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어느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가장 맑을까. 가장 순수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쯤 살고 있을까.
‘샹그리라’는 영국의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가상의 지명이다. 이후 영화로 제작되면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세계인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소설의 내용인즉 1931년 어느 봄날 인도의 바스쿨이라는 지방에서 식민정부인 영국에 대항하여 일련의 폭동이 일어난다. 갑자기 일어난 폭동을 피하기 위해 현지의 영국 영사를 포함한 네 명의 외국인이 소형 비행기를 타고 가다 티베트와 중국 국경의 쿤륜(Kunlun)산맥 부근에서 연료가 떨어져서 추락한다.
조종사는 사망하고 탑승한 네 사람은 가까스로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건지는데 이곳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외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는 곳이었다. 쿤룬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숨겨진 곳,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높은 설산과 대초원, 강과 협곡, 원시림, 다양한 동식물, 티베트종교 등으로 어우러진 곳이 ‘샹그리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런 낙원이 가까이 있다고 하니 자연히 주변의 티베트나 미얀마 등의 나라에선 샹그리라를 찾아서 혈안이 되었고, 저마다 그럴싸한 곳을 지정하여 ‘샹그리라’를 찾았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지금 ‘샹그리라’라고 믿고 찾은 이곳은 원래 티베트 땅이었는데 1950년대 중국이 강제 병합하여 1980년대부터 국가차원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티베트, 몽골,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서남쪽의 땅이 원래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서남공정”을 치밀하게 진행해온 곳이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샹그리라가 중국 영토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학자들로 하여금 조사단을 구성하여 소설과 영화에 묘사된 곳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운남성 서북부의 티베트 자치주에 있는 ‘쭝띠엔(中甸)’이 샹그리라와 일치하는 곳이라고 확인하고는 2001년 이곳을 ‘샹그리라’로 공식 선포하고 지명도 쭝띠엔에서 샹그리라로 바꿨다.
원래 ‘쭝띠엔’은 해발 3386m, 티베트 민족인 ‘장족(將族)’이 살아왔고, 고지대라 산소도 한국의 56%에 불과하여 여행자들 중엔 고산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샹그리라’는 티베트 불교 경전에 나오는 ‘샹바라(香巴拉)’가 쭝띠엔의 방언으로 ‘불국정토(佛國淨土)’, ‘피안(彼岸)의 세계’, ‘이상향理想鄕’을 뜻한다고 한다. 또한 샹그리라의 한역표기인 ‘샹그리라(香格里拉)’는 영어로부터 유래한 것이지만 원래는 ‘장족’ 언어에서 ‘샹香’은 ‘마음’, ‘그(格)’는 ‘-의’, ‘리(里)’는 ‘태양’, ‘라(拉)’는 ‘달’로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며, ‘샹그’는 ‘흰 달빛’, ‘리라’는 ‘태양’을 의미하여 쭝띠엔현의 고성(古城) 이름인 ‘일월성(日月城)’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실제 쭝띠엔은 양쯔강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3개의 지류가 합쳐지는 곳에 있는 강과 협곡, 주변의 금광(金鑛), 풍요로운 들과 삼림, 그리고 신비스런 티베트풍의 사원이 있다. 황홀한 자연과 고색창연한 옛 도시, 세상과 격리된 듯한 지형, 거리에서 만나는 원주민들의 순박하고 천진한 모습에서 마치 시간을 잊고 사는 사람들처럼 느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이곳에 ‘부처님께서 놀다 가신 낙원’이라 불리는 ‘송찬림사(松贊林寺)’라는 티베트 사원이 무척 인상적이다. 샹그리라에 있는 티벳탄 문화의 대표로 5백년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달라이라마 5세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그 규모나 모양에서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려 진다고 한다. 사원이 위치한 곳의 고도가 3600m이상 되니 외지인들은 숨이 차서 빨리 걸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분위기가 마음의 평온과 신비함이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어쩌면 도연명의〈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과 흡사한 이미지를 주는 곳이 ‘샹그리라’가 아닌가 싶었다.
명예나 이익을 찾는 것을 아침 이슬처럼 생각하고, 괴로움과 부귀영화마저 저녁연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그런 이상향인 ‘샹그리라’가 과연 ‘쭝띠엔’이 틀림없을까. 벌써 이곳도 한족(漢族)문화에 희석되고 관광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만 순박한 원주민들의 모습과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2년 2월 135호