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스님─ 슬픔을 담은 장수(長壽)

먼길 – 김영동

우리는 흔히 장수(長壽) 하십시요! 백수(百壽)는 넘기셔야지요! 오래 오래 사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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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합니다

부모님에게도 그러하고, 이웃에게도 그러하고, 친척에게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과연 백수하고 장수하는 것이 즐겁고 좋은 일일까? 소승은 늘 그 생각에 잘 젖어 보곤했습니다

그런데 답은 아주 간단하였답니다 “장수를 하면 더 괴로운 것이다” 장수하는 어떤 사람이 100세, 혹은 150세를 살았다 합시다 그러면 그 동안 즐거운 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100세가 넘어가면 자식,손자,증손자도 있을텐데 그럼 결국은 자칫 잘못하면 자식은 물론 손주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부모는 자식이 먼저 죽으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산다는데 그렇다면 장수를 한다고 한들 먼저 보내 버린 핏줄때문에 그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가슴에 묻힌 눈물로 보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장수 하십시요’ 보다 도 어떤 말이 가장 알맞은 말일까? 그 역시나 참 어려운 과제일 수 밖에 없지만 소승은 늘 그럽니다

“편안하게 가시는 날까지 편한 마음으로 지내십시요”

경(經)에 보면 죽음에는 4 가지의 죽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壽命이 다하여 죽는 죽음’ 빠르고 늦고의 차이에 따라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에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봄에 태어났다가 겨울에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십년을 살다가, 혹은 2 ~ 30 년을 살다가, 혹은 50 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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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것을 보면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수 있지만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쩔수 없는 시한부 인생인데 너무 악다부리로 돈에 눈이 어두워 타인을 눈물빼고, 너무 잔인하게 남을 업신여기며 살면서 재산을 긁어 모아보았자 어차피 갈때는 두손에 아무것도 쥐고 가질 못하는 것 아닙니까?

둘째는 ‘福이 다하여 죽는 죽음’ 경(經)에 이르기를

‘세간(世間) 사람들은 생사(生死)를 모르고,

육안(肉眼)으로는 죄(罪)와 복(福)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목숨은 마치 물거품 같이

기氣가 다하면 소멸(燒滅)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福의 과보(果報)가 다하면 죽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경우는

많은 조상으로 부터 재산을 물려 받았던 사람이

흥청망청 다 써 버리고 마침내는 알거지로 전락하여

굶어 죽는 경우나 같은 이치라 했습니다

세째는 ‘뜻 밖의 죽음’ 이 경우는 흔히 말하는 횡사(橫死)인데

원래는 죽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는 경우로

전사 戰死라든가, 교통사고라든가, 화재로 인한 사고라든가,

타살이라던가, 짐승에게 물렸다 거나

사전에 미리 알수 없는 그야말로 졸지의 죽음을 말합니다

네째는 ‘자유 자재한 죽음’ 앞 의 세가지의 죽음은 모두가 예측할 수도 없고,

또한 자기 마음대로 할수 도 없는 경우지만,

자유자재한 죽음은 사전에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불가에서는 이런 죽음을 생사자여生死自如한 경계(境界)라 합니다 수행이 깊은 고승들께서는 생사가 자유로워 태어나고 싶으면 태어나고

죽고 싶으면 죽는다 했습니다

과거생을 알든 모르든, 미래생을 알든 모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결코 죽을 수 없는 존재이며, 죽는다는 것은 단지 이 사대四大가 거짓으로 합해진 몸뚱아리요, 껍질뿐인 본 생명은 면면히 이어져 결코 중단 되지 않는다 했습니다

경(經)에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정성안승천頂聖眼昇天 인심아귀복人心餓鬼腹

방생슬개리滂生膝蓋離 지옥족저출地獄足底出 이 게송의 뜻을 풀이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 신체 중에서 최후에 냉각되는 부위로 그가 어디에 왕생했는지를 알수 있는데,

죽은 사람은 발바닥부터 머리로 식어 올라 가는데 머리 꼭데기가 여전히 따뜻하면 성인의 과果를 이룬 것이요,

몸의 모든 부위가 식었는데 눈이 아직 따뜻하면 영혼이 눈으로 빠져 나간 것으로

그는 틀림없이 승천昇天할 것입니다 온 몸이 식어 빳빳한데 심장이 계속 따뜻한 사람은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날 것이요, 몸의 각 부위가 모두 식었는데도

허리 부위가 따뜻한 사람은 아귀에 떨어 질 것이요,

무릎이 따뜻한 사람은 축생도에

발바닥이 따뜻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 질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생을 받을 때는

세 가지에 따라 태어 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업력(業力)이 무거운 것에 따라 生을 받습니다 선근(善根)이 깊은 사람은 선도에 태어나 향락을 누리고 악업(惡業)을 지은 악도를 윤회하며, 고(苦)를 받으니

선선과(善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라 즉, 善에는 즐거운 과보(果報)가 따르고

惡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습(習)을 따라 생(生)을 받습니다 평소에 아미타불을 염송하여 습관처럼 된 사람은 의외의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더라도 죽는 그 순간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게 되면 ‘아미타불’을 한번 부른 것이 몇 십년 동안 염송한 것 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어 그 공덕으로

서방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뜻을 따라 生을 받습니다 죽은 후 생을 받는가 하면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온 마음으로 간절히 성불하기를 바랐다면 死後에도

이러한 뜻을 쫓아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심으로 천상에 나기를 바랐다면

죽은 후에 이러한 염원을 따라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 수행할 때에

어떻게 생각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업력으로 생을 받든지 대부분 사람들은 사후에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한없이 기나 긴 세월을

육도윤회(六道輪回)를 하면서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신의 섭리에 의해서 生과 死가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스스로가 지어서 스스로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불자님들도 이 생과 사의 정체를 바로 알고 깨달아 죽은 후에 후회하거나 악도에 떨어져서 자손들에게 천도해 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살아 생전에 선업을 많이 짓고 나아가 자신의 정체를 바로 깨달아 가장 이상적인 삶, 즉 생사를 자유 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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