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守令)의 칠사(七事)

세월이란 기다리는 자에겐 한없이 더디고 무심한 사람에겐 참으로 빠른 것 같다. 벌써 세간엔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을 필두로 서서히 열기를 더해간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을 점검하는 매니패스트 활동을 소개하여 그간의 업적을 평가하는가 하면 자천타천의 인물들이 거명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인들의 정치에 관한 관심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는 첩경으로 인식되어 너도나도 정치에 꿈을 꾸는 것 같다. 위로는 북악 밑의 푸른집에서부터 여의도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 줄잡아 수만 명은 족히 될 테고, 지방에서도 내년 6월 초엔 광역시ㆍ도지사, 광역의원, 교육감, 교육위원, 시장, 시의원, 군수, 군의원의 8가지 선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니 이들 자리에 목을 매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겠는가.

다들 나름대로 자질을 갖추고 일전불사의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원하는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제대로 알고 덤비기나 하는지 걱정이다. 눈앞의 부(富)와 권력과 명예에만 눈이 어두워 정작 목민관의 사명이나 정치의 요체를 알고나 있는지 말이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守令 ; 관찰사, 목사, 부사, 군수)은 임지로 떠날 때 임금 앞에서 교지를 받고 지방행정의 요체인 ‘수령 칠사(守令 七事)’를 외었다고 한다. 그 첫째가 농잠의 흥성이요〔農桑盛〕, 둘째가 호구의 증가요〔戶口增〕, 셋째가 학교의 발달이며〔學校興〕, 넷째가 군정의 정돈이요〔軍政修〕, 다섯째가 부역의 균등이고〔賦役均〕, 여섯째가 송사의 간략함이며〔詞訟簡〕, 마지막이 간활의 멈춤〔奸猾息〕이라고 하였다

현대사회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이 으뜸이요,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 산업이 발달하고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자연히 인구가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위장전입을 하여 인구를 늘리고 지방교부금을 많이 받아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물론 교육여건도 좋아야 한다. 좋은 학군의 집 값이 올라가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다산(茶山)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의 72개조를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재산과 생명을 내놓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금의 지방자치단체들은 하나같이 경제를 살린답시고 이벤트성 행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두를 싸잡아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엑스포’ , ‘국제 ооо’. ‘оо축제’, ‘세계 оо대회’ 등 고을마다 행사에 목민관들은 목을 맨다. 유권자가 모이는 곳에는 목민관과 정치지망생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사들이 그 지역 공무원들이나 관변단체 등 그 분야에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기획과 집행이 아니라는데 실패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계획서를 만들고 용역비를 들여 성공 가능성을 제시하고는 국비나 도비, 지방비 – 사실은 국민의 혈세 -를 끌어들여 잔치를 하고 몇몇 인사들이 생색을 내는 것으로 행사는 끝이 난다. 제대로 된 평가회를 거쳐 진정 지역경제를 위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는지는 뒷전이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우바새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모든 것을 보시하는 것은 즐거움을 받기 위함도 착한 명성의 유포를 위함도 아니며, 삼악도의 괴로움을 두려워함도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연민(憐愍) 때문이며, 남을 안락(安樂)하게 해 주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설하셨다. 모름지기 정치를 하고 목민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참된 ‘보시’의 공덕을 쌓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09년 8월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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