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관점서 ‘즉신성불’ 주장
대일경과 함께 밀교 근본경전
인도에서 8세기 이후의 밀교는 거의 <금강정경>에 의해 전파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반야경>과 <진실섭경>계통을 잇는 <반야이취경>이 차츰 형성되고,그 후 증광(增廣)되어서 인도와 티베트 등에서 수많은 주석서가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금강정경>계통의 밀교는 인도밀교를 이어받은 티베트밀교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금강정경>의 갖춘 경명(經名)은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敎王經)>인데 줄여서 <금강정대교왕경> 또는 <금강정경>이라고 합니다.
산스크리트 원전을 비롯하여 티베트본과 세 종류의 한역본이 현존하고 있는데, 한역본 중에서는 시호(施護)의 번역본은 범본·티베트본과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 경전의 전래담에 의하면 중인도의 금강지(金剛智)삼장이 당나라로 건너올 때 경을 가지고 오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강정부(金剛頂部)’의 경전 18회(會) 가운데 그 제1회에 속하는 부분만을 그의 제자인 불공(不空)삼장이 갖고 와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 경전은 제1회에는 네 품이 있고 그 첫째품인 ‘금강계품’에 여섯 가지 만다라가 서술되어 있는데 맨 처음의 ‘금강계만다라’를 역출한 것이 바로 <금강정경> 3권입니다.
그러므로 <금강정경>은 좁은 의미로 말할 때는 “초회금강정경(初會金剛頂經)”이라고 불리는 <진실섭경(眞實攝經)>을 가리키고 있으나, 넓은 의미로 말할 때는 18회 10만송(萬頌)의 광본(廣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광본은 의궤(儀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7세기 말경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남인도를 중심으로 8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급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금강정경>은 <대일경>과 함께 밀교의 근본사상을 설하는 근본경전입니다. <금강정경>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대일경>과 대비하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일경>이 본질적인 부분에서 자량(資糧)의 집적(集積), 즉 구체적인 행위와 양적인 축적을 성불의 필수 조건으로 하는 업(業)의 논리에 바탕을 둔경전이라고 본다면, <금강정경>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궁극적 실재와 개적(個的) 존재로서의 자신과의 즉사적(卽事的) 합일의 논리인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주장하는 경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더 친근한 비유를 든다면, <대일경>은 순례자의 종교형태와 같은 입장이고, <금강정경>은 명상자를 위한 종교형태의 전형이라고나 할까요. 이 두 경전만이 가지는 이러한 형태는 만다라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대일경>의 만다라는 중앙부분이 밝고 주변으로 갈수록 어둡게 처리되는 다중(多重)의 동심원(同心圓)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 원(圓)은 우리들 삶의 전 과정, 즉 초발심에서 현등각에 이르는 삼아승지겁에 걸친 자량집적의 과정, 또는 여실지견의 자심(自心)을 알기 위한 실천적 노력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정(道程)은 마치 만다라의 중심에서 빛나고 있는 비로자나를 향해서 계속 걸어가야 할 의무 같은 것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걷기를 계속하는 한, 비로자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되고, 또한 우리의 주체적인 결의로 비로자나가 존속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행의 걸음을 멈춘다면 그 순간에 비로자나는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대일경>에서 업수(業壽)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금강정경>의 만다라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위의 암흑과는 두드러지게 대조를 이루는 순백의 원형으로 표현되며, 내부에 어떤 명암의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이 원 바깥에 있으면서 자기에게 외적인 존재인 이 만다라 전체와 즉사적(卽事的)으로 합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즉신성불이며, 순백뿐인 원형의 만다라 그 자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금강정경>에서 우리들 인간의 구조는 백지로 환원됩니다.그래서 인간은 진언을 외우는 입과, 인(印)을 짓는 손과, 올바른 생활규정의 삼매야를 관정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즉 밀교에서의 최후 귀착점은 만다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만다라에 들어가기만 하면 곧바로 성불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금강정경>에서는 만다라에 들어가는 중생들의 근기(根機)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현교에서 말하는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다'(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는 교설을 밀교에서는 ‘만다라’라고 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