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사상 바탕둔 대승불교 초기경전
42종의 동본이역, 팔천송 반야로 잘 알려짐
《소품반야경》은 8천개의 게송(시구)으로 되어 있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백년쯤 지나자 교단은 소승과 대승의 두 파(派)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3·4백년이 지난 후에는 또다시 18개 부파로 나뉘어져, 소위 부파불교의 시대가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불교는 교리적인 논의에만 치중하여 일반 대중을 외면한채 일부 소수의 출가승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성향으로 흐르게 되자 대승불교도들은 그들(소승)을 비판하고 소승이라고 부르며 공격하기에 이르렀지요. 바로 이들이 불타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으킨 불교운동이 바로 대승불교운동이고 또 그들의 교단에서 편집한 경전이 바로 대승경전입니다.
그러나 시대와 수행자에 따라 표현방식과 언어의 구사가 다르기에 경전과 불교사상의 전개 그리고 실천 방법이 똑같을 수는 없으나 그 안에 흐르는 진리는 궁극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여기서 세계 4대 종교의 교조들 가운데는 그 누구도 자신이 직접 기술한 성전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舊約)》이든 《신약(新約)》이든 《코란(koran)》그 어떤 성전도 모두가 제자들의 기억에 의해 후대에 들어와서 편찬된 것들입니다.
아무튼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대승불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空)사상일 겁니다. 그만큼 공사상은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정작 공사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궁극적 실재를 표현하고 있는 인간의 마지막 언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이나 일상생활에 젖어있는 평범한 우리들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알고 싶고, 또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당한 매력을 지닌 사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공사상에 대하여 최초로 설명하고 있는 경전이 바로 《반야경》이고, 또한 이 경전은 가장 빠른 시기에 성립한 대승경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반야경전류’ 혹은 ‘반야부 경전’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반야경전에 속하는 경전만도 수십 종류에 이르며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만큼이나 그 경명(經名)도 아주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하는데,
①《소품반야경》 ②《대품반야경》 ③《인왕반야경》 ④《금강반야경》 ⑤《반야심경》 ⑥《유수반야경》 ⑦《문수반야경》 ⑧《승천왕반야경》⑨《대반야경》 ⑩《이취반야경》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③번과 ⑤번 이외에는 모두 ⑨번의 600권《대반야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쯤해서 《소품반야경》이 차지하는 위상과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대승경전의 성립과정을 초기·중기·후기로 나눌 때 《반야경》은 바로 초기에 해당하는 경전입니다. 그리고 원시불교가 연기(緣起)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대승불교는 바로 공(空)사상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소품반야경》은 10여종의 산스크리트본과 12여 종의 티베트본, 그리고 한역본은 무려 42종의 동본이역(同本異譯)이 나올 정도로 선호되었던 경전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중국인들에게 대승불교를 처음 전달한 지루가참 번역의 《도행(道行)반야경》을 비롯하여 《대명도무극경(大明度無極經)》 등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품반야경》를 일명 《팔천송(八千頌)반야》라고도 부르는 것은 범본의 게송 수가 팔천 여개인 점에 연유하고 있습니다.
《소품반야경》의 갖춘 경명(經名)인 《마하반야바라밀경》을 해석하면 그대로 이 경전의 개요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마하(Maha)는 크고 위대하다는 의미이고, 반야(Prajna)는 지혜이지만 중생들의 얄팍하고 상대적인 지혜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의 지혜, 즉 불지혜(佛智慧)를 가리킵니다.
바라밀(Pramita)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도피안(到彼岸)을 뜻하고, 또 다른 하나는 완성(完成)을 가리킵니다. 즉 번뇌의 차안(此岸)으로부터 열반의 피안(彼岸)에 도달(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으며, 바로 그 바라밀의 실천에 의해 지혜를 완성시킨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요컨대 《소품반야경》은 바라밀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바로 지혜제일인 수보리(須菩提)를 등장시켜서 그 해답을 들려주고 있는 대승 초기경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