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칼이 들어와도 난 불자다
봉선사 조실 월 운 스님
7월 백중을 앞두고 49일 기도에 입재하여 여러 큰 스님들을 청해 법문 듣는 불자님들 참 장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두어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 불제자이시죠? 이 나라에 200년 전에 기독교가 들어왔는데, 당시만 해도 기독교 믿는 사람들은 죽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면 200년 전에 들어온 기독교가 이 땅의 주인이 되고 우리 불교가 변두리를 헤매게 생겼습니다.
불교가 무엇을 하려해도 손발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다 불교 믿는 사람은 취직도 못하고 승진도 못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옛날에 기독교를 탄압할 때 기독교인들은 “죽여라”하고 맞섰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잘 한건 잘했다고 해야죠.
장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만약에 “불교 믿는 사람들은 싹 죽여라”하면 여러분들 중에 “죽여라, 나는 죽어도 불교다”라고 할 수 있는 분들 손들어 보세요.
내가 불교 신자라는 이유 때문에 나를 죽인다고 할 때 내가 불교를 버릴 것인지 아닌지.
내가 믿는 불교를 나의 운명과 같이 생각하고 이 불교의 이름으로 사회가 맑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불교가 잘못되는 것을 걱정하고 바르게 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불교가 잘못되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믿는 것에만 그친다면 불난 대궐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고 앉아 깔깔거리며 새끼들과 노래 부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에 밀려 불교 변두리로
기독교나 무속이나, 회교나, 힌두교 같은 이런 종교들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나는 신의 피조물이고 신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명과 행복은 신의 뜻이니 당신이 알아서 처분하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들은 ‘의타신앙’이라고 하고 이런 종교의 교역자들은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말만 믿고 재산도 맡기고 가정도 버리고 가는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 말고 나를 구제해줄 사람이 따로 있으니 그분의 눈에 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타신앙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인간이 왜 괴로운가, 왜 죽을 때 고통을 받는가”를 알기 위해 출가를 했는데, 당시 철학자나 수행자들을 만나서 물어보니 다들 “인간의 행과 불행은 창조주인 브라흐만에게 달려있는데, 그분의 노여움을 사서 불행해지는 것이니 그분을 즐겁게 해드려라.
재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려라.”
하고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내 행복 내가 찾는게 불교
결국 인간의 행복을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길이 없고 신이나 법이나 군사력이나 왕의 힘이나 이런 것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년 싯다르타는 “이것은 아닐 것이다.
나 아닌 누군가가 행복을 준다면 그 절대자가 기분이 상하면 행복을 안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행복이란 내가 누릴 수 있을 때 누리고 거둘 때 거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내가 지니고 있으며 내가 누릴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 스스로가 내 행복을 찾는 길입니다.
쉽게 말하면 순간순간 정신 차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렵게 얘기하니 깨달음인 것입니다.
마음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문 듣고 한 순간에 깨닫는 것이지요.
법문을 듣고 깨달아서 내가 한 순간 한 순간 양심에 걸림 없이 깨끗하게 살아가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마음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제자의 자세입니다.
만약 내가 할 도리를 다했는데도 남이 나를 구박한다면 그 때는 그 사람이 바뀔 때 까지 기다려 주고, 또 날 보고 욕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보살의 길입니다.
그런데 생전에 이렇게 노력하고 참고 수행하지 않은 분들은 죽어서 좋은 데 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백중 기도를 한다니까 조상을 천도하기 위해 효심을 갖고 오신 분들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여기다 뭘 올리면 부처님이 바로 극락으로 보내드린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알고 오신 분들은 오늘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영가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고치도록 해주는 것이 영가천도재입니다.
영가가 여태 고치지 못한 마음을 바꾸도록 해주는 것이 천도재이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 또 부처님 법입니다.
49재를 계기로 해서 불자여러분들은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불교를 얼마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지를 점검해 보세요.
첫째, 매일 눈뜨고 앉은 자리에서 관세음보살 세 번, 잠자리에 눕기 전에 관세음보살 세 번 부르세요.
바빠서 못하겠다는 사람은 거짓말입니다.
둘째, 계를 지키세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계를 다 지키기가 좀 복잡하니 한 달에 하루를 정해 그 하루만이라도 계를 지키세요.
고기를 먹지 말고, 술을 먹지 말고, 남편을 거사님 이렇게 불러보세요.
하루가 다 어려우면 한나절, 그것도 어려우면 하루 중 한 시간만이라도 계를 지키세요.
그게 안 된다면 불자가 아니라는 얘기에요.
하루 한 시간이라도 지계
셋째, 불자의 도리를 다 하세요.
부처님이 하고 싶었던 것은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각자가 마음, 정신 상태를 바르게 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보시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돕는 것입니다.
오늘 말로는 사회봉사입니다.
또 하나, 공동체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것이 아주 잘 돼 있습니다.
이게 안 되면 앞으로 불교는 정부에 건의 하나 할 수 없는 사회가 됩니다.
불교계에서 추진하는 일이 있으면 우리 모두가 동참하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부처님은 내가 교주요, 생명이요, 빛이요, 길이라는 말씀을 안 하십니다.
‘여래십호’라 하여 부처님은 당신 스스로를 길 안내자요, 나룻사공이요, 의사요, 길동무라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그 길을 한번 다녀온 길이고 제자들은 처음 가는 길이니 부처가 길을 안내해서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지만 그곳에 어떻게 갈 것이며 가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결국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야하고, 열심히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길 잘아는 안내자
불제자 한명 한명이 “불교 신자가 돼서 참 다행이다, 불자가되길 잘했다”고 기뻐하기위해서는, 치료 효험을 보기 위해 의사 말을 믿고 처방대로 실천하듯이 부처님 말씀을믿고 익히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선 자리에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생각하고 다시 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즐겨하는 말이 ‘다시 생각하자’입니다.
길을 가다가 틀렸다면 어디서 틀렸는가를 잘 생각해서 틀린 부분부터 바로 잡아 다시 해야지 계속 틀린 길로 가면 안됩니다.
오늘 오신 모든 불자들의 원력으로 오늘이 한국불교 1600년 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바랍니다.
불자들이 조상님들을 위해 진짜 해야 할 일이 뭐며, 그들에게 진짜 공양해야할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또한 무엇인지를 아셨을 것이라 믿으며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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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문은 7월 4일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인천불교회관(주지 일지 스님)에서 열린 백중 49재 8인 큰스님 초청 대법회에서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동국역경원 원장)이 백중기도2재에 동참한 대중들에게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월운 스님은
동국역경원 원장으로 역경사업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다.
현재 봉선사 조실로 주석하며 능엄학림을 통해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49년 운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1965년 조계종 역경위원에 선임됐으며, 1979년부터 1993년까지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1993년부터 동국역경원장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