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바라밀의 실천
-혜거스님-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사바세계의 중생이 꼭 익혀야 할 인욕바라밀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하겠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소승이 아닌 대승불교로 가려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육바라밀 중 제1인 보시바라밀, 곧 집착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먼저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욕바라밀이 나옵니다.
여기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남과 내가 동시에 성불하는 길인 육바라밀의 첫 번째로 보시 가 나왔으면 다음으로 제2의 덕목인 지계가 나오 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지계 (持戒)를 뛰어넘어 제3의 덕목인 인욕바라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였는가? 보시와 인욕! 이 두 가지만 잘 이해하면 바로 성불(成佛)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보시바라밀을 완성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베풀어줘야 하고, 심지어는 내 몸뚱아리도 다줘야 합니다.
내 몸뚱아리가 유용 하게 쓰이든 말든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흔쾌히 주는 것, 이 정도가 되면 성불합니다.
그러므로 ‘보시를 잘 하면 바로 성불’, 곧 보시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보시바라밀에 대해서는 많은 법문을 들었을 것 이므로 이쯤하고, 인욕바라밀에 대해 보다 집중적 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을 통하여 인욕바라밀을 설하 시면서, 과거 인욕선인 시절에 가리왕에게 몸이 갈기 갈기 베이고 끊겨 나가면서도 화를 내지 않 은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깐 살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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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남인도 후단나국의 산중에서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그 나라의 가리왕(歌利王)이 후궁들과 함께 꽃구경을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은 다음 노곤해진 가리왕은 잠이 들었고, 후궁들은 꽃을 따라 배회하다가 고 요히 선정에 잠겨 있는 인욕선인을 발견하고 법문 을 청해 들었습니다.
때마침 잠에서 깨어난 왕은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화를 내며 주변의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었습 니다.
그리고 후궁들이 한 수행자에게 지극한 예 를 다하며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교 만한 왕의 분노가 폭발하였습니다.
가리왕은 성난 음성으로 선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엇하고 있느냐?” “저는 인욕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나의 후궁들을 모아놓고 떠벌리는 것을 보니 인욕 이 아니라 탐욕을 닦고 있는 것이겠지.
내가 너의 인욕을 시험하리라.
얼마나 잘 참는지 보자.” 가리왕은 칼을 뽑아 선인의 귀를 잘랐습니다.
그러 나 선인은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억지로 참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구나.
이놈! 어디 한 번 해보자.’ 더욱 노한 왕은 선인의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코를 베어버렸습니다.
“이놈아, 이렇게 해도 아프지 않느냐?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느냐?” “내가 본래 있지 않고 남 또한 없는데, 무엇이 아프고 누구를 원망하겠소?” 그때 하늘에서 사천왕들이 모래와 돌들을 던졌고, 그토록 못된 가리왕도 하늘의 노여움이 두려워 무릎을 꿇고 참회하였습니다.
“선인이시여, 이제까지 한 일을 모두 참회합니다.
선인께서는 자비로써 저의 참회를 받아들여 주소서.” “왕이시여, 나에게는 탐욕도 노여움도 없습니다.” “선인이시여, 그 마음을 저희가 어떻게 알 수 있 습니까?” “만일 나의 마음이 참되고 거짓이 없다면 나의 잘 린 손발과 귀와 코가 본래대로 붙을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든 것은 제자리에 붙었 습니다.
이에 왕은 더욱 깊이 참회하였고, 후궁들은 더욱 깊이 귀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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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왜 이와 같은 인욕수행을 하셨는가? 스스로 과거를 회상해 보았더니, 여러 가지 수행법 중에서 참는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참는 것 하나만은 내가 틀림없이 지킬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서는 그때부터 참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러다가 가리왕을 만났고, 가리왕이 귀와 코, 팔다리를 다 잘랐는데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 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욕바라밀이 성취된 것 입니다.
인욕과 분노! 사람들은 ‘참아야지’ 합니다.
하지만 화가 치솟습니다.
내기 싫어하는 그 화가 많이 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자존심을 건드릴 때 화가 나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가 치솟습니다.
곧 아상(我相)을 건드리면 화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만약 자존심을 건드려도 화를 안 내고, 자기를 알 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게 되면 인욕이 이루어 지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 등의 수행 중에서 가장 자신이 있는 인욕행을 실천하셨듯이, 우리도 여러 가지 공부 방법 중에서 ‘이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확신이 분명히 서면 그것을 닦아 익 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남 따라 하지 말고, 자신 있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흔히 불교수행이라 하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 뭣고?’ 등의 화두를 참구하여 그 답이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인욕바라밀을 성취해 보는 것도 부처님을 따라 가는 참으로 멋진 길입니 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나를 모함하거나 곤경에 빠뜨려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인욕바라밀을 성취한 것입니다.
인욕바라밀은 멀리 있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습니다.
또 바로 곁에서부터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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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불교계의 대강사로 유명한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후학의 양성에만 애를 쓰셨던 그 스님은 어쩌다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살인자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누명을 쓰고 잡혀갔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예, 제가 죽였습니다” 라고 하여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이 찾아 와서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바로 말을 해버리면 그 사람이 감옥에 가야하잖 아.” 이 정도 되면 어떻습니까? 참으로 거룩한 어른이지 않습니까? 그때만하더라도 일정 말기의 대처승 시절 이어서 그 스님께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날마다 면회를 왔고, 올 때마다 상좌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었습니다.
참으로 아내도 상좌도 고맙기 그지없었는데, 출소를 하고서야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남을 대신하여 살인죄를 덮어쓰고 감옥까지 갈만큼 너그러웠던 그 분이었지만 이 일만은 참을 수가 없 었습니다.
상좌에게 아내를 빼앗긴데다, 믿었던 두 사람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치미는 화를 억누르기도 무수히 해 보았지만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내와 상좌는 트럭을 하나 빌려 짐을 모두 싣고 떠나게 되었는데,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스님은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 뒤 스님은 수덕사에 계신 고봉큰스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고, 이야기를 다 들은 고봉 스님께서는 큰소리로 “악!” 하고 할(喝)을 하셨습니 다.
그 순간 눈 먼 스님은 깜짝 놀라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눈도 다시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대중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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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사스님은 살인한 사람을 아는데도 그 사람이 감옥갈 것을 걱정하여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신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공부가 얼마나 깊었으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깊이 공부가 되었 는데도 아내를 빼앗기자 배신감 속에서 눈이 멀 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는다는 것이 이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실로 이 사바세계에 살면서 인욕 하나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바로 나의 공부가 성취될 뿐 아니라 옆 사람들까지도 모두 편안하게 만듭니다.
자리이타의 삶을 이루는 인욕은 참으로 좋은 공부방법입니다.
지금부터 이 참는 것 하나만이라도 잘 해보십시오.
주위에서 아무리 쳐다보지 않을지라도 화내지 말 것.
옆 사람은 잘해주고 나한테만 서운하게 해도 화내지 말 것.
이것만 잘 되면 사상(四相)이 생겨나지 않게 됩니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 (壽子相)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금강경을 통하여 부처님께서 인욕선인 때의 일을 이 야기하신 까닭은 우리들로 하여금, “맞아, 나도 인욕하나는 잘 해 보겠다”는 발심을 하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인욕심을 발하고 인욕바라밀을 성취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부처님의 참된 아들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인욕바라밀을 성취하려면 몇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인욕바라밀을 닦는 사람은 인욕행을 성취하려 면 먼저 모든 사람의 과오(過誤)를 보지 말아야 합 니다.
마음이 평온하다가도 상대방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화를 내게 되기 때문에 과오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위선을 벗고 솔직해져야 합니다.
“어제는 자네 때문에 기분이 나빴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더구먼” 이라든지,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욕심이 났는지 몰라.
미안하네.
지금은 욕심이 없어 졌네.” 이렇게 위선을 벗고 솔직해져야 하고, 솔직 한 자기반성이 뒤따라야 인욕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고 내 몸을 손상시 키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욕바 라밀이 성취됩니다.
화내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 이면서 상대를 미워하지 말라.
나를 욕한 사람을 오 히려 존경하라.
나를 때리는 사람을 더 많이 존경하 라.
이와 같이 행할 수 있는 자는 능히 인욕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다.
인욕바라밀이 성취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은 저절로 없어지게 되고, 사상(四相)이 없어지면 해탈 을 얻게 됩니다.
곧 인욕을 수행하다보면 일체상이 여의어지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라는 진짜 큰 무기! 이것이 언제 얻어지는가? 사상이 없어지고 나면 지혜가 그냥 열리는 것입니다.
만약 사상을 그대로 놓아둔 채 지혜를 얻고자 한다 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욕 이 두 글자를 몸에 배게 하고 실 천으로 옮겨, 참다운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야 합니다.
세상 시끄러운 까닭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이기려는 마음이나 이기 적인 마음이 딱 끊어진 사람만 있다면 서울 시내는 내일 아침부터 먼지도 안 일어납니다.
우리 불자들 만이라도 정말로 시비가 끊어지고 승부욕이 끊어져 버리면, 사회는 물론이요 이 나라 전체가 청정해집 니다.
남 쳐다보지 말고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인욕 을 확실하게 행할 것을 당부 드립니다.
거듭 강조하건데,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발심(發 心)을 잘 해야 합니다.
계기를 만날 때마다 발심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성공합니다.
인연법에 의해 생겨나고 유지되고 멸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고 발심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앞에서도 향상심을 품고 잘 참으며 수행하면 부처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수행의 시작으로 삼으십시오.
현실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억겁을 가도 공부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향상심을 품고 경전읽기, 선행하기, 반조하기를 계속 하면서 인욕행을 잘 실천한다면 위없는 깨달 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잘 유념하시어, 향상하고 또 향상하여 마침내는 부처를 이루는 멋진 불자가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월간 [법공양]8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