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스님─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법장스님

세여청산하자시

춘광무처불개화

방인약문성우사

석녀신중에 겁외가드라 나무아미타불.

안녕하셨어요?

제가 조금 전 읊은 게송은 우리나라 불교가 다 꺼져갈 무렵에 혜연처럼 나타나 한국불교를 중흥하고 선풍을 다시 진작한 경허 스님의 선시입니다.

세여청산하자시 (世與靑山何者是) 세상과 청산이 내 것이냐 네 것이냐? 누구 것이냐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등기있는 집 하나는 내 집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정말로 보고 즐기고 기뻐하는 것은 전부 남의 것이에요.

그런데 저 합천 해인사 가서 경치 좋다하고, 설악산 신흥사 가서 정말 물 좋다고 하면 전부 여러분 것이에요.

보고 즐기는 사람 것입니다.

춘광무처불개화 (春光無處不開花) 봄빛이 비추니 꽃 아니피는 곳 없다.

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내 마음속으로 내 것이라 생각하면 내 것이고 남의 것이라 생각하면 남의 것이다.

생김새는 같은데 쓰이는데 따라 다르더라.

본래는 다 같지만 쓰는 것에 따라서 각각 다르더라.

칼은 본래 칼인데 과일을 깍는데 쓰면 과도라 하고, 식당에서 쓰면 식도요, 살인을 하면 살인도입니다.

쓰는 사람들 마음입니다.

방인약문성우사.

어떤 사람이 만약 경허의 가풍을 묻는다 하거든, 석녀신중에 겁외가 돌계집의 마음 밖에 노래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 신도님께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몇 마디 할 테니 여러분께서는 소리에 떨어지지 말고, 말에 떨어지지 말고, 글귀에 떨어지지 말고, 생각을 한 번 훌떡 바꿔보십시오.

그러면 석녀신중에 겁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일체 근심 걱정을 버리고 호호탕탕 하게 살 수 있는 묘리입니다.

옛날 중국의 불심이 깊은 양무제라는 황제가 달마스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거룩한 진리의 묘체입니까?’ 하니까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따로 거룩하다고 할 것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왜 따로 거룩하다고 할 것이 없느냐하면, 두두물물 진겁신이라고 해서 물건마다 전부 다 부처님의 겁신이라고 이야기했으니 묘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의 마음이 거룩한 부처님의 진리의 요체인데 따로 구한다고 구할 수 있겠느냐? 옳지 않다.

이렇게 말씀 하셨씁니다.

그러니까 양무제가 다시 묻기를 ‘그럼 짐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니까 달마스님께서는 ‘부식!’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강을 건너서 숭산 소림사 소림굴에 들어가서 벽을 보고 구년 동안을 정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정진을 계속하고 있는데 후에 신방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달마스님에게 법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달마스님께서 “나한테 법을 묻고자 할 것 같으면 니가 내 말을 진실로 믿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하는 마음을 보여라.” 했습니다.

그러자 신방이라는 스님이 단도로 자신의 팔을 툭 쳤어요.

그러니 한 겨울인데도 눈 속에서 새파란 파초가 솟아나와서 팔을 받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시되 부처도 당신의 몸을 나투지 않았거늘 너 같으면 능히 내 법을 받을 수 있고 불법을 지킬 수 있겠구나.

하고는 법을 전하면서 법호를 혜가라고 지어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조 혜가 대사가 된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글이나 말에 집착하지 않고, 말을 듣고 글을 배우는 마음을 한 번 챙겨보면 코 만지는 것 만큼 쉬운 일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꼭 그런 마음을 챙겨서 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달마스님께서는 “밖으로는 일체의 인연을 다 끊고 안으로는 헐떡거리는 마음을 실어버려라.

부처님께서도 이 마음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마음이 어느 곳에 있는지 잘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초조인 달마스님의 가풍을 여러분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그 마음이 머리에 있는가? 가슴에 있는가? 발바닥에 있나? 아니면 궁둥이에 붙어있는가? 그 마음을 어디에 있나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이 마음이 어디에 있기에 때에 따라 고통도 되고, 기쁨도 되고, 원망도 내고, 욕심도 내는 것인가.

여러분 잘 살펴보기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육조스님께서는 “나한테 한 물건이 있는데 이 물건은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떠받치고 또한 빛으로 이야기하면 태양보다도 밝고 어둡기로 말하면 그믐달 칡흑 보다도 더 캄캄하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바로 신혜 대사가 말하길 “불성지 본원이오 신혜지 불성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한 물건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사상이오, 신혜의(나의) 불성이다.

또 남악 회양 선사가 찾아와 절을 하며서 법을 물으니까, 육조 스님은 물었습니다.

“절하는 그 물건이 무엇이냐?” 지금 절을 하는 너는 도대체 어떤 물건이냐는 물음입니다.

결국 회양 선사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돌아가서 팔년 동안 용맹 정진을 하고 다시 돌아와 말하길, “한 물건이라고 하면 맞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육조스님께서 묻기를 “그 한물건이라는 것을 니가 얻을 수 있느냐? 나타낼 수 있느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 남악 회양 선사는 “혹 얻을 수는 있으나 그 뜻이 영원히 변치는 않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해서 육조스님의 참 제자인 적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남악 회양 선사의 문하에 유명한 마조스님이 계셨습니다.

마조스님은 밥을 먹고 대소변을 보는 것 말고는 계속 앉아서 정진을 하는 아주 실다운 납자였습니다.

그러나 스승이 보기에는 저 사람이 앉아있기는 잘 앉아있는데 생각이 좀 비뚤어졌다.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정진하고 있는 마조를 찾아가서 귀에 살짝 대고 “자네 뭘 하고 있나?”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조 스님께서는 ” 정진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진해서 뭐하려고?” 그러자 마조 스님은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도 하고, 염불 하고, 경 보는 것은 다 부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부처는 자유이고 해탈이기에 근심걱정 없는 행복한 삶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는 무슨 아들 잘 되게 해달라, 가정 재앙 없어지게 해달라는 그런 고리탑탑한 기도 보다는 우선

행복을 얻기 위한 기도가 되야 합니다.

행복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이란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는 근심걱정이 없으니 편안하고 매일 매일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조의 그 말은 들은 회양 선사는 밖으로 나가 마당에서 기와장을 드르륵 갈기 시작합니다.

스승의 이상한 행동에 마조는 물었습니다.

“기왓장을 갈아서 뭐하시려합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그러자 마조는 다시 말했습니다.

“스승님 기왓장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기왓장 갈아서 거울이 되지 않는다 하면, 그럼 어찌 앉아서 부처가 된다고 하겠는가?” 이 말에 마조 선사는 확연대오 했습니다.

제가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초조의 달마대사, 이조의 혜가, 삼조의 승찬, 사조의 도신, 오조 홍인, 육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말로도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떻게 그 마음을 바꿔 줄 수 있겠느냐는 사고를 가지고 제자를 가르쳤고, 그러한 제자에게 전수를 한 것입니다.

오늘 불자 여러분드께 제가 이렇게 듣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를 새롭게 하는 이유는 여러분께서 그동안 많은 기도를 하셨고, 심지어 오십년을 기도 한 분도 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은 항상 허전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언가 잡히질 않아서 허전한 그 마음을 나한테 다 가져오십시오.

시기하는 마음 있으면 다 가져와요.

내가 다 해결해 드릴겠습니다.

저는 말쟁이가 아닙니다.

저는 글로써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예요.

저는 정말로 오늘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여러분들만 모두 소원성취 시켜주고 근심걱정을 모두 제가 안아 가져갈 수 있다면 더 이상도 이하도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바로 그런 허전한 마음을 저한테 다 주었으니 이제 여러분 즐겁게 살아야 할 것 아니예요.

마음을 한 번 바꾸고 생각을 한 번 바꾸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절에 와서 기도하고 과일 같다 놓는다 해도 평생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생각한번 바뀌면 쌀 열가마 같다놓아도 아깝지 않고, 고통스러워도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 성취는 마음 바꾸는 것입니다.

생전예수제도 마음 바꾸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정말로 마음 한번 훌떡 바꾸면 그때부터 걸음마다 즐겁고 먹는 것 마다 소화 잘되고 기분 좋습니다.

다 잘됩니다.

그렇게 되실 것을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해마다 꽃은 그 꽃인데 내 얼굴은 같지가 않다.

개나리는 노랗고 진달래는 붉고 해마다 봐도 그 꽃은 그 꽃 모양입니다.

그런데 내 얼굴은 같지 않다.

내 작년의 얼굴은 도 대체 어디로 갔느냐? 찾아봐야 됩니다.

복숭아꽃이 봄바람에 흐느적 휘날리고 떨어지는 이치를 알고자 하면 여러분 얼굴을 찾을 수 있습니다.

꼭 찾아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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