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초겨울의 스산함이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추위를 심하게 타는 것은 날씨 탓만은 아닌 듯싶다. 이즈음의 세태를 보면서 차라리 현실을 떠나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구제불능 상태까지 간 정치판, 조간신문의 사회면을 도배한 사건사고, 간밤의 사건 사고 소식을 전하는 아침뉴스를 보면 정말로 참담한 심경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이 시대 이 땅의 젊은이들의 교육에 일익을 맡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렇다고 늘상 이런 생각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처럼 천박하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분명 밝고 따스한 인정과 희망의 삶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지 않는가. 역사는 짧게는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중심을 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류역사에 나타난 숱한 영웅들의 일대기를 보면 더 잘 증명된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그리고 몽고의 징기스칸 같은 영웅들도 그 힘의 한계가 반세기도 채 가지 못했지 않는가. 그들의 말발굽이 한번 지나가면 어떤 민족 어떤 국가도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들의 힘의 논리는 역사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도 조화와 순리를 소중히 여겼고 그에 따르려고 애썼던 흔적은 많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몽고의 징기스칸은 서구에서는 야만족이니 악마의 군대니 귀축(鬼畜)같으니 하면서 경멸하면서도 두려워 했지만 실제로 국내 정치에서는 가장 애민적(愛民的) 전략관을 실천했던 왕도 전략가였다. 최근 몽골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한 징기스칸의 경영전략과 웅혼한 정신력을 본받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고 한다. 그는 백성들에게는 젖을 주는 양처럼 대하라고 했는데 대외적으로 전쟁에서 패도(覇道)를 걸었으나, 내정에서는 장수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도주의자인 야율초재(耶律楚材)를 대몽고제국의 내치일체를 총괄하는 수상으로 임명하고 전적으로 그를 신임하였다. 야울초재는 처음에는 금나라 포로였고, 반전주의자였으며 반무단통치주의자였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징기스칸 자신과 정 반대되는 전략관을 가진 사람을 수상에 임명해 놓고 내정에 대해서는 거의 일체를 맡겼을 정도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군사적 전략적 천재였고, 야율초재는 정치적 행정적 천재였다. 징기스칸의 위대함은 바로 이 점에 있었던 것이다. 내외치의 조화, 왕도와 패도의 조화를 실현하기 위해 야율초재와 같은 인재를 발탁 기용하여 몽고고원을 통일한 후에는 요순의 치세와 비견될만한 정치를 하여 어린 소녀가 밤중에 금붙이를 들고 길을 가도 안전할 정도로 몽고의 치안은 훌륭했고 그 만큼 경제력도 높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안정되고 부강한 국가를 이룸에는 조화와 순리를 소중히 여기는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있었다. 징기스칸을 도와 왕도정치를 실현한 야율초재 같은 정치가가 이 땅에는 없을까.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 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6년 9월 제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