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모진 추위와 배고픔과 어려움을 견디는 힘은 봄이 오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리라. 봄은 꿈과 희망을 부르는 말이다. 이제 절기가 대한을 지나 입춘으로 가고 있으니 저만치 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입춘은 24절기의 하나로 양력으론 2월 4일 경, 음력으론 대개 정월의 절기(節氣)로(올해는 섣달에 입춘이 들었지만)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한다. 입춘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철(계절)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며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첫 5일은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다음 5일은 동면(冬眠)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지막 5일은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또한 잡절(雜節)은 입춘 날을 기준으로 하여 시작되는데, 밭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는 88야(八十八夜), 태풍시기인 210일, 230일 등은 각각 입춘으로부터 88일, 210일, 230일을 가리킨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대궐에서는 내저 기둥과 난간에다 설날에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 중에서 우수한 것을 가려서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 불렀다. 대신과 사대부, 일반 민가와 상점 등에도 춘련(春聯)을 붙이고 축하하였으니 이를 춘축(春祝)이라 하였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입춘이 되면 봄에 합당한 문장을 써서 문에다 붙인다 하였다. 지금의 춘련 풍속은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민속대관」에도 입춘일에는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각 가정에는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며 이를 춘축(春祝)이라 한다 하였다.
입춘문은 대개 정해져 있으나 최근 몇 년간 ‘지안(志安)’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글귀처럼 ‘立春大吉 建陽多慶, 立春大吉 萬事亨通, 立春大吉 萬福雲興’ 등이 있으며, 그밖에 널리 쓰이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國泰民安 家給人足,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萬家,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또한 여염집의 기둥이나 문설주에는 다음과 같은 대련(對聯)이 많이 쓰인다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밝히고 있다. ‘壽如山 富如海, 去千災 來百福, 堯之日月 舜之乾坤, 天下泰平春 四方無一事’. 이처럼 입춘을 축하하는 입춘방(立春傍) 들은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에 아름다운 전통의 재현이라는 이름으로 더러 눈에 띈다.
농가에서는 입춘 날이 되면 보리의 뿌리를 캐어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보리의 뿌리가 세 개 이상이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두 개이면 평년작이요, 한 개이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또 함경도에서는 이 날이 되면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로 끌고 나와 돌아다녔다고 한다. 소는 농사의 상징으로 관리들이 농민들로 하여금 농사에 열중하도록 독려하는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입춘의 세시풍속 속에 담겨진 의미들은 예나 지금이나 산업(농업)이 융성하고 나라가 편안하며 집안에 재물을 비롯한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소박한 기원들이 담겨져 있다. 복을 기다리고 복 받기를 좋아하면서도 복 짓는 데는 좀 소홀(?)했던 것이 아닐까.
언제나 우리 나름의 인사말대로 “새해에는 복 많이 지으십시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 교수)글. 월간반야 2008년 2월 제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