣고, 신경을 지나치게 쓴 것이 도리어 잘못된 것입니다.

며느리는 크게 당황하였으나, 진지 드실 시간이 다 되어 밥을 다시 할 수도 없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탄 내음 물씬 나는 밥을 시아버지께 올렸습니다.

그리고 불호령이 떨어질 순간만을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꽤 시간이 지나도록 안방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고, 잠시 후 밥상을 물리는데 시아버지의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는 너무나 송구스러워 그 자리에 엎드려 사죄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첫 진지부터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시아버지는 며느리보다 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의외의 답변을 하였습니다.

“아가.

네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러느냐? 나는 너에게 사과를 하려던 참이었다.” “네?” “내가 지난 장날 솥을 사러 갔었는데, 두꺼운 솥값이 비싸길래 얇은 솥을 골랐지, 그랬더니 대뜸 솥장수가 돈 몇 푼 아끼지 말고 두꺼운 솥을 사가지고 가라는 거야.

그래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얇은 솥을 샀더니, 글쎄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치는 거야.

‘거, 가서 밥을 해보소.

밥 잘 탈거요.’ 별놈의 솥장수 다 봤다 싶어 대꾸도 않고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구나.

아가.

솥을 잘못 사온 내가 탄 밥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마는 귀하게 자란 네가 이 집에 시집을 와서 첫날부터 탄 밥을 먹게 되었으니 진실로 면목이 없구나.” 그때 곁에서 듣고 있던 시어머니가 대화에 끼어 들었습니다.

“여보, 당치도 않아요, 그것은 당신 잘못도 며느리잘못도 아닙니다.

내가 시집을 왔을 때는 시어머니가 첫 밥을 해 주셨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이 첫 밥만큼은 며느리에게 다 맡겨놓아서는 안되는데, 안심하고 늦잠을 자는 통에 밥이 타 버렸어요.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어요.” 이번에는 곁에 있던 아들이 급히 말을 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누룽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머니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 이 사람에게 누룽지를 먹고 싶다고 하였더니, 이 사람이 누룽지를 많이 만들려고 하다가 밥을 과하게 태웠나봅니다.

바쁜 아침부터, 그것도 첫 밥을 하는데 쓸데없는 부탁을 한 저의 허물이 큽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세분이 자신의 실수를 서로 감싸주는 말을 들으며 며느리는 말할 수 없는 화목함을 느꼈고, 자신이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날부터 며느리는 시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남편을 친오라버니처럼 정성껏 받들어, 강원도 영월 땅에서 화목하기로 소문난 가정을 일구었습니다.

꾸중하고 화를 낼 만한 일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감싸주는 한마디를 건넨다면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은 저절로 잘못을 깨달을 뿐 아니라, 먼 훗날까지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게 됩니다.

서로를 감싸주고 살리는 말 한마디!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생활화요 해탈을 이루는 바라밀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드러운 말 한마디.

감싸주는 말 한마디로 일체의 시비를 끊어버리면 그곳이 바로 불국토 입니다.그리고 가까운 사람과의 화목은 우리가 하는 일을 성취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왜 그러한가? 부드러운 그 말이 모든 것을 살려내는 자비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자비심을 품고 살리고 살아나게 하는 말을 하는데, 어찌 일이 잘 되지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이제 이 순간부터 그릇된 말.

시시비비를 가리는 말일랑은 그만 닫아버리고 서로를 살리는 말.

화목의 말을 합시다.

나아가 정법에 입각한 정어로써 뭇 생명 있는 자들을 일깨워 원만.

성취.

진실이 가득한 자타일시성불도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축원 드리면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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