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행세를 하고 그 사람의 입을 막기 위해 재빨리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알아서 기기도 한다. 또 맞대어 싸우기 싫어서 양보하기도 한다.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이다. 떼를 쓰면 귀찮아서도 지고 만다. 그 조건이 합리적인지 옳은 건지 그른 건지는 뒷전이고 우선 큰 소리를 막아놓고 보자는 식이다. 길거리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우선 고함부터 질러놓고 보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즈음의 정치 판이나 경제·사회·교육·종교계의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큰소리치는 사람이 옳고 욕설까지 하며 설치는 사람의 말이 정의로운 것 같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자기들을 위해서 큰소리로 욕구를 분출하고 있다. 목소리가 작고 조용조용히 부드러운 말로 상대하는 사람은 마치 자기 잘못을 알고 스스로 열세로 인정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하기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강자는 항상 큰소리를 쳤고, 약자인 소시민의 목소리는 언제나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 판에서 큰 목소리는 소리만 컸지 아무 실체도 없고 힘도 실리지 않은 것 같다. 그 말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고 믿으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일관성이 없어서 언제 또 딴소리가 나올지 모르고, 언제 또 용두사미처럼 꼬리를 감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찍이 큰소리로 카리스마를 앞세워 대중을 선동한 역사가 많이 있었고 이들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네 현실과는 다르다. 그 큰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고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욱 아니다. 이들의 큰소리는 사람의 감정을 부채질하여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지력을 약화시키는가 하면, 야성을 불러일으켜 지성을 파괴하는 등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겠다. 이런 것들은 고함이고 괴성이지 말이 아니다.
이제는 좀 작은 목소리로 말해보자. 작은 목소리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시비를 가려서 상대를 설득시키는 태도를 취해보자. 그리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폐부를 찌르도록 하고 그 말이 두고두고 귓전에 울리도록 해보자. 듣고서 한참 뒤에야 다시 그 말을, 그 목소리를 음미해 보면서 피식이 웃어보자.
이 시궁창 같은 정치판을 비롯한 현실 사회에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를 낼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런 류의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감히 종교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만 계셔도 될 한 스님의 정치적 발언 파문으로 우리 불교계 뿐 만 아니라 나라 안이 뒤숭숭하다. 그 말씀의 진의야 어떠하던 간에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언론에 시비의 빌미를 주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제발 좀 자중자애하면서 꼭 필요할 때 그것도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세인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 말만 했으면 좋겠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말을, 그것도 크게 소리내어 왜 손해를 보고 뜻있는 사람들을 세밑에 우울하게 만드는가. 입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1년 2월 (제3호)
김형춘님은 창원전문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창원문성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 반야거사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