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근로방식만 다를 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로활동을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근로자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로의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근로의 고귀한 목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산업사회의 근로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원하지도 않는 시간에 과중한 근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80·90년대에는 근로조건의 개선이나 사회 복지제도의 개선으로 삶의 질적 향상에 따른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1989년의 IMF 이후로 이것마저도 잃었다. 그런가 하면 근로자의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마치 고아처럼 성장하면서 일찍부터 소외의식을 맛보게 된다. 근로자들은 여관이나 하숙의 떠돌이 나그네와 다를 바 없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의 이방인이다. 근로자들은 과중하고도 재미없는 기계적인 노동을 하고 나면 기분전환과 휴식을 필연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직장에서 사고를 하지 않는 습성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어지는 여가조차도 자가수양을 위한 독서나 다른 사람들과의 진지한 교재를 하는데 선용하지 않고, 완전히 무위의 자기도피를 일삼는다. 때로는 과음과식을 한다든지 오락에 탐닉하곤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호기심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외설 잡지나 비디오 영화 등을 본다. 그렇지 않으면 TV나 스포츠 오락물에 자기를 숫제 맡겨 버린다. 그래서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마침내 정신적 공허감에 빠지게 되고 여기에 소비경향을 부채질하는 매스컴은 인간을 황금이라는 유령의 노예로 전락하도록 촉진시킨다.
아무튼 현대는 날이 갈수록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중독자와 짐승보다 못한 성범죄자가 증가일로에 있다. 특히 정년퇴직을 한 근로자들은 핵가족화가 이루어진 후 더욱 심한 소외의식으로 고통받으며 노년을 살아간다. 오늘날 노인들은 사회나 가정에서도 완전히 버림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오늘날 근로자들은 소외의식 속에 살며, 이들의 삶은 아미노 현상 속에서 침잠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윤리적인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자기 상실 속에서 망연자실한 채로 소외의식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자기 위치를 돌이켜 보고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를 알고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고의로 자기반성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사회로부터 도피하거나 숨어버리고 싶어한다.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자기소외와 자기상실감 속에서 자포자기하고 말 것인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갖 지혜와 정성을 다해서 이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술발달의 부작용과 인류문명의 몰락과 하강으로부터의 재건은 이제 과학적·기술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종교적 차원에서 실존적인 결단만으로 가능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하 慧頂 글/ 월간반야 2002년 12월 (제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