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의 역사왜곡

금년 4월 초순이면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본이 공개된다. 그러면 2001년도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 때와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또 벌어지고 한국은 이 문제로 1개월 정도는 버글거릴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이 이즈음 일본인들의 일반적 생각이라고 얼마 전 일본을 다녀온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

작년 여름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이 문제되어 고구려사를 자기 역사 속에 귀속시키겠다고 나왔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국민여론은 우리의 역사를 도둑질 당했다고 들끓었고, 국민들은 분개하여 표현할 수 있는 갖가지 행동으로 분풀이를 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

연구재단’ 설립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얻고는 몇 달 가지 않아 시들하고 말았다.

이웃나라의 ‘역사왜곡’이나 ‘역사강탈’이 있을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우리의 행동은 감정표현 위주의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는 자성(自省)의 귀결점으로 ‘국사교육 강화’를 외쳤다. 원인도 한결같이 국사교육에 임하는 철학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차례 유사한 상황을 겪고도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인류사회의 역사는 어느 정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는 왜곡의 수준을 넘어 아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가야’의 역사가 그러했고, ‘백제’의 역사가 신라에 의해 얼마나 묻히고 왜곡되었겠는가. 이처럼 역사는 강자의 손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 혹은 왜곡된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강자와 승자는 늘 자기의 역사를 쓰고 싶어 하니까.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지만 이후 외교관계만 악화되었다. 지난 23일 노 대통령은 대 국민 서신을 통해 최근 일본의 독도영유권 분쟁 시도, 교과서 왜곡, 신사참배 등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정면대응 의지를 천명하고 “반드시 뿌리를 뽑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한번 지켜볼 일이다.

그렇다면 진정 주변국의 왜곡된 역사관을 시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힘을 기르는 것 뿐이다. 분노나 배척이나 원망은 능사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국민감정을 자극하여 단합의 계기를 삼을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변국에서는 ‘국내용’이라고 비웃지 않았던가. 고금을 통해 국제관계에서의 진리는 힘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중국과 대만이 그러했고, 소련과 러시아가 그러했고, 일본이 이런 역사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는가. 이제 연례행사처럼 맞을 이웃나라의 역사왜곡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할 방법을 찾고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 민족이 자기의 개성을 가지고 국가적인 자주권을 유지하려면 그 나라의 교육적 바탕이 ‘자국어(自國語)’와 ‘자국사(自國史)’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편협한 민족주의나 더 나아가 국수주의적 발상이라 비판할지 모르나, 민족적인 합의에 기초한 국민교육의 철학적 바탕이며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국정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처럼 국민적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때 생각나는 분들이 있다면 박은식ㆍ단재 신채호ㆍ한힌샘 주시경ㆍ외솔 최현배 선생님 등이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몰라서 행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듣는 지혜(聞慧), 생각하는 지혜(思慧)와 실행하는 지혜(修慧)를 우리 불가에서는 3혜라고 했고, 듣고 이해하고 깨달은 바를 생활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깨달음이 아니라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비슷한 것이거나 속임수일 뿐이라고 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힘을 바탕으로 우리의 바른 대응태세를 정립하고 과감하고 지속적인 실천이 요구될 따름이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장) 글. 월간반야 2005년 4월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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