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스님
(봉암사 선원) 「보살은 중생이 욕하고 때리거나 팔다리를 절단하고 눈을 후벼 파더라도 능히 참고 받아 끝끝내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무수한 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 중생을 거두어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온갖 법이 둘이 아닌 것을 관찰하여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자신을 버려 고통을 참기 때문이다.」 이글은 80화엄경 38 이세간품에 나오는 내용으로 인욕의 당위성과 위대성을 설명하고 있다.
“남들이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요, 남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참는 것이다.
힘이 없어 물러나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요, 능히 제압할 수 있는 것을 참을 때 진정 참는 것이다.“ 어느 구참 선지식께서 나에게 간곡히 일러준 법문이다.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인 육바라밀에도 인욕(忍辱)이 으뜸이다.
무릇 수행자는 먼저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분별없이 모두 토로하고 살아간다면 어느 세월에 수행의 열매가 맺어 익을 것이며, 세상살이에서도 무슨 원대한 뜻을 이룰 수 있으랴! 인욕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남들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통하여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요.
둘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당한 멸시와 욕됨을 이겨내는 것이다.
가슴에 원망을 품고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억지로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을 인욕이라 한다.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을 담을 수 있고 높은 산에서는 낮은 산을 굽어볼 수 있고, 깊은 물에는 큰 물고기들이 살아 갈 수 있다.
붕새는 뜻이 창공에 있지 나뭇가지에 두지 않듯 높은 이상과 웅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결코 하찮은 유혹이나 비방 따위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바닷물은 장마 비에 넘치지 않듯 세상을 얻으려는 큰 가슴의 소유자는 잡다한 공명이나 재물 등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무릇 인욕이란 고원한 이상과 큰 뜻을 가진 자의 행하는 바이기에 숭고하고 아름다운 자세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어떤 모함이나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정법(正法)을 실천하고, 어떠한 칭찬이나 달콤한 연설에도 그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다.
나에 대하여 무한한 비방을 한다고 해서 내 인격에 흠집이 생기는 것이 아니며 분에 넘는 칭찬을 한다한들 내 인격에 무슨 도움이 되랴.
공부인에게는 오히려 칭찬보다는 음해나 비방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발로 걷어차 버리면 엎어지는 접시물의 평화보다는 잔잔한 호수처럼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을 키우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이다.
인욕하는 사람의 자세는 자기 주위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사건들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을 가진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시절을 못 만나서 … 등 타인이나 외부환경에 책임을 전가시키는 졸장부는 인욕인의 모습이 아니다.
정중히 자신을 진단하고 점검해서 부족한 것은 채우고 물어보고 개선하는게 맞지,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로는 한 치의 발전도 기약하기 어렵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과 맺어진 일체의 인연을 아름답게 승화시켜가는 자세.
나에게 모질게 한 사람일수록 한 번 더 신경써주고, 부족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보일 때 그 사람은 결코 외롭거나 불행해질 수 없다.
조금만 비방이나 농담을 들어도 삭이지 못하고 가랑잎에 불붙듯 파르르하는 성정은 우리 모두 지양해야할 부분이다.
자신이나 이웃에게 결코 도움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상처만 남긴다.
눈 덮인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향기가 더 진하고 고귀하듯 높은 이상과 큰 포부를 가슴에 안고 지난한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 그가 진정 자존심의 소유자요.
향기로운 사람이다.「산속에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요.
세간에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능히 할 수 있는 말일지라도 참을 줄 아는 자가 대인의 행함이요.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기꺼이 행하는 자, 이 사람이 진정 보살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