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범망경(梵網經) –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

악업 짓지 않게 하는 게 목적
부처님에 대한 결의, 다짐으로 구성

교계의 어느 신문사에서 오계(五戒)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여본 결과, 오계 가운데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망어(妄語)라고 대답하였고, 또한 타인에게 지키라고 권하고 싶은 계(戒)도 바로 ‘망어(妄語)’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설문조사를 계기로 해서 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데 불교에서 ‘오계’를 비롯한 모든 계율은 반드시 구속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령 사회의 법률도 구속적인 점만 부각되는 면이 없지 않으나 실은 법률이 있음으로써 우리들 개개인의 자유가 오히려 보장받는 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의 계율을 소개하는 경인 《범망경》의 의미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경전들에서 설해지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잘 지키겠다는 결의와 다짐으로 그 내용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경명(經名)에서 ‘범망’이란 말은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포획하듯이, 범천(梵天)의 인다라망(因陀羅網)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건지겠다는 의미에서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따온 이름입니다.

원래 《범망경》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남방 상좌부의 경장(經藏)인 《장부(長部)》 제1경인 《범망경(Brahmajalasutta)》인데, 이에 해당하는 한역(漢譯)은 《장아함(長阿含)》의 제21경인 《범동경(梵動經)》과 《범망육십이견경(梵網六十二見經)》이고, 또 하나는 구마라집 삼장이 번역한 《범망경》입니다.

전자는 외도(外道)들의 62가지 견해를 서술하고 이를 논파함으로써 불교의 우수성을 천명한 것이고, 후자는 대승보살계를 설한 경전으로써 상하(上下) 두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범망경》의 갖춘 경명은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제십(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第十)》인데, 이 경의 서분에서 밝히는 바에 의하면, 광본(廣本)의 《범망경》으로부터 보살의 계위와 계율에 관한 제10의 ‘보살심지’만을 따로 역출한 것이라고 입니다. 그래서 《대장경》에서는 이 경을 대승보살계의 근본성전이라 하여 ‘대승율부(大乘律部)’에 넣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인 구성과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상권은 노사나불에 대한 설명과 십발취심(十發趣心), 십금강심(十金剛心), 십지(十地) 등에 대한 설명이고, 하권에는 10중계와 48경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데 중국의 법장스님이나 천태스님 등이 이 하권에 대해서만 주석서를 지은 것을 보면 이 경의 취지가 바로 하권에 담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10중계(重戒)와 48경계(輕戒)의 계상(戒相)은 재가자나 출가자의 구별이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자는 예를 들면 기본 오계(五戒-살도음망주)에다 남의 허물, 자기 칭찬, 탐욕, 성냄, 삼보비방 등의 열 가지 무거운(重) 계목이라면,

후자는 스승과 어른공경을 비롯하여 오신채(五辛菜)와 식육(食肉)의 금지,방생의 권장, 간병(看病), 추선공양, 파계에 대한 참회, 청법(請法)등 가벼운(輕) 계목으로 일상 행의(行儀)의 규정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범망경》에서는 계를 지키는 데 있어 미리 잘못을 막고(防非) 악업을 그치게 (止惡)함으로써 결국 선을 짓게 (作善)한다는 기본적인 계율사상을 강조하고, 또 자비심을 바탕으로 하여 중생을 구제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라고 하면 흔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여기나 불교에서 계의 의미는 좀 다릅니다. 그것은 ‘계’와 ‘율’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계(Sila)는 봉사하다, 명상하다, 실천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부터 파생되어 습관, 행위, 성격, 경향을 뜻하는 명사가 된 것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면이 강한 반면, 율(Vinaya)은 불교교단의 질서유지를 위한 규범, 규율이기 때문에 수행자가 이를 위반할 때 벌칙이 규정되어 있는 면에서 보면 다분히 타율적인 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알아 두어야 할 점은 불교에서의 계율은 강제적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자각과 깨침에 의한 계율의 실천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다음에 해야지, 내일 해도 되겠지’ 하는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다음 기회라는 것, 내일이라는 것, 과연 확실하게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내일과 다음에’라는 말에 속아서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가 행하지 않고,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일은 내일 더욱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코 ‘다음에’라든가 ‘내일’이라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다음이 오지 않은 채 우리의 인생이 마감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시고, ‘경전산책’에서 만나는 어느 경전이든지 바로 지금부터 수지(受持), 서사(書寫), 독송(讀誦) 내지 위인연설(爲人演說 : 남을 위해 설하는 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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