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스님─부처님을 닮은 불자

부처님을 닮은 불자 -성수큰스님- 어떤 이가 참된 불자인가? 요즘 스님이나 속인이나 입으로는 ‘부처님’을

많이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실제에서 부처님과 얼마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일까요? 부처님과 가까 워지려면 말로써 ‘부처’를 논할 것이 아니라, 행동을 잘 해야 하고 삶의 태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적어도 득이 있고 복된 말을 해야 하고, 걸음걸이는 무게 있게 내디뎌야 하며, 앉는 자세는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하여 가슴을 쫙 펴고 앉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대범하고 통 큰 사람이 되어 부처님과의 촌수가 가까워지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행(信行)의 기초요 도리입니다.

만약 스스로가 참된 불자라고 자부 한다면 하루 24 시간 중 단 10분이라도 부처님 흉내를 내고 있어야 합니다.

그 잘난 중생유세 그만 두고, ‘나는 부처다’ 하며 집에서 부처님처럼 앉아 부처님의 흉내를 내는 어머니를 본 어린아이는 틀림없이 물을 것입니다.

“어머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내 지금 부처님 흉내낸다.

” 아이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면 아이도 어머니를 따라 가슴을 쭉 펴고 가부좌의 자세로 앉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가족은 저절로 부처님을 닮아 가는 참된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불자라면, 부처님의 아들딸이라면, 아버지 되시는 석가모니께서 어떻게 하여 부처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가르쳤는 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절에 와서 꾸뻑꾸뻑 절들은 잘도 합니다.

우리 부처님! 과연 어떠한 분이신지요? 지금부터 45년전의 일입니다.

내 나이 41세에 조계사 주지를 맡았을 때, ‘부처님 오신 날’ 경축 법요식을 하게 되었는데,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라 하여 이렇게 첫마디를 꺼냈습니다.

“오늘 태어난 싯달타 태자는 네 가지 죄를 지은 죄인 입니다.

”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로 제정된 첫 해 인지라, 조계사 생긴 이래 처음으로 만 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들었는데, 법상에서 부처님 욕부터 하였으니 좌중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하였습니다.

이해를 못한 신도 들은 멍하니 앉아 있고, 스님네들도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고 합니다.

나는 조금 있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네 가지 죄가 무엇인가? 첫째는 카필라국의 태자로 태어나 나라 일을 안 본 역적죄요, 둘째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출가하였으니 불효죄요, 셋째는 야쇼 다라와 혼인하여 3년도 살지 않고 야반도주 하였으니 마누라 배신죄요, 넷째는 아들 라후라를 낳아 기르지 않고 떠났으니 자식 버린 죄입니다.

” 다시 좌중은 술렁거렸고, 잠깐의 침묵 후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 지를 짓고 야반도주를 한 분인데도, 그 분은 부처가 된 날로부터 오늘날까지 3천년을 한결 같이 존경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자라면 부처님께서 존경받게 된 그 재주를 물어보고 배워서 알고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천년동안 한결같이 존경받는 부처님의 재주! 우리가 참된 불자라면 이것을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닦아야 합니다.

만약 알지 못한다면 지금 이라도 부처님일대기를 읽고 느껴야 합니다.

먼저 공부 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서 존경받는 까닭을 배우고 익혀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참된 불자가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는 종교(宗敎)입니다.

그럼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의 종(宗)은 ‘마루 종’입니다.

‘가장 높다’, ‘무한대다’, ‘진리’요 ‘도’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敎)는 ‘배울 교’와 ‘가르칠 교’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가장 높고 으뜸 되는 진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럼 가장 높고 으뜸가는 진리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옳고 바르게 사는 것이 가장 높고 으뜸가는 진리요,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자연 ‘깨달은 부처님의 불교는 옳고 바르게 사는 길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여 마침내는 깨달음의 삶 자체가 되게끔 하는 종교입니다.

믿을 신(信)!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과 같은 언어, 행동, 앉음새, 걸음걸이, 원한한 성품, 깊은 자비에 젖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처럼 행동하며 부처님의 마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처럼 덕이 있고 복이 있는 말을 하면서, 부처님처럼 바르게 앉아 차별 없는 마음과 한량없는 자비로 자신과 남을 돌아보며 살아야 합니다.

네 가지 죄를 짓고 야반도주를 한 싯달타 태자가 3천년 을 한결같이 존경받게 된 그 재주가 무엇인지를 묻고 배워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불자의 길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 니다.

-월간 [법공양]/2007.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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