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을 관하라 –
무관스님
포살(布薩)이란 범어 posadha의 음역으로 출가스님이 매달 보름마다 행하는 의식이다.매달 보름과 그믐날에 모든 비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계본(戒本)을 외우고 지은 죄가 있으면 참회해서 악을 그치고 선을 기르는 의식이 포살이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이 포살을 여실 때에는 지금과 같은 250계와 348계는 아니었다.
이들 계의 조목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지은 죄를 뉘우치는 이런 포살의식은 전 대중이 모여 보름마다 행하였다.
이같은 포살법회는 불교교단의 청정한 계행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으로 출가스님들 뿐 아니라 일반불자들도 그 뜻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포살법회는 일상생활 속에서 참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의식으로 스스로 나쁜 악습을 버리고 선업을 쌓아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반드시 초하루 법회가 끝난 다음 스님의 지도에 따라 포살법회를 열고 자신이 그동안 참다운 불자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반성하고 선근공덕을 키워 나가야 한다.
(모두 합장하고 한마디씩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였사오니 차라리 몸과 마음을 버릴지언정 끝내 다른 종교를 믿지 않겠습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이미 가르침에 귀의하였사오니 차라리 몸과 마음을 버릴지언정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겠습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미 스님들께 귀의하였사오니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합장하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송계서(誦戒序)
모든 불자들은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들으라.
내가 이제 부처님의 대계서(大戒序)를 설하고자 하노라.
대중은 묵연(默然)히 듣고서 스스로 죄가 있거든 마땅히 참회하라.
참회하면 안락하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죄가 더욱 깊어지리라.
죄가 없는 이는 묵연하라.
묵연하므로 대중이 청정한 줄 아느니라.
모든 대덕과 우바새와 우바이들은 자세히 들어라.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후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마땅히 해탈을 보호하는 법인 바라제목차를 존경하라 하시니 이 계를 수지 하는 이는,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만남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음과 같으며, 병든 이가 쾌차해짐을 얻음과 같으며, 갇혔던 이가 감옥을 벗어남과 같으며, 멀리 갔던 이가 집에 돌아옴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이 계는 곧 대중들의 큰 스승이라.
만약 부처님께서 세상에 더 계실지라도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기 어렵고 선한 마음도 내기가 어려운지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되, “작은 죄를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하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적으나 점점 큰 그릇에 찬다”하시니, 찰나 동안에 지은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짐이라.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을 지나도 다시 받기 어렵느니라.
젊은시절은 머무르지 아니함이 마치 달리는 말과 같고, 사람의 목숨은 무상함이 폭포수보다 빠르니라.
오늘은 비록 살아 있으나 내일을 또한 보증하기 어렵느니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하고, 삼가 게으른 생각에 잠겨 방일하지 말 것이니, 밤이라도 마음을 수섭하여 생각을 삼보에 두어 헛되이 지내지 말지어다.
한갓 게으름만 피우면 다음에 깊이 후회하게 되리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삼가 이 계를 의지하여 여법하게 수행할지니라.
(모두 합장을 내리고 편히 앉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무상하다고 계의 서문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은 참과 회에 대하여 말씀 드렸고 오늘은 무상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상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 그리고 우리가 손으로만질수 있는 모든 물질은 항상한 것이 없다 그렇게 관찰하라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 현명한 사람이 생활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항상하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늘 변하고 있다 그런 이야긴데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육체도 그럴 뿐만 아니라 이 법사가 앉아있는 법상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쓰고 잇는 마이크나 또는 그 이외의 어떤 물건도 그대로 오래도록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그렇게 관찰하고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은 항상됨이 없다고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해서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해서 떠날 마음이 생기면 즐거워서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마음이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무상경에서 하신 첫 대목의 말씀입니다.
물질만 그런 것이냐 하면 그럲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느낌도 그렇습니다.
어제가 중복이라 삼복더위에 있습니다.
십년만에 최고의 더위라 어제는 밀양지역이 38.5도 까지 올라 갔습니다.
밤이면 25도를 웃돌기 때문에 열대야라고 합니다.
이같이 뜨거운 삼복더위가 결국 초복 열흘, 중복 열흘, 말복 열흘 삼십일 간의 더위인데 이 삼십일간의 더위가 영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추분 지나고 처서 지나면 서늘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아무리 덥다고 해도 사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삼복더위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다면 어떻게 더위를 이겨낼 것입니까? 40년, 50년, 60년, 70년 사신 보살님들 여름더위 안지내는 때가 없을 것입니다.
또 추운 겨울 연탄을 때고 방을 덥히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 한여름 더위도 반만 오고 겨울추위도 딱 분질러 반만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더위를 느끼는 느낌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변합니다.
아침의 생각 다르고 점심의 생각 다르고 저녁의 생각 다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초를 1/96로 쪼갠 그 시간을 한 순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한 순간에도 우리의 느낌은 변하고 있으므로 무상하다 했습니다.
그 느낌이 변하지 않는다면 늙지를 않아야 하는데 그 느낌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늙는 것입니다.
그 느낌이 변하지 않는다면 늙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이 해탈입니다.
느낌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변하는데 생각도 한순간에 980번이나 변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조계사에서 각자 집으로 생각을 보내 봅시다.
버스타고 전철타고 걸어서 대문열고 방문열고 그 과정에서 벤자민 화분도 쳐다보고..
그 생각 하나하나가 순간적으로 지나가면서 980번이나 변한다는게 부처님 말씀입니다.
느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변합니다.
눈을 깜빡이고 법사를 쳐다보고 귀를 쫑긋하고 하는게 우리의 행동입니다.
이 행동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게 아니고 무상하다는 것입니다.
행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 -우리 마음의 밑바닥에서 분별을 내는 것도 변합니다.
그래서 오온이 색수상행식이 무상한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한마디로 표현하고 오온이 다 공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이라는 것 -색수상행식- 우리의 몸, 느낌, 생각, 동작 하나하나 그리고 마음 속에서 분별하고 판단하는 몸까지 항상됨이 없는 줄로 관찰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이른바 나의 생을 다하고(살아가는 생은 다하고) 범행은 이미서고 (부처님과 같은 행동은 이미 갖춰져 있고) 할 일을 마쳐서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안다 했습니다.
요새 공부를 해서 두루두루 견성을 했다, 내가 도인이 되었다 이렇게 떠드는 스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스스로 아는 것이지 누구에게 떠들어 선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전한다는 것은 이미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나를 알아 달라는 표현입니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이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올바르고 깨끗하고 범행을 지키고 무상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은 누가 알아 달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 걸음 한걸음 한걸음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에서 과연 수행자답다, 깨달은 사람과 같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첫손가락에 꼽히는 기업인 포항제철에서 생산하는 쇠가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법당을 받치고 있습니다.
이 포항제철이 처음에 포항에 제철공장을 세운게 1965년인데 그 때 마을엔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었습니다.
그 마을사람들의 거부로 포항제철은 그 동네를 수용 못하고 마을 윗산을 깎아 아파트를 지어서 직원가족을 이주시켰습니다.
약 15만명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파트에 수도를 놓고 수세식 화장실을 가설하고 전기를 끌어 들이니 그 아파트 화장실에서 오수처리한 물이 아랫동네 우물로 다 들어가서 아랫동네에서는 결국 수도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아파트에 전기가 들어오니 아이들이 그냥 있습니까? 밤에 책도 보아야 하겠기에 나중에 전기공사를 하니 돈은 더 들어 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오히려 잘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때 당시 그렇게 했던 땅이나 그런 것들이 제대로 잘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요새는 환경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고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 주려면 너무나 변화를 한다거나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지구가 빨리 파멸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느리게 수용하는 사람이 훨씬 더 잘사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 선생님은 화장실에서 화장지 딱 한 장만 씁니다.
보통 석장쯤 쓰게 되는데..
그런데 스님네들은 그 한 장도 안씁니다.
어떻게 하느냐..
화장실에 갈 때 물병을 들고 가서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변화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잘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먼 영원에 비해보면 그렇게 잘사는게 아닙니다.
그 이유가 무상하기 때문이라고 부처님은 단 한마디로 가르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과연 무상을 제대로 관해서 해탈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 경지까지 가려면 적어도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초기 경전에서는 교리를 이야기 할 때 일체 세상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변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고 괴로운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고 했으며 이것이 삼법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말씀대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도 좋고 자비심을 갖는 것도 좋고 참선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철저하게 무상고무아를 체득하면 그것이 바로 불법을 잘 아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괴로운 것은 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 그것은 괴로운 것이고 괴로운 것은 공이고 공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 그것을 무상경에서 부처님은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비단장사가 장사를 가다가 너무 더워 비단짐을 내려놓고 잠깐 쉰다는게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비단짐이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비단짐은 없고 무덤가에 망부석 하나만 덩그라니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을 원을 찾아가서 비단짐을 찾아 달라고 청을 하였습니다.
고을 원이 비단짐을 잃어버린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니 무덤 앞에 돌장승이 하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고을 원은 그 망부석을 묶어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공터에서 망부석을 취조한다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망부석을 취조하는 것을 보다가 크게 웃었습니다.
원은 웃은 마을사람들을 모두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바쁜 농사철에 며칠을 갇힌 마을사람들은 풀어달라고 간청을 하게 되었고 원은 풀어주는 댓가로 비단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식구들이 비단을 가져오면 이름을 적고 풀어 주었습니다.
모인 비단에서 비단장사는 자기가 잃어 버린 비단을 찾아내었습니다.
벌금으로 내느라 비단이 값이 오르니 비단짐을 훔쳐간 사람이 그 비단을 팔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비단을 훔쳐간 사람을 찾아냈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부처님은 이세상이 무상하다 느낌이 무상하다 하는데 당장 피부에 와닿는 것은 없고 이 무더위에 집에 갈 일이 더 걱정이겠지요.
사실은 낮잠 자다가 비단짐을 잃어 버렸듯이 우리 본래의 마음을 싹 잃어 버렸는데 삼십년이고 오십년이고 가지고 있던 본래의 마음을 싹 다 잃어 버렸는데 그걸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진짜 걱정입니다.
망부석 두드려 비단 훔쳐간 도둑을 잡듯이 참회하고 경읽고 예배하고 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될까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비단 훔쳐간 사람 잡아 내듯이 참회하거나 독경하거나 염불하거나 주력을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결론은 나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 더운 여름 날에 보살님들 그거 다 알고 여기 오셨습니다.
그런데 듣는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망부석에 곤장매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 웃듯이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흘려 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직접 뜨겁고 힘들더라도 한가지씩 정해서 하는 게 좋습니다.
집에서는 어려우니까 절에 와서 하더라도..
예를 들어 나는 하루에 천수경을 열 번을 읽겠다, 다섯 번을 읽겠다, 관세음보살을 만 번을 부르겠다, 오백 번을 부르겠다 정해 놓고 하십시요.
조계사 법당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은 좋은데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을 땐 안하고 하지 마십시요.
매일 정해 놓고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어느 보살은 목장이라고 예순이 넘었는데 목에 주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분은 고개절을 하루에 천번을 합니다.
반복해서 하는 것은 지루하고 힘든 일입니다.
힘이 들지만 하고 나면 그것이 나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백팔배를 할 수 있다, 나는 천배를 할 수 있다, 나는 삼천배를 할 수 있다 하는 힘이 생깁니다.
스님들이 이 더운 여름에 해인사에서 용맹정진을 합니다.
일주일 동안 밤샘을 합니다.
처음 들어가서 삼일 쯤 되면 졸려서 이마를 땅에 대고 쩔쩔 매면 곁에서 보기에도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고비를 하나 딱 넘기고 나면 자신이 생깁니다.
그 다음 철에는 그만큼 정진을 할 수 있습니다.
내 하는 일과를 정해서 하십시요.
자기 몸에 맞도록 자기 능력에 맞도록 정해서 하십시요.
자기가 정한 것은 꼭 채우십시요.
실천하는 사람이 불자입니다.
부처님이 시키는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부처님 제자이지 말만 듣고 안하는 사람은 부처님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참회를 하는 것도 업장이 소멸되는 것도 우리가 그런 수행을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계율도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똑같이 지켜야 합니다.
가벼운 것을 지켜야 만이 무거운 것이 보호가 되는 것입니다.
돈 쓰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아껴야 만이 큰 돈이 모아지는 이치입니다.
계율도 가벼운 것 부터 잘 지키고 보호해야만 무거운 것도 함께 지키게 됩니다.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가지 실천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열가지 계목을 다시 한 번 제가 읽겠습니다)
십중대계(十重大戒)
1.
살생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불자들이여, 스스로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방편을 써서 죽이거나, 찬탄하여 죽게 하거나,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 하거나, 주문으로 죽이는 그 모든 짓을 하지 말지니, 죽이는 인(因)이나, 죽이는 연(緣)이나, 죽이는 방법이나, 죽이는 업을 지어서, 일체 생명이 있는 것을 짐짓 죽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응당히 상주하는 자비심과 효순심을 내어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구원해야 할 것이거늘, 도리어 방자한 마음과 즐거운 생각으로 살생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이니라.
2.
훔치지 말라 너희불자들이여, 일체 재물에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라도 짐짓 훔치지 말지어다.
보살은 마땅히 불성에 효순하는 마음과 자비심을 내어 항상 모든 사람들을 도와 복이 되고 즐거움이 되게 해야 할 것이거즐, 도리어 남의 재물을 훔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3.
음란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불자로서 스스로 음란하거나 남을 시켜 음란하게 하거나, 모든 이성에 대해 음욕심을 내어서는 안되느니라.
보살은 응당 효순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널리 구원하고 청정한 법을 일러 주어야 하거늘, 도리어 모든 사람들을 가리지 아니하고 음행을 하며, 자비심이 없는 이는 보살의 바리이죄니라.
4.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말하거나, 본 것을 보지 못했다 말하여, 몸이나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항상 바른 말을 하고 바른 소견을 가져야 하며, 또한 일체 중생들에게도 바른 말과 바른 소견을 갖게 해야 할 것이거늘, 도리어 일체 중생들에게 삿된 말과 삿된 소견, 삿된 업을 내게 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5.
술을 팔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일체 술을 팔지 말지니라.
술은 죄를 일으키는 인연이라.
보살은 마땅히 일체 중생들에게 밝고 통달한 지혜를 내게 해야 하거늘, 도리어 일체 중생들에게 전도된 마음을 내게 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6.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출가한 보살이나, 재가한 보살이나, 비구나, 비구니의 허물을 자기 입으로 말하거니, 남을 시켜 말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외도나 나쁜 사람들이 불법에 대하여 비법 비율(非法非律)을 말하더라도, 항상 자비심으로 이들을 교화하여 대승에 대한 신심을 내도록 해야 할 것이거늘, 보살이 도리어 불법 중의 허물을 말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7.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비방하거나, 또한 남을 시켜 자기를 칭찬하고 다른 이를 비방하게 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응당히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남의 훼방을 받아서 나쁜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은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거늘, 도리어 자기의 공덕을 드러내고 남의 착한 일을 숨겨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훼방을 받게 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8.
자기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너희는 인색하지 말며, 남을 인색하도록 가르치지도 말지니라.
보살은 일체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할 것이거늘, 보살이 나쁜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돈 한 푼, 바늘 하나, 풀 한 줄기도 보시해 주지 아니하고, 법을 구하는 이에게 한 구절의 법문과 한 마디의 게송도 일러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쁜 말로 욕설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9.
화 내지 말고 참회하면 잘 받아주라 너희 불자들이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중생에게 착하게 대하여 다투는 일이 없게 하며, 항상 자비심과 효순심을 내어야 할 것이거늘, 도리어 일체 중생이나 중생 아닌 물질을 대해서라도 나쁜 말로 욕설을 하고, 폭행과 구타를 하고, 좋은 말로 참회하고 사과하여도 성낸 마음을 풀지 않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10.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자신이 삼보를 비방하거나, 남을 시켜 비방하게 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한 마디라도 부처님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삼백자루 모창(矛槍)으로 심장을 찌르는 것어럼 여겨야 할 것이거늘,
하물며 자기 입으로 비방하리요.
신심과 효순심을 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악인과 사견을 도와서 비방하는 이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시되 이미 열가지 계를 배웠으니 여러분들은 이것을 잘 의지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가져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